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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찻잔의 생애 ② - 진광 스님

기자명 진광 스님

“찻잔은 도공과 주인, 세월과 사랑으로 세번 태어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공덕과 
지수화풍과 자연의 도움에다
도공의 헌신적 노력으로 출생

주인의 손때와 사랑 머금으며
소중한 찻잔으로 빛 발하기도
부주의로 누군가가 깨트리면
어느 스님의 손에 들어가서
대수술 받은뒤 사찰에 안착 

​​​​​​​스님께서 작설차 우려 담아주니
이심전심으로 빙그레 미소 지어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차는 그 마음이 연꽃과 같다. 연꽃 향기는 만리(萬里)를 퍼져가지만 그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고 향기롭듯이 차향 또한 그러하다. 맑은 차향은 내 몸과 마음에 남아 오래도록 함께한다. 그리고 정신을 맑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니 그런 까닭에 차와 선이 둘이 아닌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무릇 한 물건은 그 주인을 닮아가는 법이니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과 사람의 삼재(三才)를 고루 잘 갖추어야 비로소 명품이 되는 것이다. 미당 서정주의 ‘국화꽃’이나 장석주의 ‘대추 한 알’, 그리고 김춘수의 ‘꽃’이 모두 그렇듯이 찻잔 또한 그러할 것이다. 하나의 찻잔이 있기까지 무수히 많은 이의 공덕과 지수화풍과 함께 자연의 도움, 그리고 도공의 예술혼이 있었으리라. 오랜 기다림과 정성, 그리고 이름 없는 도공의 피땀 어린 노력과 예술혼이 있었기에 비로소 존재함이라. 어찌 가벼이 허투루 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의 찻잔이 곧 하나의 우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고은 시인은 ‘순간의 꽃’이란 시집에서 “옷깃 여며라! / 광주 이천 불구덩이 가마 속 / 그릇 하나 익어간다”고 읊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 얼마나 장엄하고 숭고하고 아름다운 순간의 꽃이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이렇게 단 하나 뿐인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어찌 그것들을 사랑치 않을 수 있으리오. 

이렇듯 소중한 찻잔 하나는 소장자의 손때와 사랑을 머금고 더욱 그 빛을 발한다. 매일 바라봐주고 쓰다듬어 주며 정과 사랑을 다해야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처럼 그것에 쏟은 시간과 정성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다른 것이다. 찻잔은 도공이 처음 만든 순간과 주인이 사들인 순간, 그리고 오랜 세월의 정성과 마음으로 세 번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찻잔을 사랑한 나머지 처음 탄생의 과정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가 궁금해졌다. 아마도 익숙한 차향이 코끝으로 스며들며 옛 기억의 자취를 상기시켜주는 듯해서 일게다. 그래서 나는 몰록 찻잔으로 화현했다.

경기도 이천 혹은 여주 산골의 가마터 였을 게다. 도공은 온 산천을 헤매다 마침내 최고의 흙을 구해왔다. 몇날 며칠을 목욕재계한 후 엄숙하게 가마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는 꼭 필생의 도기를 구우리라는 다짐이 그의 눈에 섬광 같은 빛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불가마 앞에 자리한 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고의 시간들을 견뎌냈으리라. 마침내 가마를 걷어내니 태고의 신비인양 마치 처음 보는 듯한 새 생명이 아우성을 치며 첫 울음을 토해낸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처럼, 첫 봄을 알리는 매화나 봄을 다투는 온갖 꽃들의 향연, 그야말로 백화쟁명(百花爭鳴)의 순간이다.

하나하나 아이를 안듯이 꺼내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다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은 가차 없이 깨부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놓고는 그제야 깊은 탄식과 함께 희열을 토해냈다. “요, 예쁜 것들이 대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고 그간의 과정을 생각하니 울컥 하는 마음에 눈물이 소리없이 흘렀다. 

옛 싯구에 “산호 침상 아래 두 줄기 눈물이여, 반은 님을 그리워함이요, 반은 님을 원망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오랜 산고를 이겨내고 새 생명을 낳은 채 아이를 처음 바라보는 산모의 마음과 같을 게다. 그 중에서도 별반 특이하고 예쁠 것 없는 작은 찻잔이 유독 애정이 가는 것은 못난 자식을 향한 애비의 마음 같은 것일 게다. 그래서 유독 그 찻잔을 애지중지하며 늘상 곁에 두고는 애지중지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도공 옆을 지켰던 찻잔도 이내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갔다. 주인을 잘못 만나 툇마루 밑을 나뒹굴거나, 강아지의 놀잇감이 되기도 했다. 때론 간장종지로 쓰이기도 하고 야바위꾼의 놀음도구로 쓰이기도 했으리라. 그 과정에서 이가 빠지고 온갖 상처를 입은 채 어느 누구도 돌아보지 않을 기나긴 세월을 하릴없이 보내야만 했다. 

그리하여 어느 때인가 사람들은 갑자기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심지어는 골동품이라고 치켜세우며 소유하고자 열망하였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차츰 나의 자존과 가치에 우쭐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나의 전성시대가 된 것이다. 나를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고 몰래 감상하는가 하면, 경매에 부쳐져서 고관대작들의 집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부주의로 깨트리는 바람에 다시금 땅에 버려졌다. 그렇게 나뒹굴다 어느 스님의 손에 들어 대수술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고즈넉한 산사에 마지막 거처를 얻었다. 이를테면 ‘열반당’에 든 채, 홀로 아미타불을 염하며 내세를 기약하는 중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참 주인을 만나 평생의 지음이 되었다. 뒤돌아보면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행복한 마음이다. 세상에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며 바람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모든 과정이 바로 나의 삶이고 수행이며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문득 새벽 쇠북소리에 깨어나 나로 돌아왔다. 어느새 나를 닮은 찻잔이 허리를 구부리고 정좌한 채 아미타불을 염송하고 있는 중이다. 향하나 사르고는 작설차를 다려 찻잔과 함께 홀로 마신다. 가만히 찻잔을 보듬고 쓰다듬으며 이심전심으로 빙그레 미소 짓는다. 찻잔 속에 비친 나도, 내 눈동자에 가득한 찻잔마저도 모두 허허롭고 애틋하기만 하다. 그렇게 우린 진정 하나가 된다.  

정현종의 ‘방문객’이란 시의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머 어마한 일이다.…<중략>…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그대와 난, 지금 지는 석양과 낙조처럼 마음을 붉게 물들이며 목하(目下) 열애 중(?)이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474호 / 2019년 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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