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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허공과 기하학

유클리드 기하학이 서양인들 사고 지배했다

기하학은 현재 정치에도 영향
자명한 명제로 옳고그름 입증
아트만 없으면 업 짓는이 없어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은 수천 년 동안 서양에서 성경 다음으로 베스트셀러였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은 5개밖에 안 되는 공리(증명을 하지 않고 진리로 받아들이는 명제들. 예를 들어, 두 점을 잇는 직선이 존재한다)를 바탕으로 논리만 이용해서 수천수만의 정리(수학적 진리)를 유도해 낸다. 유클리드의 방법은 우주적인 진리를 도출해내는 경이이다. 그의 고향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보다도 더 오래 인류에게 빛을 비추어 주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은 논리력을 기르는 탁월한 도구이다. 수천 년 동안 서양인들의 두뇌를 개발했다. 링컨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을 다 외울 정도로 달달 공부하고서야 ‘입증’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법률가는 유죄·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주관적인 주장만으로는 안 된다.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링컨은 괴상한 몸짓, 흐트러진 머리카락,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녔음에도 연설을 잘했다. 특별히 연설법을 공부한 것도 아니다. 평생 학교를 다닌 것은 겨우 6개월 정도였다. 링컨이 독학으로 읽기 시작한 법률 책들에는 ‘입증한다’가 수없이 나타났다. 그는, 처음에는 그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사전과 참고서적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 뜻을 알 길이 없었다. ‘입증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법률가가 되지 못할 거라고 독백했다. 그러다 아버지의 서가에서 유클리드의 책을 발견하고 공부한 끝에 ‘입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서양인들의 사고를 깊이 지배했다. 서양 과학과 예술을 만들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현대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존 로크는 도덕에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자기 사상을 만들어감에 있어서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의 논리적 구조의 지도를 받았다. 수학에서처럼, 자명한 명제를 논리적으로 따라감으로써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자명해 보이는 것에 문제가 있다. 바로 거기에 허점이 있을 수 있다. 악마는 자명함 속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누가 무얼 자명하다고 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절대 군주들과 교회는 법과 정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강요했다. 로크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 전통에 도전했다. 그는 사회의 자연권도 기하학의 명제들과 유사한 식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권은, 유클리드가 유도해낸 정리들만큼 자명할 걸로 보았다.

로크는 유클리드처럼 자기가 사용하는 용어를 정의했다. 예를 들어,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점은 길이와 면적이 없고, 면은 면적만 있고 두께는 없는 걸로 정의된다. 불교도 용어를 정의한다. 예컨대, 아(我)란 5온의 모임이다. 아란 결코 초월적인 것이 아니다. 이 용어들을 이용해 도덕적인 주장을 증명했다. 로크는 ‘재산’을 ‘어떤 것에 대한 권리’로 정의했다. ‘불의’를 그 권리에 대한 침략 또는 침해로 정의했다. 이로부터 ‘재산이 없는 곳에는 불의도 없다’는 명제를 도출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아(我 아트만)가 없으면, 업을 짓는 자도 없고 받을 자도 없다. 나아가 아(我 아트만)가 없으면, 죽음도 없다. 로크는 1689년 논문 ‘정부의 두 개의 조약’에서 ‘같은 종과 같은 부류에 태어나 같은 신체기관을 이용하는 생물은 서로 평등해야 한다’고 주목했다. ‘따라서 규칙이나 법률이 없을 때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정부의 역할은 인간의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천부권리를 유지하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도출했다. 로크의 사상을 이어받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1776년 독립선언서에서 “우리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음을 자명한 진리로 여긴다”고 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5온을 가진 생물들은 모두 평등하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76 / 2019년 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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