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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의 아들 명복 염원 담긴 '왕흥사지 사리기' 국보 된다

  • 성보
  • 입력 2019.04.01 17:41
  • 수정 2019.04.01 17:49
  • 호수 1484
  • 댓글 0

문화재청, 4월1일 국보 지정예고
577년 만든 국내 최고 사리공예품
공예적 측면서 높은 완성도 보여
대둔사·직지사 불화 등은 보물 예고

문화재청 제공.
4월1일 국보로 지정예고 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문화재청 제공.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 공예품으로 2012년 보물로 지정된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가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4월1일 “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이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로 명칭을 변경해 국보로 지정예고 한다”고 밝혔다.

577년 만들어진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왕실 사찰인 부여 왕흥사(王興寺)터 목탑지(塔誌址)에서 발굴된 유물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사리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리기는 참된 수행의 결과로 몸속에 생겼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인 사리를 보관한 용기다. 합(盒), 병(甁), 호(壺)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문화재청 제공.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발굴 당시 모습. 문화재청 제공.

출토 당시 금당(金堂, 대웅전) 앞 목탑지 사리공(舍利孔)에서 진흙에 잠긴 채 발견됐고 이후 보존처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사리기는 바깥부터 청동제사리합,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 등 3겹으로 겹쳐있다. 가장 바깥 사리기인 청동제사리합에는 6행 29자의 명문이 새겨졌는데 이를 통해 577년(위덕왕 24년)에 만들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명문에 의하면 사리기는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고자 발원한 왕실 공예품이다. 제작 시기가 명확한 사리기로서 연대가 가장 빨라 우리나라 사리기의 선구적인 위치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화재청 제공.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명문.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공예적 측면에서도 안정되고 세련된 형태, 세부 구조물을 주조하고 접합한 기법, 표면을 깎고 다듬는 기법 등에서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어 백제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엿볼 수 있다”며 “단순하고 단아한 모습과 보주형 꼭지, 그 주위를 장식한 연꽃문양 등은 525년(백제 성왕 3) 조성된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과 639년(백제 무왕 40) 제작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조형적으로 연결한 도상으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제공.
부여 왕흥사지 전경. 문화재청 제공.

국보 지정예고와 함께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와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보물로 지정예고 됐다.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740년(영조 16)에 영산회상도, 제석도, 현왕도, 아미타불도와 함께 조성돼 대둔사에 봉안됐던 작품이다. 이중 삼장보살도만 유일하게 전해오고 있다.

세로 238cm, 가로 279cm의 대규모 화면에 천장보살과 지지보살, 지장보살 등 세 보살의 모임을 묘사한 그림이다. 월륜, 치흠, 우평 등 18세기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높은 수미단(須彌壇) 위에 앉은 세 보살과 각각의 인물들이 질서 정연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한 것으로 보아 화승의 수준 높은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화재청 제공.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에 따르면 삼장보살도 도상은 1661년 간행된 경전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에 근거한 것으로 천장보살이 약사여래처럼 약호(藥壺, 약병)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 모습은 같은 시기 다른 지역 불화에서는 좀처럼 확인되지 않고 경상북도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그려졌으므로 18세기 삼장보살도의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인 가치가 크다.

현재 16세기 이전 제작된 삼장보살도 대부분은 일본 등 해외에 전해지고 있고 17~18세기 초 제작된 ‘안동 석탑사 삼장보살도(1699년)’나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1707년)’ 조차 도난으로 그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다.

문화재청은 “유려하면서도 세련된 필치와 안정된 구도, 적색과 녹색이 중심이 된 조화로운 색감 등에서 조선 후기 불화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며 “1년 후 조성된 ‘상주 남장사 삼장보살도(1741년)’와 함께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삼장보살도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제공.
‘김천 직지사 괘불도’ 문화재청 제공.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1803년(순조 3년) 제작된 괘불로 현재까지 알려진 19세기 괘불 중 시기가 가장 빠르고 규모도 가장 크다. 머리에 보관을 쓴 보살형 본존이 양손으로 연꽃을 받쳐 들고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는 독존 형식의 괘불도다. 괘불 하단에 쓰인 화기를 통해 직지사를 중심으로 경북 권역에서 활동한 제한을 비롯해 위전, 탄잠, 부첨, 신화 등 총 13명의 화상이 제작에 참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단독 보살형 본존을 중심으로 화면 위에는 10위의 시방제불(十方諸佛)과 5위의 보살상을 배치한 구성이다. 앞 시기 괘불에서 보인 중량감 넘치는 형태에서 가늘고 날씬한 형상으로 변모한 점, 섬세하고 유려한 형태미의 구사보다는 굵고 대담한 선묘(線描)가 돋보여 시대적 전화기에 제작된 불화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화재청은 “어두운 적색과 녹색의 대비로 18세기보다는 시각적으로 다소 엄숙한 느낌을 주며 일부 권속에 국한돼 쓰이던 입체적인 음영법이 보존까지 확대되는 등 시대에 따라 달라진 표현기법도 확인된다”며 “높이 12m 이상 되는 대형 불화임에도 도상의 배치, 상·하축의 조형성, 이 입체감 있는 표현 등에서 19세기 불화를 대표할 만큼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와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문화재청이 전국 사찰 소장 불교문화재의 현황파악과 정밀기록화를 위해 진행 중인 ‘불교문화재 일제조사’와 ‘대형불화(괘불) 정밀조사’ 사업을 통해 가치가 새롭게 발굴된 작품이다.

국립부여박물관(관장 윤형원)에서 전시 중인 왕흥사지 사리장엄구.
국립부여박물관(관장 윤형원)에서 전시 중인 왕흥사지 사리장엄구.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한편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국보 지정예고에 발맞춰 이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관장 윤형원)은 상설전시관에 별도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사리기를 포함한 사리장엄구 9493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목탑 터 심초석 주변에서 발굴된 장신구와 구슬, 동전, 금·은판 등 사리공양구도 함께 선보인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484호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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