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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가 곧 보리다

기자명 성원 스님

기억과 상상 기능이 번뇌 만들어
기억 빼앗기면 미래 꿈도 사라져
번뇌가 곧 보리임을 잊지 말아야

기억과 상상을 할 수 있기 시작한 호모사피엔스에게 미래는 영원한 꿈이 되고 말았다. 지상의 무수한 생물종 중에 과거를 뚜렷이 기억하고, 미래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며 살아가는 종족은 아마 인류밖에 없을 것이다. 진화는 기억력이라는 달콤한 기능을 선사하면서 상상이라는 기능을 첨부해 우리를 번뇌의 세계에 던져버렸다. 기억과 상상은 우리들을 현재에 상주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인간은 업의 굴레를 인식하게 되었고, 희망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내일이라는 환상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에게서 기억을 뺏어버리면 미래의 꿈도 사라져버린다. 사실 인식계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한 가지 구조로 펼쳐지는 것이다. 모든 선각자들은 온전한 행복은 오직 ‘now & here’ 현재 이곳에 있다고 한다. 혹자들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이 머무는 곳의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삶의 가치관으로 대치하여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나쁘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참다운 현재 이곳은 의식의 구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일체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공간적으로 다른 곳과 비교하지 않는 상태로 일체의 흔들림 없이 머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와서 시작한 신제주불교대학에서 1기생들 151명이 졸업했다. 처음에 시작할 때 제주시 불교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며 만류하며 걱정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비록 신제주에서 사찰도 없이 도심에 건물을 임대해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무모해 보일지라도 우리 제주불교의 현실을 직시하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물결같이 흘러갔고 1월19일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식을 앞두고 ‘결산’을 해보니 많은 분들의 우려가 현실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운영비와 강사료, 임대료를 지출하고 나니 재정이 딱 맞아 떨어졌다. 사실 강의를 가장 많이 한 나 스스로의 강사료는 한 푼도 계산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렇다 보니 여러분들의 우려가 맞았다는 생각도 든다. 

출가한 이후 굶지만 않고 방이 차서 고통받지만 않는다면 세상의 손익에 관심두지 않고 살기로 했으니 스스로 매우 만족한다. 그래도 빚을 지지 않은 채 100명이 넘는 불자들에게 수계를 시켰고 올바른 불자교육을 해 가르쳤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더군다나 지난 9월에 창단한 보리수 어린이합창단이 토요일이면 법당가득 모여 신이 나서 찬불가를 부르고 있으니 매우 만족스럽다. 지난 10월 합창단 운영을 위해 밀감을 팔아 자금을 모으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법의 의지를 굳게 갖고 하다 보면 모든 것이 뜻에 따라 풀려 나아가는 것 같다.

법당 하나뿐인 보리왓에서 불교를 배워 졸업한 동문들이 각자의 사찰로 돌아가 가정과 사회에 보다 헌신하며 우리 제주를 불국토로 만드는 초석이 되기를 축원해본다.

이제 겨우 1기를 마치고 나니 벌써 2기 신입생 모집 문제로 또다시 신종인류 호모사피엔스의 조그만 두뇌는 번뇌로 가득 차기 시작하는 것 같다. 

성원 스님

번뇌가 곧 보리라는 가르침으로 오늘 스스로를 위로하며 보고 싶다.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475호 / 2019년 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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