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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자에 대한 단상 ① - 동은 스님

기자명 동은 스님

“의자가 문제인가? 내 마음자리 의자가 문제일 뿐”

몇해전 아름드리 소나무 쓰러져 
잘라서 통나무 의자로 놓았더니
불자들 이야기꽃 자리로 거듭나
​​​​​​​
내 방사에는 돌아가는 의자 있어
허리와 무릎 부실한 사정 잘 아는
불자 선생님께서 나에게 선물해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의자 보니
가끔 균형을 잃는 내 모습 보여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누각이 시끌시끌하다. 내다보니 참배 온 분들이 누각 통나무 의자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몇 년 전 설해목으로 쓰러진 아름드리 소나무를, 화목으로 쓰기엔 아까워 적당한 크기로 잘라 누각에 의자용으로 갖다 놓았었다. 절에 와도 잠시 앉아 쉴 곳이 없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참배객들에겐 딱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제일 좋은 토막은 가운데 탁자로 놓고, 중앙의 경치 좋은 자리에는 허리 받침대까지 있는 것으로 놓고 나니 제법 그럴싸한 ‘야단법석’이 되었다. 

나는 평소 산책을 즐긴다. 선방 다닐 때에도 그 도량의 산책로가 마음에 들어야 방부를 들이곤 했었다. 방안에서의 정진도 좋지만, 자연을 벗 삼아 조용히 걸으며 공부를 챙기는 행선(行禪)이 허리가 아픈 나한테는 더 잘 맞기 때문이다. 점심공양 후에는 온전히 혼자 거닐 수 있는 ‘동안(動安)명상로’를 자주 간다. 산책로 중간쯤 명당자리에 의자가 있는데, 이쯤에서 잠시 앉아 쉬며 음악을 듣기도 한다. 이 오솔길에 멈추어 쉴 수 있는 의자가 없었다면, 숲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산책을 다녀오면 고요하게 좌정하고 혼자만의 차(茶)를 즐긴다. 그런데 나의 고질병인 허리와 무릎 때문에 바닥에 오래 앉아 있질 못한다. 어느 날, 아는 스님으로부터 아주 멋진 선물을 하나 받았다. 처음 보는 작은 기도의자였다. 꿇어앉은 자세에서 그것을 엉덩이 밑에 받치고 앉으면 허리가 쭉 펴지면서 무릎에 무리도 안가고 편한 것이 희한했다.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처음에 누가 이것을 생각해 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잘 쓰고 있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의자’ 

참으로 따뜻한 시다. 참외와 호박한테도 편히 자랄 수 있게 의자를 내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니, 시인의 어머니는 보살의 마음과 진배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의 의자가 필요한 것이다. 학인시절, 어느 큰스님을 찾아뵙고 공부 길을 여쭌 적이 있었다. 

“큰스님, 어떻게 하면 중노릇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 바로 말씀 해 주셨다. “앉고 일어설 때를 잘 알아야 하느니라.” 

한 마디로 시원하게 정리를 잘 해 주셨는데, 문제는 그 앉고 일어설 때를 어떻게 잘 아느냔 말이다. 조금 아쉬운듯해서 더 앉아 있다 보면 때를 놓치기가 일쑤고, 이 때다 싶어 앉아 보면 아직 때가 아닐 때도 있다. 그 묘한 때를 맞춘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그 적절한 타이밍은 오로지 오랜 경험지에서 나온다. 

아무리 좋은 의자라도 오래 쓰다보면 낡아서 바꿀 수도 있다.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들여놓는 것이다. 하물며 그 목적이 무엇인가에게 자리를 내어줄 용도로 만들어진 의자야 말해 무엇 하랴. 가끔 빈 의자가 예술품이나 의미 있는 목적으로 쓰여 지긴 하지만, 어쨌건 의자에는 사람이 앉아 있어야 제격이다. 그런데 그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내 맘도 편하고 남이 봐도 부담스럽지 않은 편안한 자리여야 한다. 내 분수와 깜냥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연에 따라 이런저런 의자에 앉게 된다. 어떤 의자에 앉게 되던 주어지는 직책에 대한 의자에 감사해야 하고, 또한 그 자리에 있는 동안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다음 사람에게로 이어지는 것까지 염두에 두면서 살아야 한다. 그만큼 의자는 앉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어설 때도 중요한 것이다. 

이제 삐걱거리는 나의 낡은 의자 이야기다. 내 방은 사무실, 응접실, 침실을 겸용하고 있다. 업무를 보는 책상은 십여 년 전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것이다. 의자는 우리 절 홍동식 선생님께서, 사용 연한이 다 된 학교 의자를 교체할 때 하나 갖다 주셨는데 바퀴가 달린 회전의자다. 요즘에야 회전의자가 흔하지만 옛날엔 출세와 명예의 상징이었다. 출가 할 때, 내가 회전의자에 앉아 보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살다보니 이런 의자에도 앉게 되었다. 그런데 스님 방안에 이런 바퀴달린 사무실 의자가 있는 것이 어울리진 않는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산사에는 색 바랜 낡은 앉은뱅이 책상과 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좌복이 어울린다. 그런데 이 몸이 허리와 무릎이 시원찮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방안에다 이런 의자를 들여놓게 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의자는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다. 사무용이 되었건, 의료용이 되었건 이제 의자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문제다. 의자를 바꾸어서 사람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필요할 때 바꾸면 되겠지만, 그 의자를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백날 소용없다. 

다시 한 번 내게 묻는다. 나는 과연 지금, 이 의자에 앉아 있을 자격이 되는가? 아무래도 함량미달이다. 당장 의자에게 참회해야겠다.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너를 바꿀 것이 아니고, 가끔 균형이 흐트러져 흔들거리는 나의 마음자리 의자부터 바꾸어야 되겠다고.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479호 / 2019년 3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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