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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흐름을 관하는 순간

기자명 금해 스님

익숙한 일상 속 새로움 찾긴 어려워
분노·슬픔도 반복되면 자각 못 해
세속 삶 살피는 명상 시간 가져야

아직 쌀쌀한 날씨지만, 푸른 하늘과 햇살이 너무도 좋아 뒷산에 올랐습니다. 사시기도에 참석했던 보살님 몇 분이 즐거이 동행했습니다.

수락산 둘레길을 따라가다 보니, 얼었던 계곡물도 반쯤은 녹았고, 상쾌한 공기는 온몸을 씻어냅니다. 높은 곳 바위에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며 보살님들도 환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순간, 삶을 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은행 부지점장인 50대 보살님은 최근에 스트레스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많이 아팠다며,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퇴직하기 전에 지점장이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욕심에 마음이 급했나봅니다. 여기서 세상을 내려다보니, 평생을 은행이라는 참 좁은 곳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살고 있는 환경이 익숙해지면, 그곳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좁거나 크거나, 더럽거나 깨끗하거나 간에 익숙해지면 그저 일상이 됩니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분노나 슬픔, 스트레스도 반복되면 자각하지 못합니다. 삶은 욕망에 익숙해지며 흘러갈 뿐입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인들의 삶의 주기를 살펴보면 네 가지 형태를 가집니다. 태어나 경전과 학문을 배우는 범행기(梵行期), 결혼해서 가정의 의무를 다하는 가주기(家住期), 살림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숲에 머물며 명상과 수행을 통해 지혜를 닦으며 자신을 완성해가는 임서기(林棲期), 마지막으로 숲속의 거처까지 버리고 완전한 자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다니며 죽음을 맞이하는 유행기(遊行期)입니다. 삶의 후반기에 해당되는 임서기와 유행기는 우리들의 삶과 비교하면 매우 독특합니다. 

우리들이 퇴직 후 재취업하거나 자녀들에게 얽매이며 세속의 삶을 되풀이하는 것에 비해 인도인들은 현생을 마무리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습니다. 수행을 통해 지혜를 닦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베풀며 자유롭게, 보다 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또 윤회를 감당하고자 합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보살님이 ‘죽는 순간까지 내 손으로 밥 해먹으며, 내 몸을 가눌 수 있는 건강이면 최고다’라며 즉답(卽答)을 줍니다. 그리고 죽음의 마지막 순간은 법당 마루에서 햇빛과 나뭇잎을 보며 새들과 인사 나누고 명상에 잠긴 채 맞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노보살님은 지금까지도 불교대학 공부를 하고 법당 청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칠순 여행 가는 대신 그 돈으로 보살님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에 모두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며칠 전에는 조계종단의 ‘은퇴출가' 제도를 통해 출가한 분들의 첫 수계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 당시의 삶이 옛이야기도 아니요, 우리나라의 현실과 맞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노보살님의 삶도, 늦은 출가도 모두 아름답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삶 속에서, 생로병사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언제나 바른 길로, 붓다의 길로 안내합니다.
 

금해 스님

오늘, 자신의 삶의 흐름이 어떠한지, 세속적 삶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푸른 하늘과 구름, 바람결 속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하는 짧은 명상의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477 / 2019년 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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