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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창재의 ‘길 위에서’(2013)

‘사실 재현’에 충실한 수행자의 깨달음 여정

출가한 스님 인간적 고뇌에 초점
안거·만행 등 단계별 과정 담아
육문스님 설득에 비구니 도량 촬영
발심출가자 생겨나 포교에 성과

‘길위에서’는 동안거 수행과정과 만행 그리고 입산한 수행자의 단계별 수행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길위에서’ 한 장면.

이창재 감독은 ‘미국제국침략사’(2003)라는 단편영화로 한국영화계에 등장하였다. 필자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 작품을 접하고 감독과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후 그는 ‘사이에서’(2006)로 이름을 알렸고, 결국 2017년 ‘노무현입니다’로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의 위상을 굳혔다.

푸른영상의 김동원 감독이 ‘다큐멘터리는 사회를 비판하는 무기여야 한다’는 명제로 맏형 역할을 맡아왔다면 이창재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덕목은 사실의 재현이다’는 본령에 충실하였다.

‘길 위에서’는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첫 장면 깊은 밤 법당에서 스님이 목 놓아 울었고 그 연유를 찾아 나섰다고 밝힌다. 감독과 연을 맺지 않으려는 수행자는 수행의 길에 동참할 것이냐는 질문을 하면서 비로소 영화가 시작된다. 이 대사는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이병헌 역)의 보이스 오버를 떠오르게 한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이는 “어느 날 법당에서 스님이 목 놓아 울었다”로 시작하는 이 영화와 데칼코마니로 겹친다. 그가 꾸는 꿈은 무엇이었으며 속세에 사는 우리는 어떤 꿈을 찍기 위해 산사로 향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길은 철학과 예술의 화두다. 시인 황지우는 ‘나는 너다 503’에서 “지금 나에게는 칼도 경(經)도 없다. 경이 길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라고 갈파했다. 중국의 작가 노신은 ‘고향’에서 “땅 위에 처음부터 길은 없지만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실천을 강조하였다. 이 구절은 황지우의 시에서 변형되었으며 신영복 선생님은 ‘여럿이 함께 가면 그 뒤에 길이 생긴다’는 말로 다시 변주하였다. 길이 미래를 여는 혁명의 길이었다면 ‘길 위에서’는 수행의 발자국이다. ‘길 위에서’는 수행의 길을 프레임에 채우는 영화다.

영화 ‘길위에서’의 삭발식 장면.

이창재 감독은 비구니 사찰의 수행도량을 촬영하기 위해 장소 섭외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한 스님에 의해 도량의 문이 열렸고 불교 수행에 관한 영화 제작의 길도 열린 것이다. 그것은 ‘눈 내린 산을 내려갈 때 길을 닦는 것은 뒤따라가는 것보다 세배 힘든 일’이었다. 선방의 문을 열고 카메라가 들어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는 쉽지만 아이스크림을 들고 사막을 건너는 것만큼 힘든 일이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백흥암 육문 스님의 설득과 중재로 가능했다고 한다. 육문 스님은 “이 선방에서 포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수행생활을 보여줄 수 있으면 효과적”일 것이라는 말씀으로 설득하셨다. 그 결과 이 작품은 흥행성적은 돋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발심하여 출가한 분들이 생겨났다. 포교용으로 이 작품은 기대보다 성과를 냈다.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카메라가 담아낸다는 전제로 존립한다. 다큐멘터리에서 피사체에 대한 진실 추궁을 견뎌낼 때 관객은 공감하지만 인위적인 조작이 가미되면 다큐멘터리는 설 자리가 협소해진다. 카메라와 감독은 진실을 담아내려 하지만 기계적 조작과 연출의 개입이라는 인위적 조작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사실성의 재현과 피사체와의 거리 유지에 달려있다.

이창재 감독의 ‘길 위에서’는 수행승의 삶을 선택했다. 임권택의 ‘만다라’가 수도승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을 대중적 서사의 옷에 입혀서 따라갔다면 ‘길 위에서’는 백흥암으로 출가한 스님과 수행하는 스님의 인간적 고뇌에 방점을 두었다. ‘길 위에서’는 깨달음을 위한 과정보다 ‘우리는 왜 수행을 하는가’와 ‘나는 왜 출가를 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에 공들인다. 이 작품은 겨울 수행인 동안거의 수행과정과 만행 그리고 입산한 수행자의 단계별 과정을 프레임에 채운다.

강가에서 한가로이 오후를 즐기는 스님들.

입산에서 행자생활을 거쳐 조계종 수계교육을 이수하고 사미니계를 받은 상옥 스님과 여섯 살에 출가하여 스님이 된 선우 스님 그리고 행자 생활을 시작하는 민재 행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여기에 백흥암 영운 스님의 인터뷰로 수행의 의미를 가미한다. 선우 스님은 여섯 살 때 입산을 하여 절에서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 절에 왔을 때 기억을 되새기는 순간 사마귀와 연꽃을 클로즈업한다. 카메라는 선우 스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받아 적듯이 이미지를 포획하여 몽타주를 만들어낸다. 감독은 카메라의 존재를 지우려고 애쓰지만 간혹 수행자의 세계에 이입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장면은 영운 스님 인터뷰 장면이다. 영운 스님은 “밥 한 발우가 피 한 발우다”고 말한다. 수행은 밥값을 위해 지불해야하는 몫임을 강조한다. 카메라는 스님의 말씀을 풀샷으로 담아내다가 밥값을 해야 한다는 다짐 부분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카메라는 거리를 유지해야 건강한 거리감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거리감의 유지라는 다큐멘터리의 윤리를 뒤로 미루고 스님 말의 진정성을 전해야 한다는 책무로 카메라가 망설인 것이다. 카메라는 그만 영운 스님에게 줌인으로 들어가서 눈물에 젖은 말을 클로즈업으로 강조하고 만다. 여기서 백흥암에서 동안거를 보내는 수행자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담아내고 싶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수행자의 마음 한 자락을 관객에게 강조하고 싶다는 감독의 의도를 들키고 만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은 마음의 출렁임이라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태도는 제설 작업 장면에서 카메라맨이 도망가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연관된다. 그  장면은 제설 작업의 역동성이 강조되면서 카메라와 피사체가 거리를 망각하고 카메라의 존재 증명을 허용한 경쾌한 맛을 준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의 존재증명이면서 동시에 피사체와 카메라의 상호 교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474호 / 2019년 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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