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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조코 벡의 일상 선(禪)-상

기자명 장은화

힘들게 싸우기보다 그 자체 바라보는 수행법 강조

스승의 문란한 생활 실망해 결별
일본선 가부장적 부분 내려놓고
선 수행에 서양문화 적극 수용해

선센터 세워 ‘평상심 선종’ 창시
느슨하고 비계층적 조직으로 운영

1970년대 후반 로스앤젤레스 선센터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 샬롯 조코 벡. (오른쪽에서 두 번째)

미국 뉴저지 태생의 샬롯 조코 벡(Charlotte Joko Beck, 1917~2011)은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교사로 일하다가 1965년 40대의 나이에 선 수행에 입문했다. 그녀는 타이잔 마에주미(前角博雄, 1931~1995), 하쿤 야수타니(安谷白雲, 1885~1973), 소엔 나카가와(中川宋淵, 1907~1984) 등 일본인 노사(老師)로부터 선을 배웠다. 마에주미 선사는 일본 조동종, 삼보교단, 임제종의 세 계보에서 각각 전법인가를 받았으며, 미국으로 건너와 선을 가르칠 때 전례 없이 임제종의 공안과 조동종의 지관타좌를 결합하여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의 선풍은 조동종 선사였다가 후에 조동선과 임제선의 장점을 취합하여 새로운 개혁선종인 삼보교단을 창시했던 야수타니에게 오랜 기간 선을 배운 영향이 컸다. 소엔은 대만출신의 일본선사이며 임제선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1978년 조코는 마에주미의 제자 열두 명 중 세 번째 전법제자가 되었지만 1983년 스승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마에주미 노사는 미국불교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로서 조코 벡이 그와 사제의 인연을 끊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마에주미는 로스앤젤레스 선센터(ZCLA: Zen Center of Los Angeles)의 지도자였다. 장시간의 좌선, 전통적인 단계적 공안공부, 그리고 정기적인 독참(獨參)을 비롯하여 그의 수행 지도는 엄격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고 조동종의 전통적인 의례절차도 변함없이 유지해나갔다. 그런데 1983년, 마에주미는 자신의 영향력과 단체 성공의 정점에 서 있다가 퇴락을 맞이했다. 두 가지 위기가 선사로서의 그의 명성에 치명타를 가하게 되었다. 첫 번째 위기는 그가 여러 여성제자들과 비밀리에 성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닥쳐왔다. 그 여성 중에는 그의 전법제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70년대의 자유연애 풍조가 선센터에도 만연해있다는 소문이 무성하기는 했지만, 선사가 영적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시켰다는 점 그리고 기혼자로서 부정한 짓을 했다는 점 때문에 수련생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와 동시에 터져 나온 또 하나의 폭로는 인증받은 선사로서 마에주미의 이미지를 더욱더 손상시키고 말았다. 비록 그의 음주벽이 선원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고 또 그때까지는 전반적으로 용인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음주가 통제 불능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마에주미 자신과 공동체가 다 같이 알게 된 것이다.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마에주미는 자발적으로 알코올 중독 치료센터를 찾기로 했지만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많은 수련생들은 분노, 실망, 환멸을 안고 로스앤젤레스 선센터를 떠나갔으며 샬롯 조코 벡 역시 센터 및 마에주미와의 결연관계를 끊었다.     

미국의 여성 불교도이자 페미니스트이며 유명 저술가이기도 한 샌디 보처(Sandy Boucher)에 의하면 1980년대 초부터 미국불교의 수행현장에는 두 부류의 여성들이 있었다고 한다. 초창기부터 불교수행에 전념해온 여성들이 첫 번째 부류이고 페미니스트 정치활동에 참가하면서 불교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들이 두 번째 부류였다. 각 부류는 미국불교에 중요한 요소를 더해주었는데,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평등을 부르짖고, 위계적 제도를 비판하고, 여성혐오적 텍스트와 관습을 밝혀내고, 성차별적 언어를 고쳐나갔다면, 오랜 세월 불교수행을 해온 여성들은 인내, 노련한 영적 관점, 그리고 여유로운 견해를 제시해주었다는 것이다.  
 

