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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발견

  • 데스크칼럼
  • 입력 2019.04.08 11:06
  • 수정 2019.04.08 18:52
  • 호수 1484
  • 댓글 0

수많은 문화재 등장이 우연
고성 마애불도 우연적 요소
불교에선 우연 모습 띤 필연

우연은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인과 관계 없이 일어난 일을 지칭한다기보다 인과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우리 인식 능력의 한계를 일컫는다. 예상했거나 헤아려 알 수 있다면 필연으로, 예기치 못했거나 가늠하기 어려우면 우연으로 돌리는 셈이다.

우연은 문화재 발견과 관련해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1900년 돈황석굴에 살던 도사 왕원록이 담뱃대를 벽에 대고 털었는데 울림소리가 들려 헐어보니 5만여의 불경과 관련 유물로 가득한 장경동(藏經洞)이 있었던 것이나 1974년 3월, 중국 서안 지역 농부들이 우물을 파다가 수천년 간 몰랐던 진시황릉 병마갱용을 발견한 것도 우연이다. 작년 말 갱단이 영국의 한 마을에서 현금인출기를 훔치려고 편의점을 차로 들이받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500년 전 튜더 왕가 시대의 보물들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이런 예기치 못했던 발견은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966년 도굴꾼이 밤에 탑 내부 유물을 훔치려다 지붕돌이 떨어지자 놀라 도망갔고 이를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도굴꾼이 포기했거나 아예 훔쳐 갔다면, 또 지붕돌이 떨어지는 우연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존재를 아직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백제 고고학 최대 성과라는 무령왕릉도 1971년 7월 장마 피해를 막기 위해 배수로 공사를 하던 인부에 의해 우연히 1400여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고, 최근 국보로 지정예고 된 부여 왕흥리사지 사리기도 장마에 대비해 배수로를 정리하던 굴착기의 삽 끝에 평평한 돌 하나가 걸리면서 발견됐다.

이런 우연은 바다에서도 일어난다. 고려시대 침몰한 목선에서 인양한 2만3502점의 신안해저유물은 1975년 5월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의 그물에 딸려 올라온 몇 점의 도자기에서 비롯됐다. 2007년 5월에는 충남 태안에 사는 어민이 푸른 빛깔의 진품 고려청자를 끌어안은 주꾸미를 잡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14년 11월에도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 해수욕장에서 낙지를 잡던 어민이 고려시대 유물을 발견하는 등 매년 물속에서만 10여건의 문화재가 발견되며 그렇게 지금까지 우연히 찾아낸 해양유물이 10만여점에 이른다.

지난 3월22일 박종익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이 학계에 처음 소개한 1000년 된 마애약사불좌상도 우연성이 크게 작용했다. 3월14일 그는 지인에게서 경남 고성 거류산에서 봤다는 불상 사진이 한 블로그에 올라왔다는 메일을 받았다. 박 소장이 직접 블로그에 들어가 살펴보니 전국을 다니며 직접 촬영한 야생화 사진을 올리는 이가 발견했다는 마애불이 있었다. 산성을 전공해 거류산을 자주 찾았던 그였지만 이 마애불은 생소했다.

블로그 게시자와 연락이 닿지 않자 그는 다음날 거류산 일대를 뒤졌고, 일주일 뒤 다시 조사에 나서 거류산 정상 아래쪽 대밭에서 고려 전기 마애불을 찾아낼 수 있었다. 1000년 전 이 지역 사람들이 혹독한 병고와 굶주림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단단한 바위를 쪼아내 완성했을 약사부처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만약 마애불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야생화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굳이 거류산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인이 박 소장에게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발견은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 또한 기막힌 우연일 수 있다.
 

이재형 국장

그러나 불교에서 우연은 성립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이 원인과 조건이라는 연기적 관계에 의해 벌어졌다고 본다. 문화재 발견도 시절인연으로 우연의 모습을 띠고 필연이 다가올 따름이다. 그럼에도 우연에 마음이 기우는 건 그것이 주는 설렘과 뜻밖의 감동 때문이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 옛사람들의 자취가 담긴 문화재가 이번에는 어떤 우연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그 행복한 우연을 기다려 본다.

mitra@beopbo.com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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