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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비우고 또 비워서 더 비울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충만해 집니다”

자기 마음자리에 행복 있음에도
쉼 없이 밖에서만 구하려니 고통
아무리 돈·권력·명예 쌓고 쌓아도 
그것으로 결코 행복은 오지 않아
본래 빈자리임 알아야 충만해져

물길 알아야 우물서 물이 나오듯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정견
바른 견해 가져야 흔들리지 않고
어디에도 천착하지 않는 힘 생겨
마음 평온하면 올바른 지혜 나와

정념 스님은 “정견은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며 “바른 견해를 바탕으로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봉은사 제공

제가 있는 오대산은 아직도 아침기온이 영하 10도지만, 그 속에서도 버들개지가 물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남쪽에서는 매화꽃 소식도 들려옵니다. 봄은 희망과 진리, 행복을 찾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당나라 때 어느 비구니스님의 게송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 망혜편답롱두운(亡鞋遍踏隴頭雲) 귀래우과매화하(歸來偶過梅花下)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하루 종일 봄을 찾아도 찾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온 산을 헤맸네. 집으로 돌아오다 매화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있었네.”

비구니스님이 찾으려 한 봄은 희망을 의미합니다. 달리 말하면 진리를 찾는 것이고, 우리가 행복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봄을 찾기 위해 신발이 다 닳도록 다녀봤지만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집에 돌아와 매화나무에 핀 꽃을 보며 이미 봄이 왔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찾는 행복이라는 것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이미 자기 마음자리에 그대로 갖춰져 있습니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쉼 없이 밖으로만 찾아서 소유하려고, 욕심만 채우려다 보니 신발만 달고 다리만 아픈 꼴입니다. 선문(禪門)에서도 밖에서 구하는 것은 진정한 보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부를 쌓고, 권력이 높아지고 명예를 얻어도 행복은 결코 자기에게 오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애플’을 만든 스티브잡스는 “완전하다는 것은 구하고 구해서 더 채울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비우고 또 비워서 더 비울 것이 없는 상태가 진정한 완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돈과 명예를 쌓고 또 쌓고, 구하고 또 구하면 행복해진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행복이 옵니까? 행복이라는 것은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반야심경’에서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은 공하다고 했습니다. 그 공한 것을 바르게 관찰하고 고통을 뛰어넘을 때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래 빈자리라는 것을 바로 증득해야지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반의 자리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으로 가기 위해 8정도를 닦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정견입니다. 바른 견해라는 것입니다. 정견은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우물을 팔 때 물길을 바로 알지 못하면 아무리 파도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물길을 바로 알고 파야 샘물이 제대로 나옵니다. 그런 것처럼 바른 견해가 없으면 항상 진흙탕 길로 가거나 절벽으로 가게 됩니다.

정견은 나와 대상을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이며 일체가 개고라는 이치를 명료하게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무상한데도 집착해서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면 허망함을 느낍니다. 

‘나’라는 존재도 실체를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법이 무아인데, 모든 만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나’라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인연에 의해 생성하고 또 소멸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가 따로 있고, 상대도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대는 수많은 종교와 사상이 범람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관점이 명료하지 않으면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쪽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이게 맞는 것 같고, 저쪽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저것이 맞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정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견을 명료하게 해서 흔들리지 않고 확실한 진리를 증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회에 나가 법문을 듣고, 경전을 공부해서 믿음을 더 탄탄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실천적 행위가 신해행증(信解行證)입니다. 

정견을 확실하게 세우면 수행을 하건, 기도를 하건,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항상 바르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공부를 해도 정견이 분명하면 어디에도 천착하지 않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망상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견을 갖게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은 여러 것이 있지만 무엇이든 일심으로 해야 합니다. 화두를 들건, 염불을 하건, 주력을 하건, 어떤 수행을 하든 모든 것은 계정혜 삼학을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계율입니다. 계율은 바르게 사는 길, 나도 좋고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좋아지기 위해서 정한 것입니다. 선근공덕도 계율을 잘 지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청정한 수행을 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계율입니다. 

수행을 하면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집니다. 일상에서도 마음을 집중해서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보는 가장 중요한 마음의 바탕입니다. 마음이 흐리거나 망상지심에 사로잡혀 파도가 치는 것처럼 울렁거린다면 어떻게 지혜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평온해지면 올바른 지혜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자기라는 견해, 선입견, 고정관념이 심화돼 있으면 항상 자기안경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워 자기안경을 벗어버리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 현상을 보게 되면 비워진 마음만큼 힘이 생겨나 어떤 어려움이나, 환경이나, 대상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 생겨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소리만 들어도 망상과 번뇌, 근심과 초조가 스며들어 어지럽게 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정보지식이 범람하면서 마음이 어지럽고 물결쳐서 본래 명경지수 같은 자신의 마음을 살피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것을 바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정견이 부족하고 마음이 항상 내면이 아닌 밖으로만 향하고 있으니 정신병리 현상도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인들의 상당수는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대상에 대해 명료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임을 명료하게 알게 되면 방하착 하게 됩니다. 모두 다 내려놓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되면 흔들리거나 집착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명상열풍이 생겨나고 있는 현상은 현대인들의 삶에 있어 그만큼 마음의 문제가 중요한 화두가 됐다는 것으로 의미합니다. 마음이 파도처럼 요동치고 먹구름으로 꽉 찬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지 못하니 마음의 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기를 모르고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공자님은 ‘조문도석사가의’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본래 도라는 그 자리에서 보면 생사가 따로 없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는 헌옷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에 불과합니다. 생사에 연연하지 않고, 인연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바로 도의 경지입니다. 

한 해 한 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죽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시간의 무상성 속에서 고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길을 부처님이 제시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따라 우리는 지속적으로 가야 합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목전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에 바빠 무상과 영원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더 깜깜한 나락으로 계속해서 추락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올해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합니다. 황금돼지가 들어오게 하려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만복’이라는 것도 결국 문을 열어야 들어올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꽃이 피고 새가 우는 희망의 봄이 왔으니까 한 생각 돌이켜 발심을 일으켜서 번뇌망상에서 벗어나 지극한 정성으로 마음공부를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밖에서 봄을 찾지 말고 내 안의 봄을 찾는 올바른 견해를 가지셔야 합니다.

소한, 대한의 찬 기운을 견딘 매화가 진한 향기를 내뿜어내듯 비록 현재의 역경이 있더라도 올바른 견해로 갖고 정진하면서 내 안의 참 모습을 찾아가는 매화꽃 같은 불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이 법문은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이 2월17일 서울 봉은사에서 열린 일요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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