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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불교활동가의 연기설 오해

기자명 이제열

“십이연기는 불자들이 추구할 바 못돼”

이것과 저것을 연기 단정하고
“연기적 삶” 등 피상적 강조
십이연기는 괴로움 형성 이론
사회 운동 이념으로는 부적절

모 불교 시민운동 단체에서 주관한 행사에 참여했을 때 일이다. 행사 첫머리에 주제발표가 있었다. 들어보니 연기사상에 입각해 사회운동을 활발히 펼쳐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발표자가 말하는 연기와 관련한 내용들이 너무 빈약하고 문제도 적지 않았다.

우선 어떤 연기설인지가 확실하지 않았다. 연기설에는 십이연기설을 비롯해 업감연기설, 육육연기설, 육대연기설, 진여연기설, 아뢰야식연기설, 법계연기설 등이 있다. 발표자는 어떤 연기설에 입각해 불교운동을 해야 하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그저 피상적으로 “연기적 삶”이니 “연기적 관계”니 하면서 연기를 강조했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은 지금 어떤 연기설에 대해 말씀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발표자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게 연기설”이라고 답했다.

나는 다시 “선생님이 방금 이것과 저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이며 저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발표자는 “이것과 저것이란 상의상존 관계입니다. 내가 있으니까 네가 있고 네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것입니다. 만물은 이와 같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말은 세상만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부처님이 가르치신 연기설을 만물 상호의존 원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발표자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선생님이 ‘이것’과 ‘저것’을 중심으로 연기를 설명했지만 실은 ‘이것’과 ‘저것’이 어떤 물질이나 사람 혹은 생명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중생의 고통이 발생하는 순서와 소멸하는 순서를 밝힌 십이연기설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인 ‘무명’이 있으므로 저것인 ‘행’이 있고, 이것인 ‘행’이 있으므로 저것인 ‘식’이 있다는 방식으로 12종류의 고리들 즉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들이 앞의 ‘이것’에 의해 뒤의 ‘저것’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이것’과 ‘저것’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설은 괴로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속하므로 전혀 좋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또 지금 연기설을 거꾸로 알고 있음을 말했다. ‘이것’과 ‘저것’은 소멸되어야 할 개념들이지 결코 권장돼야 할 게 아니다. 이것인 ‘무명’이 없으면 저것인 ‘행’도 없어지고, 이것인 ‘행’이 없어지면 저것인 ‘식’도 없어지는 방식으로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들이 모두 없어져 십이연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과 ‘저것’에 기초한 십이연기의 발생은 중생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진리이고, 이를 소멸하는 것이 바람직한 진리인 것이다. 따라서 선생님이 주장하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으니까 이것과 저것을 배척 관계로 보지 말고 상의 상존 관계로 보아야한다’는 연기설 견해는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십이연기설을 사회운동의 이념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어울리지도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발표자는 자신이 불교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교리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도 않은 채 피상적으로만 연기설을 알고 있었다며 언제 만나서 고견을 듣고 싶다는 말로 내 의견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주었다.

원력과 소신을 지니고 척박한 불교환경 속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분들의 열정적인 노력에 비추어 교리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한 점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교활동에 반드시 교리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라도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해서는 명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81호 / 2019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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