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다.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용히 108배 올리고, ‘천수경’을 읊는다. 그리고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한 자 한 자 마음에 새기듯 사경한다. 내면의 흐름과 마주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한 자 한 자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에 자신을 비추고 참회해본다. ‘자리이타’의 발원이 익어가는 시간들이 쌓여가고 또 그렇게 하루의 문을 연다.
언제 어디서부터일까. 아니면 어떤 인연이었을까. 내 삶에서 부처님과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부처님오신날 절에 몇 번 가본 것 이외에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어린 시절 추억들이 내 가슴 속에 조그마한 불법의 씨앗이 된 것이었을까. 결혼식 날짜를 잡아놓고 이것저것 준비하던 시기, 하루는 시어머니께서 부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결혼 전 절에 가서 3주 동안 기도를 하면 살아가는데 모든 것이 원만해 진다고 하더라. 한번 해 보겠니?”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결코 불쾌하거나 낯설지가 않았다. 흔쾌히 답을 했다. 친정 부모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3주 동안 기도를 하겠노라 발심했다. ‘부처님은 누구실까?’ 궁금증이 일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길게 보이는 그 기도 여정에 불쑥 몸과 마음을 맡겼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화엄성중이 어떤 존재인지도 몰랐다. 그저 입으로만 따라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면서도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구름에 가려진 산사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공양시간보다 더 기다려지는 그 행복함과 따스함을 누리는 자체에 푹 빠져 보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철없는 3주간의 기도였다.
그러나 분명, 그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부처님 도량에 종종 찾아갔던 인연은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면에 꽁꽁 숨어있던 불성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데 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기도를 회향하고 결혼식을 올렸고, 자연스럽게 재적사찰을 갖게 됐다. 불자로서 신행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토대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신혼의 달콤함은 잠시였다. 아이들 낳고 여느 가정처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나갔다.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동안 기댈 곳 없이 헐떡이는 내 삶 한 구석에서 마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정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도대체 난 누구지?’ ‘왜 평범함 속에 행복을 다 누리며 살 수 없을까?’ ‘인생은 무엇일까?’ ‘다음 생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삶은 의문 투성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물음표 사이로 불쑥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 더 갖고 더 채우려는 욕심을 이기지 못해 탐욕이 자랐다. 어느새 훌쩍 크고 무거워진 탐욕과 분노는 순간순간 나를 짓눌렀고, 너무 힘이 들었다.
그때였다. 일어나지 않는 일에 매달려 허덕이며 괴로워하는 번뇌를 가라앉게 할 그 해답을 찾아 헤매던 그때. 불성의 씨앗은 싹을 틔우려고 몸부림쳤다. 말 그대로 때마침 재적사찰에서 부처님 일대기부터 몇 년에 걸쳐 교리강좌가 진행되었다. 이 강좌에 등록해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주지스님과 강사진의 가르침 덕분에 체계적인 불교공부를 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간이었다.
졸업 후 2010년 경부터는 집에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108배 참회기도를 하고 ‘금강경’ 독송, ‘법화경’ 사경을 이어갔다. 이 기도를 통해 스스로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뾰족했던, 모난 돌처럼 생긴 마음의 모양이 조금씩 둥그러지고 따뜻해지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수행으로 나름 내면의 변화를 느끼던 시기, 언제나처럼 매일 아침을 108배, ‘금강경’ 독송, ‘법화경’ 사경으로 이어가던 2년 전이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기운을 그대로 확장하여 이번에는 ‘법화경’ 속에 있는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우리말로 108번 써보고 싶다는 발원이 생겼다.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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