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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리 종교

기자명 강병균

종교는 옳기 때문이 아니라 이익이 되기에 믿는다

공리는 증명없이 사실로 믿는 것
각 종교의 교리는 공리와 같아
부처님, “행해보고 믿으라 당부”

수학에는 공리라는 게 있다. 증명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기초해 수많은 수학적 진리를 도출해 낸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각 변의 이등분점과 맞은편 꼭짓점을 연결하는 3개의 선들은 한 점에서 만난다’가 있다. 사람들이 종교에 빠질 때 교리를 공부한다. 의문이 생길 때 경전을 찾으면 답이 나온다. 깊은 산속에서 약초를 만나듯이, 경전의 숲속에서 답을 만난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다른 사람들이 한 증명을 보거나 이미 증명된 정리를 참조하는 것과 같다. 기가 막히게 해결이 된다. 그래도 답답하면 기도를 하면 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 일어난 사건과 의문에 대해 해결책이나 그럴 듯한 설명을 찾을 길이 없으면, 신이 그리했다고 하면 된다. 신은 전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미리 신은 전능하다고 인정했으므로, 즉 그걸 공리로 채택했으므로 그리하면 된다. 불교인이라면 누생(累生)의 업이나 전생의 인연이라고 하면 된다. 이제 방황이 끝나고 평안을 얻는다. 그래서 ‘불합리하므로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나온다. 불합리한 걸 가능하게 하는 게 진정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거기 비하면 가능한 걸 가능하게 하는 건 별게 아니다.

사람들은 가지가지 공리를 지니고 있다. ‘최초의 원인이 있어야 한다.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그 현상을 일으킨 인격체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죽지 않는다’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다른 공리에 따라 다른 종교가 생긴다. 인류역사상 종교는 수만 개는 될 것이다. 이들은 서로 모순되는 다른 공리를 채택하고 있다. 모든 종교가 다 옳을 수는 없으므로 많아야 한 종교만 옳을 것이다. 즉 모든 종교의 공리들 중 99프로는 거짓이다. 어느 종교가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는 많아야 하나뿐이라는 것은 일종의 존재 증명이다. 어느 게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잘 찾아보고 유심히 살펴보면 엉터리 공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수학을 공부함으로써 얻어지는 논리적인 사고를 통하면 수월해진다.

공리 중에는 틀린 공리도 많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거짓으로 밝혀진다. 예를 들어 ‘자연현상 뒤에는 그걸 주재하는 인격체가 있다’는 공리는 참이 아니다. 풍신·우신·박신(雹神)은 없다. 방안에 불을 피우면 대류현상이 일어나 바람이 불듯이, 지구에도 태양열과 자체 지열에 의해 바람이 일고, 그게 심해지면 태풍이 일어 사람을 죽인다. 콩을 프라이팬에 올리고 열을 가하면 콩이 튄다. 튀는 방향과 높이와 강도는 누가 정하는 게 아니다. 자연법칙에 따라 튀는 것이다. 누가 지나가다 그 콩을 눈에 정통으로 맞아 실명을 하더라도 누군가 숨은 인격체의 의지로 그리된 것은 아니다. 지진도 그런 경우이다. 누가 지진으로 시뻘건 땅속에 빠져 죽더라도 누군가 인격체가 그리하는 게 아니다. 속이 몹시 뜨거워 액체 상태인 지구 자체의 운동일 뿐이다. 자연활동에는 도덕이 없다. 무심할 뿐이다. 무심하기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버린 끓는 물에 개미가 화상을 입고 죽더라도 거기엔 어떤 도덕도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받아들이는 공리가 잘못이라면 어찌될까? 자기 종교가 무너질 것이다. 공리 하나만 무너져도 뿌리째 흔들린다. 유클리드 기하학 5개 공리 중에서 제5공리인 ‘평행선 공리’만 바뀌어도 경천동지할 새로운 기하학이 나온다. 이 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니다. 더 클 수도, 더 작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장 큰 공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 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먼저 어떤 걸 좋아하고 그 다음에 그걸 합리화한다. 합리화할 이론을 만들어낸다. 그걸 종교 용어를 빌리자면 교리라 한다. 남녀관계와 비슷하다. 건달을 사랑하면, 그래도 그이는 속마음이 부드럽다며 합리화한다.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이유이다. 종교는 옳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믿는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걸 따르라’, 이게 최고의 공리일지도 모른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말씀도 무조건 믿지 말고 행해보고 맞으면 믿으라 하셨다. 사람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종교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면, 그 종교가 진리인지 유효한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실험해 보면 된다. 불교는 그만큼 열린 종교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77 / 2019년 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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