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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지(淨地)와 임금(壬儉)

기자명 현진 스님

정지·임금 어원에는 불교와의 연결고리가 존재

율장서 정지는 깨끗한 땅
남은 음식 보관하던 장소
임금, 범어 ‘이샤’와 ‘金’을
합성한 ‘니사금’의 변형

16세기에 발간된 조선의 한자입문서인 ‘신증유합’에 의하면 부엌의 어원은 ‘블[火]+섭[側]’에서 온 ‘브억’의 변화한 말이다. 같은 책에서 부엌의 경상도 사투리인 ‘정지’를 솥이 걸린 부엌이란 의미인 ‘정주(鼎廚, 솥이 있는 부엌)’에서 변화한 말로 보기도 하는데, 혹은 그냥 ‘정지(鼎地, 솥이 있는 곳)’에서 온 말이라고도 한다. 고유한 우리나라 말인데도 억지로 한자에서 그 연원을 찾기도 하기에 생긴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불교경전의 율장에 간혹 나타나는 것처럼, ‘정지’를 깨끗한 땅이란 의미의 ‘정지(淨地)’에서 온 말이라 여기기도 한다.

승가에선 부처님 시기부터 식사는 점심때의 사시공양 한 차례 뿐이었다. 승속을 막론하고, 그리고 인도나 우리나라를 막론하고 근래까지 하루 기껏해야 두 끼가 일반적이었다. 재가에선 농사일을 해야 하는 까닭에 그 가운데 자연스레 저녁이 가장 중요한 식사였으나, 승가에선 밖으로 나가서 탁발을 할 수 있는 사시공양이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식사 때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의 아들이었던 라훌라는 7살의 어린 나이로 부친인 부처님의 손에 이끌려 승단 최초의 사미로 출가하였다. 그 후 어린 나이의 사미승들은 하루 한 끼의 식사만으로는 허기를 달랠 수 없기에 새벽이면 꼬르륵대는 배를 부여잡고 소리죽여 울곤 하였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부처님께선, 탁발된 먹거리를 조금 남겨두었다가 새벽에 사미승들이 공양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더운 날씨에 음식을 반나절 이상을 두었다가 그냥 내어줄 수가 없기에 조금의 물을 더한 뒤 약간 가열하여 주었다하니, 이것이 승가에서 지금도 시행되는 ‘아침죽공양’의 시원인 셈이다.

사시에 탁발된 음식을 사원 안에 최대한 정갈하게 두는 방법이라면 별도의 저장시설이 없으면 최선의 방법이 가장 서늘하고 깨끗한 곳에 약간의 땅을 파내고, 그 속에 두는 것이었을 것이다. 비록 무더위가 지속되는 인도지만 우기 외에는 매우 건조한 까닭에 그 정도만으로도 제법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원하고도 정갈한 땅, ‘깨끗한[淨] 땅[地]’이 곧 ‘정지’요 부엌인 셈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산스크리트어 가운데 부엌을 가리키는 말로서 ‘깨끗한 땅’을 의미하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떡을 베어 물어 생긴 이빨자국이 큰 자를 왕으로 뽑았다 해서 생긴 명칭이 ‘니사금’이다. 신라 초기의 왕명에 대한 이 기괴한 설명은 이런저런 방식의 어원을 끌어대더라도 말끔히 정리되지 않는다. 그런데 ‘신라’와 밀접한 ‘불교’에 불교의 경전어인 ‘산스크리트’를 연계하면 가녀린 실마리가 잡히긴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군주나 왕을 뜻하는 단어 가운데 ‘이샤(Īśa)’가 있다. 그리고 중국인이 옥(玉)을 숭배하는 반면 신라인은 인도와 유사하게 금(金)을 숭배하였는데, 으뜸인 자를 의미하는 ‘이샤’에 으뜸 물질인 ‘금’을 더하여 생긴 ‘이샤금’이 한문으로 표기되는 과정을 거치며 ‘니사금’과 ‘잇금’과 ‘임금’으로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옮길 때 산스크리트 단어의 절반은 ‘소리 옮김’으로 나머지는 ‘뜻 옮김’으로 옮겼던 방식처럼 말이다.

‘서울’이란 말의 어원으로 여기는 경주의 옛 이름 ‘서라벌’이 부처님께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며 수많은 가르침을 펼치신 인도 북부도시 ‘쉬라바스티(śrāvastī)’란 지명에서 전래된 것이라는 의견과, 그 당시 아랍인들도 ‘sila’라고 기록했다는 ‘신라’의 나라 이름이 산스크리트의 계율을 의미하는 ‘실라(śīla)’에 근거한 것이란 의견 또한 불교권을 중심으로 이젠 제법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정지가 정말 ‘淨地’로서 부엌인지, 니사금이 정말 ‘Īśa金’에서 온 말인지 등은 사실 분명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으나, 그렇게 억측이라도 부려보는 중심에는 불교라는 연결고리가 자리하고 있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75호 / 2019년 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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