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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화엄성중의 정체-하

기자명 이제열

모든 자연현상을 부처님으로 삼은 것

화엄경 등장하는 신들은
모두가 다 부처님의 화현
연기법성을 불격화 한 것

신중기도를 열심히 해서 가피를 받았다는 그 불자처럼 신중신앙은 기복적인 성향이 짙다. 신중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월적 대상으로 여기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거나 우환을 없애주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신중기도를 열심히 하면 신중이 늘 자신을 따라다니며 지켜준다고 믿는다. 불자들의 이러한 신중 신앙이 잘못되었다고만 볼 수는 없다. 수많은 경전에서 신중은 삼보를 보호하고 신심이 깊은 중생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신중의 종류는 다양하다. 불법을 지키는 대표적 신중은 제석천과 범천이다. 제석천은 천계의 왕이고 범천은 세상의 왕이다. 밑으로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천왕이 있고 이들보다는 격이 좀 낮은 여덟 종류의 팔부신중이 있다. 그밖에 산신과 용왕 등 하계 신들이 불법을 보호한다. 신중을 보통 절에서는 화엄성중이라고 부른다. 이는 절에 모셔진 신중탱화가 ‘화엄경’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에 근거해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중들이 ‘화엄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신중에게 반드시 화엄이라는 명칭을 부칠 필요는 없다. 신중이 ‘법화경’에 등장하면 법화신중이 되고, ‘금강경’에 등장하면 금강신중이 된다. 중요한 것은 대승에서의 신중들 위상은 신의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화엄경’의 경우 여기에 등장하는 신들의 본질은 부처님이다. 불자들이 암송하는 ‘화엄경 약찬게’의 집금강신을 비롯하여 온갖 신들과 모든 천왕들은 모두 부처님의 화현이다.

이는 불계의 부처님이 화엄의 대각 경지인 일진법계의 이치를 중생들에게 열어 보이기 위해 방편으로 신중의 모습을 띤 것이다. 이를 ‘여래화현(如來化現) 신중신(神衆身)’이라한다. 불자들이 화엄신중에게 공양 올리고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혹자들은 불교의 신중들은 모두 중생이므로 예배하거나 공양 올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화엄신중의 경우는 이들과 다르다. 화엄신중이 비록 신의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부처님의 화현이라면 마땅히 예배 귀의해야 한다.        

더 살펴봐야 할 것은 ‘화엄경’에서 신중으로 화현한 부처님이다. ‘화엄경’에서 법을 설한 부처님은 청정법신인 비로자나 법신이다. 비록 ‘화엄경’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을 통해 설해졌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누리시는 경지는 법신 비로자나불이므로 설주(說主)가 비로자나불이 된다. 여기서 비로자나불은 세상 모든 존재에 적용되는 진리 그 자체를 몸으로 삼으신 부처님이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존재에 적용되는 진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연기법이다. 일체만유는 물질적 존재이건 정신적 존재이건 모두 연기의 법성에 의지해 생하고 멸한다. 비로자나 법신은 이러한 연기의 법성을 불격화(佛格化)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일체만법을 관통하는 연기의 법성을 부처로 삼는다면 일체만법은 그대로 부처님이 된다. 다시 말해 ‘화엄경’에 나오는 온갖 신들은 신들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자연현상을 부처님으로 삼은 것이다.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의 진리에 의해 교리가 펼쳐진다.

부처님은 연기를 보는 자 여래를 본다고 했다. 일체만법이 연기이고 연기가 곧 부처님이라면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은 그대로 부처님의 몸이 된다. 천상과 허공과 해와 달과 산과 나무와 강과 바다와 물과 불이 모두 부처 아님이 없다. 절에 모셔진 신중의 진면목은 갑옷을 입고 창을 잡은 장군의 모습이 아니라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 그대로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에 부처님과 연기의 법성과 신중이 모두 하나이며, 그 안에는 예배를 올리는 자신도 포함된다. ‘화엄경’의 측면에서 보면 신중에게 예배를 올리는 중생이 이미 신중의 지위에 올라 있다. 중생 역시 연기의 법성을 머금은 비로자나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신중기도 하는 불자님에게 이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분의 신중기도가 더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79 / 2019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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