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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피해자를 탓하는가

기자명 진원 스님

젠더폭력 가운데 대표적인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의 피해여성들에게 늘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다. ‘피해자도 잘못했네.’ ‘전혀 피해자답지 않아.’라는 등의 말이다. 피해자를 향해 던지는 이런 말들은 대표적인 사회적 폭력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 같은 피해자 유발론은 사회적으로 규정지어 놓은 젠더의식에 기반한 성차별적인 언행으로 2차 가해와 다르지 않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아내를 혹은 자녀를 때리는 시늉도 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랑의 폭력’은 없다는 것이다. 폭력피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가해자와 그 환경에 대해 궁금해야 한다. ‘가해자는 어떤 사람인가?’ ‘가해자가 어떤 환경에 노출되어 양육되었는가?’ ‘어떤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가?’ ‘가부장적인 사고로 가족구성원을 통제하거나 억압하지는 않는가?’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은 있는가?’ ‘범죄임을 인지하고 있는가?’ 등 가해자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 때 피해자 유발론이 잠재워질 수 있다. 그래서 가해자에게 어떤 치료가 필요하고 어떤 상담으로 폭력적인 행동과 인지를 수정해야 하는지, 어떤 책임을 지고 범죄에 대한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다. 그럴 때 피해자는 피해자 유발론과 같은 2차 피해와 복합외상의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모 정치인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자 우리 사회내부에서는 ‘피해자다움’에 대해서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가 전혀 피해자답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가? 우리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에 노출된 여성이나 아동들에게 어떤 정형화된 피해자 코스프레를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가 웃고 다니거나 행여 쇼핑을 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외출을 해도, 가까운 지인들과 커피를 마셔도, 정상적으로 출근을 해도, 누군가에게 피해당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감당해도 피해자가 전혀 피해자답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자는 우울해야 하고, 혼자 고민해야 하고, 출근도 하지 말고, 밝게 웃지도 말아야 하는 이런 양상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피해 여성들에게 중세 때의 성의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여성에게 친절한 말을 하고 지지하고 공감해주면서 접근하는 이른바 ‘길들이기’를 통해 가하는 성폭력은 성폭력이 아니라 간음정도로 치부한다. 성폭력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위력을 입증해야 하고, 성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으로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은 자기결정권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의 성적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위치와 상황에서 일어난 성적 행위는 권력을 기반으로 한 위계에 의한 성폭력으로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 2차 가해이고,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임이 분명하다. 특히 나이나 권력 관계에 일어나는 피해는 피해자의 생계와 연관이 된다.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의미다. 피해자는 세상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집중과 시선, 고립 등으로 피해를 드러낼 수가 없는 상황이 많다. 그래서 직장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의 경우 직장 내 분위기 때문에,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냥 농담으로 넘기고 평소와 다름없이 처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사권자이거나 위력을 가지고 있는 상사의 야한 농담을, 가볍게 스쳐가는 손길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피해자에게는 잘못이 없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범죄자일 뿐이다. 생존의 문제로 참고 견딘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원 스님 여성긴급전화1366경북센터 센터장 suok320@daum.net

 

[1479 / 2019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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