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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3대 총무원장 자운 스님-상

종단 수습 위해 나섰지만 종정 그늘에 가려 6개월만에 사퇴

경덕 총무원장 인준부결에 따라
1976년 12월4일 총무원장 취임
서옹 스님 중앙종회 인준과정서
“원장에 권한 일임” 약속했지만
인사·종무행정 등 관여해 논란
자운 스님, 종정스님 불만 토로
“종정중심제론 발전없다” 사퇴

왼쪽은 자운 스님(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이 해인사 대중들과 1967년 종정에 추대된 고암 스님과 촬영한 사진.(‘자운대율사’)

조계종 중앙종회의 경덕 총무원장 인준 부결은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했다. 1975년 9월 “종단이 일사불란한 체제로 화합 운영되어야 한다”며 종정중심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이후 서옹 스님이 직접 행사한 인사에 제동이 걸린 것은 처음이었다. 종단 내부에서 서옹 스님에 대한 신뢰는 물론 종정중심제에 대한 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1976년 12월3일 서옹 스님은 새 총무원장으로 자운 스님을 지명했다. 전날 경덕 총무원장의 인준부결에 따른 충격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서옹 스님은 하루 만에 다시 총무원장 지명을 강행했다. 정기중앙종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새 총무원장을 선출하지 못하면 차기 종회가 열릴 때까지 수개월 동안 종무행정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종정중심제에 대한 비판여론을 서둘러 진화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서옹 스님이 새 총무원장으로 자운 스님을 지명한 것은 의외였다. 당시 자운 스님은 현직 규정원장이자 종단 원로였다. 특히 자운 스님은 전날 중앙종회에 나와 규정부장 인사와 관련해 종정스님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며 규정원장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그랬기에 서옹 스님이 자운 스님을 새 총무원장으로 지명한 것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옹 스님의 판단은 다를 수 있었다. 새 총무원장마저 중앙종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중앙종회가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 필요했다. 자운 스님은 그런 명분을 충족한 인물이었다. 
 

자운 스님은 1947년 청정승단 복원을 발원하며 청담, 성철 스님과 함께 봉암사 결사를 진행했다. 또 단절된 계맥 복원을 위해 앞장선 율사로 당시 대중들로부터 수행자의 표상으로 불렸던 스님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중앙종회 내에서는 자운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상좌그룹들이 다수 포진돼 있었다. 따라서 비록 종정중심제에 불만을 갖고 있더라도 중앙종회가 종단 안팎에서 인지도가 높은 자운 스님마저 인준 부결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서옹 스님의 판단이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앙종회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잦은 총무원장 교체에 따른 피로감과 종정중심제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해 있었다. 몇 개월마다 총무원장이 바뀌는 인사난맥상이 되풀이되는 것은 종정중심제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았다. 그랬기에 이날 중앙종회에서 자운 스님의 총무원장 인준안 처리는 진통을 거듭했다. 

4대 중앙종회회의록에 따르면 12월3일 열린 제45회 정기중앙종회에서 종정 서옹 스님이 총무원장 인준 동의안을 발의하자 종회의원들은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중광 스님은 “종정스님께서 취임한 2년 동안 총무원장이 네 번 바뀌었다”면서 “이것은 종헌이 잘못되어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다. 구 종헌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종회의장 녹원 스님은 “어제 원장스님의 (인준)부결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분을 잘 몰라 그렇게 된 것으로 안다”며 “이번에 인준 요청한 자운 스님은 종단의 원로로서 사표가 되는 덕망 높은 스님이며, 종정스님께서 두 번이나 인준을 요청했는데 이번에도 결정치 않으면 종정스님의 권위 상에도 문제가 된다”며 만장일치로 가결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종회의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종회의원들은 종정스님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총무원장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전에는 인준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중앙종회는 휴회와 속개를 이어가며 공전을 거듭했다. 

중앙종회에서 장시간 논란이 이어지자 이번에는 종정 서옹 스님이 직접 나섰다. 서옹 스님은 이날 오후 5시20분경 중앙종회에 출석해 자신의 종무행정에 대한 불만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옹 스님은 “(종무행정의) 대부분을 원장스님께 일임해 처리해 왔는데 일부 본인이 관심을 갖는 중대한 문제 때문에 간섭하는 듯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좋은 원장스님이 나오시면 소신껏 일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녹원 스님도 “종정스님께서 원장스님이 소신껏 일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개헌론까지도 있었으나 시기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또 개헌이 필요하다면 종회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 금번에는 논의치 않는 것이 좋겠다”고 거들었다. 