미국 선불교에서 아시아인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수받은 제1세대 여성 지도자들로는 조코 백을 포함하여 케임브리지 불교협회(Cambridge Buddhist Association)의 모린 스튜어트(Maurine Stuart) 노사, 샤스타 애비(Shasta Abbey)의 지유 케네트(Jiyu Kennett) 노사 등이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일본선의 전통을 그대로 지켜나갔고 또 일부는 명상수행에 서양적 요소를 포함하는 혁신을 행하기도 했다. 이 여성들이 이루어낸 것은 여성으로서의 경험, 유연함, 제자들과 자애로운 관계형성도 포함되는데, 이런 요소는 전통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그 뒤를 이은 여성 지도자들은 스프링워터 센터(Springwater Center)의 토니 패커(Toni Packer), 프로비덴스 선센터(Providen ce Zen Center)의 바바라 로즈(Barbara Rhodes) 등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선수행의 대중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는 영적 수행을 사회사업과 연계하기도 했다. 

선사 조코 벡은 일본선의 가부장적이고 의례적인 수행상의 절차들을 다 내려놓고 선 수행에 서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녀는 선사라는 칭호 대신 그냥 조코라고 불리기를 원했으며, 삭발을 하지 않았고, 승복도 입지 않았으며, 전법제자를 배출하기는 했어도 보통 일본 조동종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조코의 선이 일본 조동선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녀가 서양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 선을 소개하고 있는지는 그녀의 전법제자이자 뉴욕시 평상심 젠도를 이끌고 있기도 한 정신과 의사 배리 매기드(Barry Magid)의 말속에 잘 드러나 있다. “조코는 일상생활 한 가운데서 절대를 경험하라고 내게 항상 강조했어요. ‘분노와 걱정 속에 머무르기’는 정서를 다루는 기법이라기보다는 정서 그 자체, 반발심 그 자체를 그냥 그것으로서 바라보는 한 방법이었죠. 힘들게 싸워서 제거해야 하는 수행상의 장애로서가 아니라 수행 그 자체로서 말이죠.” 

일본 전통선의 의례절차에 대한 조코의 태도에 대해서도 매기드는 정식 수행을 끝마칠 무렵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녀가 이따금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는가 하면 손을 꼭 쥐곤 하였기 때문에 마치 복숭아가 된 듯한 느낌이었는데, 어느 날 그녀가 ‘이제 됐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나의 전법의식이었던 거죠. 그 후 선원의 뉴스레터에 공지사항이 실렸는데, 주차안내 문구 아래에, 내게 법이 전수되었다고 쓰여 있더군요.”

1983년 조코는 샌디에이고 선센터(Zen Center of San Diego)를 세웠고 그곳에서 평상심 선종(The Ordinary Mind Zen School)을 창시했다. 이 단체는 그녀의 전법제자들로 이루어진, 느슨하고도 비계층적인 조직이다. 매기드 및 다른 전법제자들은 미국 전역에 선센터를 열었다. 그 지도자 중에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베이 상가(Bay Sangha)를 이끌고 있는 다이앤 에쉰 리제토(Diane Eshin Rizzetto), 일리노이주 삼페인의 프레이리 선센터(Prairie Zen Center)를 이끌고 있는 엘리후 겐묘 스미스(Elihu Genmyo Smith), 그리고 조코 벡의 뒤를 이어서 샌디에이고 선센터(Zen Center of San Diego)를 공동으로 이끌고 있는 엘리자베스 해밀턴(Elizabeth Hamilton)과 에즈라 베이다(Ezra Bayda)가 있다.  

장은화 선학박사·전문번역가 ehj001@naver.com

 

[1482호 / 2019년 3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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