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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 명의 스승과 ‘콘체르토’

기자명 김준희

여러 악기 어우러진 선율서 깨달음의 길 연상

베토벤 협주곡 ‘트리플 콘체르토’
세 악기 독주 방식으로 어우러져
스승에 안주 않고 깨달음 향했던
싯닷타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사원 부조 가운데 부처님이 알라라깔라마를 만나는 장면.

수행자 싯닷타는 가장 번성했던 강대국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자가하로 향했다. 당시의 라가자하는 사문들의 활동이 활발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곳이었다. 다양한 사문들의 활약과 그들에게서의 배움을 기대하며 길을 떠난 싯닷타는 참된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싯닷타가 먼저 찾아간 수행자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라고 하는 두 수행자였다. 싯닷타는 그들의 제자가 되어, 이들이 주장하는 최고의 선정을 배우게 되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집중력과 영민함을 지녔던 싯닷타는 곧 그들이 말하는 경지를 몸소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경지가 아님을 알고 두 스승의 곁을 떠나게 된다.

협주곡(Concerto)은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경쟁하다’ ‘경합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콘체르타레(concertare)에서 비롯되었다. 협주곡의 원형은 ‘콘체르토 그로소’, 즉 ‘합주 협주곡’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는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아닌, 오케스트라 간의 경쟁이 그 기원이 되는 것이었다. 바로크시대에는 악기 간의 경쟁이 기악곡의 기본 원리라고 생각되었고, 그 이후 독주악기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독주악기를 위한 협주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협주곡은 주요 음악회에서 주인공과 같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두 개 이상의 악기를 위한 협주곡 중에 가장 대표적인 협주곡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C장조, K.299’이다. 이 곡은 서로 성격이 다른 두 악기가 각각 화려하면서도 조화롭게 독주악기로서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 역사가 가장 오래 되었다고 생각되는 유려한 음색의 하프와 목관 악기 중 화려한 테크닉을 가장 잘 보여주는 플루트의 조화가 느껴진다. 

알라라깔라마가 부처님에게 같이 수행자들을 지도하자고 권유하는 장면.

또한 느린 2악장에서는 관악기는 모두 배제된 채 현악기만이 흐르는 오케스트라의 선율 위에 매혹적인 음색으로 두 악기의 독주 선율이 펼쳐진다. 명상적일 정도로 고요한 이 악장에서는 특히 하프라는 다소 낯선 악기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오케스트라 없이 연주되는 카덴차에서의 플루트와 하프 두 악기의 청아한 대화는 오묘하기까지 하다. 성격이 다른 두 악기, 현악기와 관악기가 진리를 찾아가는 고타마 싯닷타라는 인물 하나로 수렴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참된 스승을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좋은 스승을 눈앞에서 놓치기도 하고, 다소 올바르지 못한 누군가를 스승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요즘에는 스승보다는 오히려 좋은 ‘멘토(mentor)’의 역할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 같다. 멘토는 경험이 적은 어린 사람에게 조언과 도움을 베풀어 주는 유경험자나 선배를 뜻하는 말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모험담으로, 전장으로 떠난 오디세우스를 대신해 그의 오랜 친구 멘토르가 텔레마코스를 보살피는 내용이 등장한다. 긴 시간 동안 텔레마코스를 보살피는 멘토르의 역할이 마치 스승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절묘한 순간 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변신이 진정한 오늘날 ‘멘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위기에 빠진 텔레마코스에게 멘토르의 모습을 빌려 나타나 날카로운 조언을 해주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진정한 스승이자 조력자의 역할인 것 같다.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에 품었던 문제를 풀고 싶었던 싯닷타는 두 스승을 만났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실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싯닷타는 그 두명의 스승에게서 홀로 수행의 기본기를 충실히 익히는 소기의 성과는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두 스승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들을 떠나 스스로 깨달음의 길을 찾아 고행의 길로 들어선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C장조 작품56’ 은 세 명의 독주자들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을 때 그 아름다움이 최고조에 달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803년 작곡하여 이듬해 완성된 일명 ‘트리플 콘체르토’는 베토벤의 작품 활동이 가장  왕성하던 시기의 작품으로 발트슈타인 소나타, 열정 소나타, 크로이체르 소나타 그리고 영웅 교항곡 등 음악적으로 성숙해진 그의 작품들이 함께 발표된 시기이기도 했다.

젊은시절 정트리오의 정갈한 음색과 음악적 패기가 느껴지는 베토벤의 ‘트리플 콘체르토’ 음반.

세 개의 악기가 독주 악기로 등장하는 이 특이한 협주곡은 형식적으로는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고전시대 초반에 성행했던 협주곡의 형식)나 바로크 시대의 ‘합주협주곡’에 가까울 수 있으나, 음악적 내용으로 보면 오히려 낭만시대의 협주곡에 가깝다. 특히 다섯 개의 첼로 소나타를 남기면서 첼로라는 악기를 독주악기로의 반열에 올려놓은 베토벤의 업적만큼이나 이 곡에서의 첼로의 역할은 광대하다. 대부분의 도입부는 첼로의 선율이 다른 두 악기의 선율을 이끌어나가고 있으며 기교적으로도 상당히 어렵다.

다소 무겁고 단호한 제 1악장과 서정적인 제 2악장 그리고 당당하면서도 귀족적인 느낌을 주는 폴로네이즈 풍의 마지막까지 악기간의 긴장감과 동시에 서로를 음악적으로 지지해 주는 듯한 동지애까지 엿볼 수 있다. 오케스트라와의 경쟁, 독주 악기들 간의 경쟁, 그러나 결국에는 조화로운 하모니를 위한 여정이 여실이 드러나는 이 작품은 오랫동안 음악적으로 교류가 있었던 연주자들이나 형제 음악인들의 연주를 대했을 때 상당히 감동적이다. 1807년 초연 당시 베토벤이 직접 피아노를 맡아 연주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지난 시대의 형식에 다가올 시대의 음악을 담은 악성(樂聖)의 연주가 새삼 궁금해진다.

최고의 선정을 위한 수행의 경험에서, 스승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더 높은 경지를 탐구하고자 했던 싯닷타의 의지와 노력이 그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게 되었다. 어쩌면 수행의 길과 고행을 과정을 통해 싯닷타는 스스로에게 멘토, 스승, 조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러 악기를 위한 협주곡에서 나타나는 각 악기의 선율들을 인생에서 만나는 스승, 멘토, 조력자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스스로 노력하는 치열한 ‘나의 모습’으로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꽉 찬 선율 안에서 더 나은, 지혜로운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느껴보자.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481호 / 2019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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