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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우주합일의 착각

기자명 이제열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도 잘 아시나?”

우주크기는 불가량 불가설
우주합일 운운은 망상일뿐
부처님 설법도 들으려 안해

30여년 전 가깝게 지내던 분을 만났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지만 모습이 영 딴판이었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도사 복장을 했다. 반가워 인사를 건넸더니 명함 한 장을 건네주었다. 명함에는 정체도 알 수 없는 종단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밑에 종정 아무개라는 법명이 적혀 있었다.

불교 일을 하다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아무런 근거도 없고 정통성도 없는 종단을 제멋대로 만들어 놓고 종정이니 총무원장이니 하는 직책을 버젓이 쓴다. 당연히 불교를 조금이라도 바르게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일에 좋은 감정이 일어날 리 없다. 그렇더라도 과거에 꽤 친하게 지냈던 정도 있어 차 한 잔 마시자고 했다. 찻집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는 겉모습만 아니라 말과 행동도 이상하게 변해있었다. 무슨 수행을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어험’하는 태도로 사람을 대했다.

내가 “그동안 못 만난 뒤로 한 소식 하신 것 같다. 안 보이는 동안 어디서 무슨 공부를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불교 안에서 깨달았다는 도인을 만나고 인가를 받았다는 선사들도 만나 공부하려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소백산의 모 수련 처에서 대도인을 만나 수행하다가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마치 우주의 원리를 다 아는 것처럼 떠들면서 ‘화엄경’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이 어쩌니, 선가의 ‘본래면목’이 어쩌니, 태극 무극이 어쩌니 하면서 자신의 ‘도력’을 과시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떻게 우주와 하나가 됐느냐”고 물었다. 그가 답했다. “그동안 산속에서 아침저녁마다 떠오르는 해와 넘어가는 해를 눈을 감고 마주하면서 손을 뻗어 마음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상상을 했는데(그는 이런 수행을 일상관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 몸에서 형언할 수 없이 강한 에너지가 솟구치면서 나가 없어지고 천지가 정수리로 빨려들어 왔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때 나라고 여겼던 개체의식이 사라지고 우주 전체가 되었다”고 답했다.

그의 장황한 설명에 내가 “그렇다면 우주의 기원이나 크기 그리고 우주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우주는 무시무종이고 무한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만 대답할 뿐 나머지 질문들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사실 이렇게 도통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 중에는 “내가 곧 우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소우주와 대우주, 대아(大我)와 소아(小我)를 거론하면서 자신이 우주가 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인간이 우주가 될 수는 없다. 우주는커녕 자신의 자식이나 아내하고도 하나가 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과 하나가 됐다는 것은 다만 느낌이 그러할 뿐 실제가 아니다.

우주가 얼마나 크고 광활한지는 부처님 말씀대로 ‘불가량 불가칭 불가설’이라 가히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태양과 지구의 거리만 해도 무려 1억5000만km가 되고 지구에서 태양 다음으로 가까운 항성이라는 프록시마는 태양과 지구 거리의 26만5000배나 된다. 이곳에 가려면 1초에 12km를 달리는 우주선을 타고 쉬지 않고 10만년을 달려야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의 태양계 별들과 별들 사이의 거리가 평균 100만km의 3000만배가 되며 은하계에 이런 거리를 하고 있는 별들이 1조개의 100억배나 된다고 한다.

이런 우주를 어떻게 선정을 닦아 하나가 된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망상이다. 그리고 혹 우주와 하나가 되었다 한들 삶에 무슨 이익이 있으며 무슨 쓰임새가 있겠는가? 부처님이 성도하시기 전 여러 단계의 선정을 거치셨는데 부처님은 이를 모두 무명이 연기 되어 나타난 허망한 경계로 아시고 이를 뛰어 넘어 열반을 성취하셨다. ‘우주합일’ 운운하는 이런 망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의 설법만이 약인데 그나마 먹으려 하지 않는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76 / 2019년 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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