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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엽과 동대부여고

현실문제 직시했던 저항시인
동대부여고 국어교사로 재직
서거 50주년 맞아 시비 추진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전문)

올해 서거 50주년을 맞는 신동엽(1930~1969) 시인은 1960년대 참여시를 확산시킨 선구자다. 1967년 1월 ‘52인 시집’에 수록된 ‘껍데기는 가라’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식과 분단 극복의 단호한 의지가 응집돼 있는 최고의 참여시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이육사의 ‘절정’을 잇는 저항시로도 높이 평가받는다. 경제와 개발 논리를 앞세워 인권유린이 버젓이 자행되던 시절 그의 시는 마르지 않는 자주와 민주의 화수분으로 수많은 젊은 가슴들을 불타오르게 했다.

민족분단과 사회현실을 직시하고 문학을 통해 변혁을 이루려던 그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도 이해가 깊었다. ‘진달래 산천’에서 한국전쟁의 비극을 담아냈으며, ‘아사녀’와 ‘껍데기는 가라’에서는 4·19혁명이 동학농민운동을 잇는 위대한 역사적 사건임을 드러내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의 시에는 불교적인 사건이나 인물이 소재로 등장하고는 한다. ‘…나뭇게 끄을며/ 절길 오른/ 바랑,/ 산골길 칠백리엔/ 이마 훔치던/ 원효선사…’(‘여름 이야기’ 중)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眼窓)/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修道者)의 눈빛 속에서/ 구슬 짓는다.’(‘새해 새 아침을’ 중) 산문에서도 “불전저술가가 던지고 간 정신직경의 넓이는 그 어느 현상학적 체계가들이 던지고 간 그것보다 훨씬 멀고멀었다.…나는 생각한다. 시는 궁극에 가서 종교가 될 것이라고.”(‘시인 정신론’ 중) 언급하기도 했다.

신동엽 시인이 남긴 작품 중 불교와 가장 관련 있는 것은 ‘석가탑’이다. 그가 ‘오페레타(operetta)’라는 장르 명칭을 직접 붙인 데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시와 노래가 어우러진 가극 대본이다. 석가탑 축조와 관련된 석공 아사달과 아내 아사녀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창작된 이 작품은 그의 ‘진보적인 역사·철학적 사고뿐만 아니라 나아가 종교적 차원의 작가의식에 의하여 창작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8년 5월 백병동씨가 곡을 붙여 ‘드라마 센터’에서 상영되기도 했던 ‘석가탑’은 비구니스님들의 합창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부터 불교를 바라보는 시인의 따스한 시선이 묻어난다.

‘서해 바다 달이 지니/ 동해 반도 해가 뜨네/ 천축 넘어 성인 가시니/ 동방 반도 새 성인 나시네/ 어와 공덕이시여/ 우리들 마을마다 아기 부처님 나시네// 서해 바다 노을 지니/ 동해 바다 달이 뜨네/ 서역 만리 석가님 가시니/ 우리 서라벌 목탁소리 일어나네/ 어와 부처님이시여/ 우리 마을마다 부처님 웃음 피어나네’

신동엽 시인이 불교종립학교인 동대부여고(전 명성여고) 국어교사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불교에 이해가 깊었던 것은 당연하다. 1930년 충남 부여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에 전념했던 것은 31살 때인 1961년 동대부여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부터다. 이후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대부여고 국어교사로 재직했으며 ‘껍데기는 가라’ ‘금강’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 불멸의 시를 남겼다.
 

이재형 국장

오는 4월7일이면 만 39년의 푸른 생애를 살다간 시인의 서거 50주년을 맞는다. 동대부여고(교장 김형중)는 이를 기념해 교내에 시비 건립을 두고 광진구청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늦었지만 시비가 꼭 세워져 민족의 큰 이상을 가슴에 품었던 시인이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 되살아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mitra@beopbo.com

 

[1475호 / 2019년 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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