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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싯닷타의 고행과 마라의 유혹

기자명 김준희

고행 중단 후 싯닷타 마음 연상되는 칸타타 선율 

‘악마적 암시’ ‘메피스토 왈츠’ 등
중도수행 중인 싯닷타 유혹했던
마라의 속삭임으로 느껴지기도
수행자 내적갈등 타자화 담아내

산치대탑 북문의 조각. 왼쪽의 보리수는 부처님의 상징으로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하기 위해 나타난 마라의 세 딸과 악마들.
산치대탑 북문의 조각. 왼쪽의 보리수는 부처님의 상징으로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하기 위해 나타난 마라의 세 딸과 악마들.

 

웃다카 라마풋타와 알라라 칼라마 두 스승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한 싯닷타는 고행자들이 수행하는 고행림으로 들어갔다. 당시 인도의 사상계는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로 양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싯닷타는 쾌락주의의 덧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고행을 선택하게 된다. 

당시 수행자들 대부분은 고행을 선택했다. 고행은 주로 육체를 괴롭히는 방식이었다. 극단적인 단식이나 숨을 참는 것, 가시침대에 눕거나 뙤약볕 밑에서 뜨거움을 참는 것 등이었다. 고행자들이 이러한 극단적인 수행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로 구원을 받기 위함이었다. 싯닷타도 6년간의 고행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던 궁극적인 행복, 즉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그의 고행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다음의 경문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나 이전에도 나 이후에도 나와 같이 고행하는 자는 없었고, 없을 것이다.”(맛지마 니까야 중에서)

하지만 고행자 싯닷타는 그토록 염원하던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싯닷타는 고행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미련없이 고행을 포기하게 된다. 전통에 입각해 기존의 질서를 철저하게 지켜가며 고행을 선택했지만, 그것의 한계를 명확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긴 고행을 중단한 싯닷타는 네란자라강에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마을처녀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았다. 지쳐있던 싯닷타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기력을 회복한 뒤 자신의 수행을 하나하나 뒤돌아보았다. 그는 다양한 욕구들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들을 제어하는 방식의 수행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칸타타 BWV 208 중 아리아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를 들으면 더없이 평온한 장면이 연상된다. 이 작품은 바흐의 지인인 작센 공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된 세속 칸타타로 일명 ‘사냥칸타타’라고 불린다.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함이 가득한 칸타타의 노래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 곡은 피아노곡으로 편곡되면서 상당히 서정적으로 변모되었다. 단독으로 자주 연주되는 이 아리아를 들으면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을 그만두고 난 뒤 차분해진 싯닷타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한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이 주는 따뜻함과 편안함도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수행자 고따마의 고행상. 현재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에 있는 대표적인 간다라 양식의 고행상.

싯닷타는 6년간의 금욕적인 고행을 멈추고 새로운 수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수행의 원천은 어렸을 때의 기억에서 찾을 수 있다. 싯닷타는 어렸을 때 부왕을 따라 농경제에 갔다가 사과나무 아래에서 경험했던 깊은 행복감을 떠올렸다. 신체적 고통을 통하여 영혼의 정화를 기대했던 잘못된 수행방법을 잊고, 싯닷타는 어릴때의 경험을 되짚으며 행복을 토대로 한 중도의 수행법을 발견하게 된다. 

싯닷타가 중도의 수행을 택했을 때 드디어 ‘마라’가 등장한다. 마라는 죽음의 신으로 ‘파괴하는 자’ ‘죽음을 초래하는 자’를 뜻하는 악마를 말한다. 마라의 역할은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싯닷타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악마의 유혹과 위협을 극복해야했다. 마라는 수행을 포기하면 돈과 명예와 권력을 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싯닷타의 수행을 방해한다. 

붓다의 일생에 등장하는 악마는 서양의 악마(사탄)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불교의 지옥은 처벌의 장소이지만 기독교의 지옥은 사탄이 지배하는 소굴인 것처럼, 마라 역시 사탄과 같은 절대 악의 화신이 아니라 욕계의 가장 높은 하늘나라인 타화자재천의 지배자이다. 한편 이러한 악마 마라는 수행자 싯닷타의 내적 갈등을 타자화한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서양의 악마는 주로 영혼의 거래를 통하여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소품 Op.4 의 네 번째 곡은 ‘악마적 암시(Diabolic Suggestion)’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 곡에 대한 특별한 에피소드나 작곡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작곡가는 아마도 그 제목과 음악 자체만으로 듣는 이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저음에서 시작되는 악마의 먼 음성으로 곡이 시작된다. 강한 고음의 불협화음과 트릴이 등장하고 곧이어 쉴새 없는 악마의 유혹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다. 끊임없는 스타카토 패시지로 피아노의 타악기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이 작품은 적절한 반음계와 불협화음이 악마적인 암시를 계속 나타내고 있다. 고행을 중단하고 중도 수행을 시작한 싯닷타에게 유혹을 펼치는 마라의 속삭임이 연상된다.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의 자필악보.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곡 ‘메피스토 왈츠’ 제 1번은 그의 대표적인 피아노 소나타 B단조와 함께 피아노곡에서 볼 수 있는 악마적인 성격이 매우 잘 드러나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사탄의 대리인인 메피스토펠레스에 초점이 맞추어진 곡으로 니콜라우스 레나우의 시에 토대를 두고 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이 곡은 첫 시작부터 강렬한 화음의 연타로 시선을 모은다. ‘마을 선술집에서의 무도’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듯이 메피스토펠레스는 매혹적인 왈츠로 마을 처녀들을 유혹하고 있다. 악마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스타카토와 옥타브, 그리고 갖은 방향으로 펼쳐지는 스케일 등이 쾌락적인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느리고 서정적인 부분인 두 번째 부분은 앞부분과는 대조적으로 파우스트의 구애를 담고 있다. 파우스트를 상징하는 주제는 부드러우나 더 직설적이고 매혹적이다. 다시 격정적인 메피스토펠레스의 주제가 등장하여 다양하고 화려한 피아니즘을 보여주며, 비밀스러운 음모와 직접적인 유혹이 엇갈리는 것 같은 분위기의 이 왈츠는 격정적인 코다로 끝맺음한다.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 묘사되는 악마는 서양 종교의 사탄 그 자체에 인간의 내적 갈등이 구체화된 실체로 표현된다. 또한 그 모습은 도덕적이고 선량한 인간을 유혹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갈등의 시초를 제공하게 된다. 싯닷타의 중도의 수행은 바흐의 담담한 레가토 선율로, 마라의 유혹은 피아노의 타악기적인 모습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스타카토로 표현된 선율로 감상하며 모든 번뇌를 물리치고 깨달은 이, 붓다의 모습을 예견해 보자.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483호 / 2019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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