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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화엄성중의 정체-상

기자명 이제열

강한 보호자 갈망이 신장으로 표출

홀로 화엄성중 기도때마다
출현한 신장은 의식의 투여
자기의 망상에 속고 있는 것

지방의 어느 사찰에 초청을 받아 법회에 갔을 때였다. 점심 공양을 끝내고 일어서려는데 몇몇 불자가 차 한 잔 모시겠다고 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던 중에 한 여성불자가 옆에 앉은 분을 가리키며 “법사님, 이 보살은 신장님 가피를 받고 사는 사람입니다. 신장 기도를 열심히 해요”하고 말했다. 나는 당사자에게 칭찬을 곁들이며 “불자님은 어떻게 기도 하시기에 신장님 가피를 받으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신중기도를 하게 된 사연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늘 우울했다. 그러다 시집을 갔는데 집안에 우환이 많아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절에서 정초 화엄성중 기도를 한다기에 동참해서 화엄성중 정근을 할 때였다. 한참 정근을 하다가 눈을 떠 신중탱화를 바라보는데 신중님들이 벙글벙글 웃고 계셨다. 그 뒤로 신심이 더 돈독해져 열심히 화엄성중 기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혼자서 법당에 앉아 신중 기도를 하는데 옆에 인기척이 있어 돌아보았다. 옆에 두 개의 큰 형체가 서 있었다. 구척장신에 도포를 입었으며 포졸들이 쓰는 관을 쓰고 칼을 찬 신장님이었다. 그는 매우 놀랍고 두려웠다. 하지만 이는 필시 자신의 기도에 감응한 신장님이 보호해주시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기도했다. 지금도 늘 기도할 때면 신장님들 두세 분이 나타나 자기 옆에 서계신다고 했다.

나는 그 불자의 말을 듣고는 앞으로도 그 신장님들이 계속 보호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도 가끔은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신장님들이 알고 계신다는 생각에 솔직히 행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대답에 나는 한 가지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혹시 불자님은 어렸을 때에 가정에 남자들이 계셨는지요? 아버지나 오빠들 속에서 자라나셨습니까? 그리고 지금의 남편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렸을 때에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오빠 한분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오빠도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일찍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제게는 언니 한분이 있고 어머니가 홀로 저희 자매를 키우셨습니다. 현재 남편이 있는데 크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나는 그 불자의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해주었다. 그가 본 신장들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화엄성중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망상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 불자의 무의식 속에는 든든한 보호자가 옆에 있어주기를 항상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성장기 시절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남자들이 주변에 없었고 남편마저 나약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보니 그의 마음은 늘 불안했고 외로웠다. 바로 이 같은 의식들이 보호성격을 띤 화엄성중을 만남으로 인해 투사됐고, 그 투사심리가 종교적 행위와 섞여 신장이라는 환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사실 기도 중에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은 제 망상에 제가 속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자들 중에는 그분처럼 화엄신장을 보았다는 이들이 종종 있다. 더러는 스님들조차 절에 신장님이 돌아다니신다느니 자기 몸을 쫓아다니며 보호해 준다느니 하는 말들을 한다. 모두가 환상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경에서 가르치는 화엄신장과는 거리가 먼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정신에서 나온 환상들을 화엄신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무속인들을 살펴보면 거의가 신장을 모시고 있고 신장과 교류를 한다고 여긴다. 그들은 기도나 굿을 하는 동안에 실제로 신장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신장의 말을 듣기도 하며 신장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화엄성중을 본다는 불자나 스님들과 무속인들이 본다는 신장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경에서 가르치는 화엄성중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음호에 이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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