종정스님의 공언에 따라 중앙종회의원들의 종헌개정 요구는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인준안 처리 방식을 두고 이견이 이어졌다. 녹원·혜정 스님 등은 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가결할 것을 주장했지만, 암도·중광 스님 등은 종법에 따라 무기명 비밀투표를 요구했다. 양측의 입장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의장단과 일부 종회의원들 사이에서 감정 섞인 말까지 오갔다. 결국 총무원장 인준 동의안은 다음날까지 이어졌고, 중앙종회 의장단이 무기명 비밀투표를 수용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12월4일 오전 속개된 중앙종회에서 자운 스님 총무원장 인준 동의안은 찬성 30, 반대 13, 기권 2표로 가결됐다. 이에 따라 자운 스님은 제13대 총무원장으로 확정됐다. 

인준가결 소식을 접한 자운 스님은 12월4일 오후 중앙종회에 출석해 “저 때문에 수고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며 “미숙한 것이 있으면 지도해주고 잘못이 있을 때는 가차 없이 쫓아내 달라”고 짧은 소감을 밝혔다. 

진통 끝에 13대 총무원장에 자운 스님이 취임하면서 조계종은 안정을 찾는 듯했다. 45회 중앙종회에서 개정된 교육법에 따라 조계종은 승가학교(현 중앙승가대 전신) 설립을 추진키로 했다. 승가학교는 4년제로, 기존 강원교육에서 벗어나 일반 정규대학에 준하는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것을 골자로 했다. 비구·대처 갈등으로 실추된 승려상을 쇄신하고, 정규대학에 준하는 현대식 교육을 통해 스님들의 자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경향신문(1976년 12월24일자)’에 따르면 서옹 스님은 그해 12월23일 승가학교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안도 발표했다. 3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물을 짓고, 개신교 신학대학과 같은 승가학교를 운영하기로 했다. 입학자격은 강원에서 기초과(1년)와 예과(3년)를 마친 스님과 고교졸업자 이상으로 한정하기로 했다. 

조계종은 체계적인 포교를 위해 1977년 3월6일 포교원도 설립하고, 초대원장에 석주 스님을 임명했다. 포교원 설립은 포교업무를 총괄하고 포교사 등 포교조직을 체계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종단 차원의 일원화된 포교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포교사 고시를 비롯해 연수교육 등이 시행됐으며 포교자료 개발 등에 대한 계획이 수립됐다. 불자 국회의원의 모임인 정각회가 처음 발족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사진은 조계종 포교원 개원 모습.(‘한국불교100년’)

그러나 이런 업무 대부분은 종정스님이 중심이 됐다. 서옹 스님은 제45회 중앙종회에 출석해 “원장스님이 소신껏 일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종무행정의 대부분을 직접 지시하고 관여했다. 심지어 서옹 스님은 1977년 2월14일 총무원 총무, 교무, 재무, 사회부의 신년종무시책을 보고받는가 하면 4월에는 전국 주요 교구본말사의 종무행정지도를 위한 순시도 진행했다. 틈만 나면 총무원 간부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고, 마곡사, 용주사, 해인사, 고운사 등 교구본사 주지도 빈번하게 교체했다. 종무행정의 실무를 담당하는 총무원장의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자운 스님은 종정중심제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아무런 실권 없는 총무원장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종단 내부에서는 총무원장 자운 스님과 규정원장 영암 스님의 동반 사직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해 6월28일 열린 제47회 임시중앙종회에서 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4대 중앙종회회의록에 따르면 임시중앙종회에서는 종정스님이 행한 종무행정을 두고 종회의원들의 날선 질의가 이어졌다. 석옹 스님은 “3개월 동안 본사주지가 무슨 이유로 7명이나 경질됐는지 상세히 밝혀 달라”고 따져 물었다. 월주 스님도 “(종정스님이) 지난해 말 승가학교를 설립해 신년부터 학생을 모집하겠다고 해놓고 그렇게 안 된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규정원과 총무원장의 사표제출설이 있는데 (거기에는) 무엇인가 제도적인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답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총무원장 자운 스님은 비공개 회의를 요구한 뒤 작심한 듯 현 종단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스님은 “정화 이후 큰 문제가 종정스님의 권한에 대한 한계였다”며 “역사적으로 종정스임이 친정을 해서 종단이 발전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한발 더 나아가 “종정 책임체제가 되면 총무원장은 필요없다”며 “종정스님은 상징적으로 산중에 모시고 총무원장 중심제로 개헌해 일대 수술을 하지 않고는 발전하기 어렵다. (그래서)원장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 

그러자 월주 스님은 “지금 원장스님을 인준할 당시 의장단스님과 합의하에 종정스님의 권한을 대폭 총무원장스님께 위촉하도록 한 바 있다”며 “그럼에도 그렇게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재차 물었고, 자운 스님은 “종법상 원장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제도적으로 법의 보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자운 스님은 이날 종회를 끝으로 총무원장에서 물러났다. 서암, 영암, 경덕 스님에 이어 자운 스님도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서옹 스님은 1달여 뒤 다시 새 총무원장으로 혜정 스님을 지명했다. 그러나 이는 종정스님과 중앙종회가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불씨가 됐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477 / 2019년 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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