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말리카의 깊은 생각
100. 말리카의 깊은 생각
  • 김정빈
  • 승인 2019.01.28 17:35
  • 호수 14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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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가장 사랑하듯 남도 그렇다는 것 깨달아야”

비천한 신분에도 남편 사랑 받아   
늘 진실함과 헌신 담아 조언해
다른 왕비와 궁녀들도 항상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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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강조한 역지사지 가르침
세계 모든 철학·종교 기초 윤리
한번 더 나 돌아보는 습관 중요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93호인 완사천(浣紗泉)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그의 둘째 부인인 장화왕후(莊和王后)가 처음 만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왕건은 903년부터 914년까지 태봉국의 창건자인 궁예(弓裔)의 휘하 장수였다. 그가 나주로 출전하여 후백제의 견훤(甄萱)과 싸우던 중 산 아래로 오색 기운이 서려 있어 그곳으로 가보니 샘이 하나 있고 거기에서 어여쁜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왕건이 목이 마르니 물을 한 잔 달라고 청하자 처녀는 표주박에 물을 뜬 다음 그 위에 버들잎을 한 장 띄워 젊은 장수에게 공손하게 건네주었다. 물을 마신 다음 왕건은 처녀에게 왜 물 위에 버들잎을 띄웠는지를 묻자 처녀가 대답했다. “귀인께서 너무 급하신 듯 보였습니다. 혹 체할까 염려되어 버들잎을 불며 천천히 마시라는 뜻에서 그리하였습니다.”

왕건은 그 지역에서 큰 세력을 갖고 있는 나주 오씨(羅州吳氏) 집안의 딸인 처녀의 미모와 총명함에 반하여 그녀를 자신의 둘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왕건과 장화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무(武)는 왕건의 뒤를 이어 고종(高宗)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완사천이 있는 마을은 용, 즉 왕이 일어났다는 뜻으로 흥룡동(興龍洞)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설화는, 남자 주인공은 고려 태조 왕건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로, 여자 주인공은 장화왕후 오씨에서 이성계의 두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姜氏)로 바뀌어 한 번 더 반복되는데,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시작된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두 설화의 근원지가 불교 경전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남자 주인공은 코살라(Kosala) 국의 왕자였다가 후에 왕이 된 파세세나디(Pasendi)이고, 여자 주인공은 그의 왕비인 말리카(Malika)이다.

그렇다면 왜 불교 경전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왕건과 장화왕후, 이성계와 신덕왕후로 바뀐 것일까. 아마도 매력 있는 처녀가 힘 있는 남자의 첫째 부인이 아니라 둘째 부인이 된 데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여 민중들이 이 설화를 끌어들여 두 처녀에게 적용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본 이야기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두 처녀는 귀족 가문의 일원이었지만 말리카는 부유한 집안의 시비(侍婢) 신분이었다. 더하여 그녀는 외모가 아름답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신분도 비천하고 외모도 못난 그녀가 파세나디로부터 그의 여러 부인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불교 경전은 말리카가 남편인 파세나디에게 현명한 조언을 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파세나디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말리카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때마다 말리카는 사리를 잘 변별하여 남편을 도와주었다. 그 결과 파세나디는 말리카가 아니면 국사를 처리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한 왕비가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면 왕은 자연 다른 왕비와 궁녀들을 멀리하게 된다. 그러면 다른 왕비들과 궁녀들은 말리카를 질투하게 마련인데, 놀랍게도 궁중의 모든 사람들이 말리카를 질투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은 물론 궁중의 많은 사람들과 신하들, 백성들로부터도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 모든 것의 기반에는 말리카의 헌신이 있었다. 말리카는 그 어떤 왕비나 궁녀들보다 더 지극하게 왕에게 헌신했다. 경전은 그 자세한 내용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말리카의 헌신에 진심이 깃들어 있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진심이 부족한 헌신은 시간이 지나면 쇠퇴하게 마련이고, 수행이 뒷받침되지 않은 헌신은 자연스럽지 않아 다른 이들에게 눈치를 채이게 된다. 그러나 말리카의 헌신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의 인정, 감탄, 존경심을 이끌어낼 정도로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어느 때 파세나디는 혼자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 이것은 예외가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예외일지 모른다. 말리카는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파세나디는 말리카를 불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나서 말리카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말리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저는 대왕보다 저 자신을 더 사랑합니다.”

두 사람은 부처님께 나아가 이 이야기를 사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결론지어 말씀하셨다.

“그러하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오. 이로부터 우리는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듯이 남들 또한 그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오. 사람은 남을 괴롭히거나 해쳐서는 안 되는 법이오.”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세계의 모든 철학과 종교가 강조해온 윤리의 기초이다. 공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말했고, 유가 경전인 ‘대학’은 “오른쪽 사람이 싫어하는 일로 왼쪽 사람과 사귀지 말고, 왼쪽 사람이 싫어하는 것으로 오른쪽 사람과 사귀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유대교의 랍비 힐렐 또한 “율법서의 정신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대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기독교 외경인 ‘토빗기’에는 “네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으며, 예수는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라고 말했다.

한번 더 나 자신을 돌아보자. 내가 정말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때 가장 먼저, 가장 쉽게 보이는 잘못은 대개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의의 강요’일 것이다. 비록 ‘선의’로 하는 것일지라도 ‘강요’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어기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남으로부터 ‘선의의 강요’를 당했을 때 ‘선의’의 좋은 면에 앞서 ‘강요’라는 나쁜 면을 먼저 보는 것으로서 확인된다.

조금 더 세밀하고, 조금 더 진실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자. 그러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말리카의 깊은 생각과 진실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한 차원 더 성숙하게 될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75호 / 2019년 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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