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봉탑 혹은 부도탑 ② - 진광 스님
4. 무봉탑 혹은 부도탑 ② - 진광 스님
  • 진광 스님
  • 승인 2019.02.26 13:24
  • 호수 1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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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기적인데 무엇을 더 만들고 짓겠다 하는가”

당의 남양혜충국사 입적할 당시
황제에게 무봉탑 봉안 간청하자
황제, 국사의 진의 알아듣지못해
무봉탑은 형체와 모양도 없는탑

법정 스님의 마지막 유언도 울림
“장례식 하지마라, 관 짜지마라”
‘비구 법정’ 쓴채 다비하는 모습
지금도 감동과 환희로 남아있어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은 오뚝이처럼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 나는지라 일명 ‘부도옹(不倒翁)’이라 불린다. ‘탑(塔)과 부도(浮屠), 세월의 흔적’이란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데 난 어떤 경우에도 거꾸러지지 않는 ‘무봉탑(無縫塔) 혹은 부도탑(不倒塔)’을 써 볼 작정이다.

벽암록 18칙에는 남양혜충 국사가 입적할 때 당의 숙종 황제에게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을 만들어 줄 것을 간청하는 선문답이 전해진다. 

숙종 황제가 혜충국사에게 “국사께서 입적한 뒤에 필요한 물건이 무엇입니까?”물으니 “노승을 위해서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황제는 “국사께서는 탑의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다시 물으니 혜충국사가 한참동안 말없이 있다가 “알았습니까?”라고 하자 황제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국사가 “나의 법을 부촉한 제자 탐원(耽源) 스님이 있는데 이 일을 알고 있으니 조서를 내려 그에게 묻도록 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국사가 입적한 뒤 황제는 조서를 내려 탐원 선사에게 “국사가 말씀한 이 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 탐원은 “상주의 남쪽, 담주의 북쪽, 거기에는 황금이 있어 온 나라에 가득하다. 그림자 없는 나무아래 함께 타는 배가 있다. 유리로 만든 궁전 위에 아는 사람이 없도다”라고 게송으로 대답했다.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이란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탑을 말한다. 형체가 없는 탑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온 우주의 법계를 하나의 탑으로 말한 것이다. 혜충국사께서 침묵으로 이미 대답했으나 황제가 이를 알아듣지 못하자 부득이 제자 탐원에게 물으라 한 것이다. 이에 탐원은 게송으로 우주건곤이 모두 무봉탑 아님이 없다는 소식을 읊고 있다.

무봉탑은 어떤 고정된 모양이 없고, 어떤 고정된 장소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방세계가 모두 무봉탑인 것이다. 무봉탑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무봉탑을 찾고 있는 것처럼, 무봉탑의 경지를 아는 사람이 없음을 게송으로 읊은 것이라 할 것이다.

법정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 가슴을 울린다. 

“장례식은 하지마라. 관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대나무 평상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사리는 찾지 말고, 탑도 비도 세우지마라. 재는 오두막 뜰의 꽃밭에 뿌려라!”, 그리고는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은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라고 당부하셨다.

마지막 다비장 가는 길 관위에 다만 ‘비구(比丘) 법정(法頂)’이라고만 쓰고 평소 수하던 가사로 덮은 채 다비하던 무소유와 맑은 가난(淸貧)의 맑고 향기로운 마무리는 많은 이의 가슴에 감동과 환희로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혜충국사 무봉탑의 현현(顯現)이 아닐까 생각한다.

반면에 중국 최초의 여(女) 황제였던 측천무후는 세상을 떠날 무렵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 너무나 많으므로 비석 하나에는 다 기록할 수 없을테니 그저 아무것도 새기지 말고 비워 두라는 유언을 남겼다.

중국 시안(西安) 인근의 건릉(乾陵)에는 당나라 고종과 그의 황후인 측천무후가 묻혀있다. 그곳에는 아무런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은 ‘무자비(無字碑)’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측천무후의 공덕비인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오만방자한 욕망과 명예욕은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전남 장성군에는 비석에 아무런 글이 쓰여 있지 않은 ‘백비(白碑)’가 있다. 이는 조선조 3대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던 박수량 선생의 청빈한 삶과 그 정신을 반영하고 있어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글을 쓰거나 공적을 기록하지 않은 비석이건만 누구는 칭송되고 누구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비록 온갖 미사여구로 기록된 비라 할지라도 삶과 수행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무언의 가르침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까닭에 옛글에 “큰 이름은 애써 돌을 쪼아 무언가를 새길 필요가 없나니 지나가는 나그네의 입이 곧 비석이니라(大名豈有鐫頑石 路上行人口是碑)”라고 한 것이리라.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무봉탑’이자 ‘무자비’이며 ‘백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달라이라마는 “자기 안에 자비와 친절의 사원을 지읍시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렇다. 온갖 보배로 팔만보탑이나 사리탑을 짓는 것이 복덕이 아닌 것은 아닐지라도 한 생각을 돌이켜 자기 안에 자비와 친절의 사원을 짓는 것만 하겠는가 묻고 싶다.

그리하여 각자의 삶과 수행에서 다른 모든 이에게 자비와 친절을 베푼다면 온 세상의 자연과 사람들이 모두 탑과 부도 아님이 없을 것이다. 그런 세상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정토이고 불국이며 화엄세상이 아니겠는가.

이제 살아 숨 쉬는 자연과 사람들이 제 스스로 탑과 부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그것이 바로 무봉탑(無縫塔)이자 무자비(無字碑)이며 또한 백비(白碑)이자 부도탑(不倒塔)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삶과 수행이 바로 기적(奇蹟)이고 사리(舍利)이며 탑(塔)과 부도(浮屠)이다. 

다시 무엇을 더 만들고 짓겠다는 말인가. 허공과 해와 달, 그리고 바람과 구름이 모두 탑이고 부도인 것을.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vivachejk@hanmail.net

 

[1478 / 2019년 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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