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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 보물 지정예고

  • 성보
  • 입력 2019.02.26 15:51
  • 수정 2019.02.26 16:35
  • 호수 1479
  • 댓글 0

금속품 11점·도자류 7점 등
땅속서 온전히 출토 희귀품
섬세한 기법 조형성 돋보여

문화재청 제공.
인각사 출토유물 전체. 문화재청 제공.

통일신라~고려 초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가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2월26일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軍威 麟角寺 出土 供養具 一括)’을 보물로 지정예고 했다.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은 금속공예품과 도자류 등 총 18점으로 구성된 출토물로 2008년 인각사의 1호 건물지 동쪽 유구에서 발견됐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의상대가사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인각사 근처에 우뚝 솟은 바위 벼랑에 기린이 뿔을 걸었다 해 이름을 ‘인각사’로 붙였다. 일연 스님이 머물며 ‘삼국유사’를 완성한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인각사출토유물금동사자형 병향로. 문화재청 제공.

출토품 중 금속공예품은 총 11점으로 금동사자형 병향로(金銅獅子形 柄香爐), 향합(香盒), 정병(淨甁), 청동북(金鼓) 등으로 구성됐다. 병향로는 가로로 기다란 손잡이가 달린 향로며 정병은 목이 긴 형태의 물병이다. 정병은 부처님 앞에 깨끗한 물을 올리는 공양구로써 중생들의 목마름과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의 상징물이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청동제 의례용품들로서 조형성이 뛰어나고 섬세한 기법이 돋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화재청 제공.
인각사 출토유물 가릉빈가상.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특히 불교에서 천상의 새를 상징하는 ‘금동가릉빈가상(金銅迦陵頻伽像)’은 그동안 출토 사례가 거의 없어 도상적(圖像的)으로 희귀하다”며 “청동발(靑銅鉢)과 청동뚜껑 역시 통일신라 시대부터 유행한 전형적인 형태로서 당시 공예기술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도자류 7점은 모두 당나라 월주(越州)에서 생산된 것으로 8세기 말~10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출토 중국 도자의 편년기준을 제공할 뿐 아니라 국내산 청자 기법을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인각사 출토 청자.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신라 말~고려 초 금속공예품들은 대부분 사찰이나 박물관 등지에서 전해 내려오던 유물이지만, 인각사 출토 공양구는 보기 드물게 땅속에서 온전히 출토된 것”이라며 “비교적 이른 시기 보기 드문 금속기명과 청자 유물들이 일괄 출토돼 명확한 출토지와 편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다.

이날 문화재청은 ‘경주 분황사지’를 사적 548호로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을 사적 제 549호로 지정했다. ‘경주 분황사지’는 신라 대표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분황사가 있던 곳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643) 창건됐으며 자장 스님과 원효 스님이 머무르며 불법을 전파했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1990~2014년 실시한 불굴조사로 확인한 현재의 경역 내·외부를 보면 창건 당시 신라 최초의 품(品)자형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堂式) 가람으로 축조됐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의 중건을 거쳐 광해군 원년(1609)에 현재 금당인 보광전을 조성,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장기간 체계적 발굴을 통해 가람의 배치 양상과 그 변화상뿐 아니라 경역 대부분을 규명해 낸 사찰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 제공.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과 분황사 전경. 문화재청 제공.

사적 제549호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은 처음 경주 황룡사지와 관련한 전시관 건립 부지로 선정돼 1999년 시굴조사를 하던 중 통일신라 시대 석축, 담장, 우물 등의 유적을 확인하고 2004년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원지 유적이다. 구황동 원지는 동궁과 월지, 용강동 원지에 이어 원지의 조성연대, 규모, 내부구조 등을 확인한 세 번째 신라왕경 원지 유적으로 희소성이 있다.

‘경주 분황사지’와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지만 다른 시기 다른 유적이다. 한때 구황동 원지가 분황사에 속한 사원지(寺園池)로 여겨진 적도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출토되는 다양한 유물의 시기를 추정하여 볼 때 두 유적은 별개의 것으로 밝혀졌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479 / 2019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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