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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상옥의 ‘꿈’(1967)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불교영화 균형 맞춘 수작

사찰 배경으로 제작된 불교영화
범어사·봉정사·낙산사 대표적
조신 설화 담은 ‘꿈’ 낙산사 배경
해수관음상 불교적 의미 부여
​​​​​​​
스승 용선화상, 보살의 현신 역할
죽음의 순간 꿈에서 현실 불러내
깨달음·자비의 영화적 표현 눈길

신상옥의 ‘꿈’은 양양 낙산사를 배경으로 조신설화를 재구성한 영화다. 스승 용선화상은 관세음보살의 현신에 가까운 역할로 조신의 깨달음을 이끈다. 사진은 ‘꿈’ 캡쳐.

한국영화에서 불교영화의 배경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찰은 범어사와 봉정사 그리고 낙산사이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는 불교영화사에서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사료를 잘 살펴보면 유서 깊은 사찰 중의 사찰이다. 1918년에 외국인이 부산의 전경을 촬영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20년에는 서울의 단성사에서 ‘부산의 범어사’가 상영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서울 영화인의 피난지였으며 영화 제작의 중심이었다. 후방인 부산에서 수편의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그 중 대표작이 범어사에서 현지 촬영된 ‘성불사’(1952)이다. 이 작품은 현재 필름이 남아있지 않지만 스틸 사진은 남아있다. 안동의 봉정사도 범어사에 비견할 만한 영화촬영지였다. 이곳의 본찰과 암자에서 ‘동승’과 ‘마음의 고향’ 그리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하였다. 심지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 소품으로 사용한 석등이 암자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그 영화에 참여한 연출부에게 전해 들었다. 강원도에서 영화적으로 중요한 사찰은 신상옥의 ‘꿈’과 배창호의 ‘꿈’을 촬영한 낙산사이다. 봉정사가 ‘동승’의 촬영지로 소환된 것이 우연에 가깝다면, 낙산사가 ‘꿈’의 촬영지로 선택된 것은 필연적 선택이었다. ‘꿈’은 삼국유사의 ‘낙산이대성 관음정취 조신’이라는 낙산사 설화에 근거하여 춘원 이광수가 중편소설 ‘꿈’을 집필하였다. 낙산사는 작품의 배경이므로 작품의 촬영지로 섭외 1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연유로 영화 ‘꿈’은 낙산사를 주요 촬영 배경으로 선택되고 조신설화의 조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꿈을 통한 깨달음이라는 주제를 반복해서 부각한다. 낙산사는 ‘꿈’의 모태이자 제 2의 주인공에 가깝다. 신상옥의 ‘꿈’은 낙산사라는 장소를 적극적으로 소환하여 불교적 의미를 은근하게 담아냈다.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은 방문객들을 사로잡는 확고부동한 포토존이다. 해수관음상은 관세음보살상이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리를 듣고 자비로움으로 그들의 고통을 구원해주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낙산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영화에 중요한 불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조신설화에서 조신이 한눈에 반한 달례와 연분을 맺고 싶어서 낙산사 관음보살에게 서원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결국 설화에서 관음보살은 꿈을 통해 조신에게 달례와 연분을 맺게 해주고 애욕의 덧없음을 깨우쳐 수행정진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전한다. 이광수의 중편소설 ‘꿈’과 신상옥의 ‘꿈’에서는 관음보살 대신 용선화상이 등장하지만 조신(신영균 분)은 밤을 새워 관세음보살을 암송하며 결국 관음보살의 화신에 가까운 용선화상을 통해 깨우침을 얻게 된다. 조신은 용선화상에게 자신의 번뇌를 잊기 위해 탁발을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어서 자신과 달례 아씨(김혜정 분)와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연분을 맺을 수 있는 자비를 서원한다. 

그는 이성에 대한 관능적인 욕망에 지배되어 번뇌에 사로잡혀있다. 용선화상은 조신을 홍련암으로 인도하여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독송할 것’을 권한다. 그 때 조신은 꿈에 빠져들고 꿈에서 달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용선화상은 ‘반야용선’의 용선으로, 중생들이 강물의 번뇌를 이겨내고 지혜의 방향에 따라 피안에 도달할 수 있도록 중생을 싣고 나르는 배이다. 

용선화상은 조신이라는 중생을 제도하여 올바른 수행의 길로 인도하는 방향타 역할을 한다. 배창호의 ‘꿈’에서는 조신이 목욕하는 달례에게 강압적 행위로 다가가지만 신상옥의 ‘꿈’은 달례가 조신에게 ‘일평생 스님을 곁에서 모시고 싶다’고 애원하고 자신을 데리고 떠나줄 것을 간청한다. 이 장면은 조신의 무의식을 통해 달례와 연분을 맺고 한평생 함께 하고 싶다는 소원을 성취하는 대목이다. 

조신은 가사를 벗고 달례와 도피행을 선택한다. 하지만 모례아손에게 신분이 탄로 난 다음 죽음을 눈앞에 두고 다시 가사를 입으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서 칼을 받는다. 가사를 벗었던 조신이 다시 가사를 입는 것은 파계한 수행자가 다시 불교에 귀의한 것을 의미한다. 가사를 입고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순간 현실의 세계에서 용선화상이 “좋은 꿈을 꾸었느냐”고 조신에게 묻는다. 조신은 고통의 최고점에서 관세음보살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였고 관세음보살의 현신에 가까운 용선화상은 그를 꿈에서 불러내어 고통으로부터 구원한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영화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며 동시에 제행이 무상함을 일순간 깨닫는 장면이다. 

용선화상은 꿈에서 깨어난 조신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꿈 이니라’고 불법을 전한다. 신화에서 신성의 깨달음은 현신의 순간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본질적인 것이 불쑥 출현하여 인식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체험’을 현신(epiphany)이라고 지칭한, 바로 그 순간을 조신은 꿈을 통해 체험한 것이다.  

조신이 꿈을 통해 현신의 경지를 체험한 장소가 바로 낙산사 홍련암이다. 홍련암은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붉은 연꽃 위에 현현한 관음보살을 친견한 곳에 세운 암자이다. ‘삼국유사’의 창건 설화와 이광수의 소설 그리고 신상옥의 영화는 공통적으로 관음보살을 통한 중생의 계도와 가르침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영화는 낙산사를 소환하여 문화적 기억이 가미된 불교적 명소로 거듭나게 한다. 신상옥의 ‘꿈’은 낙산사라는 장소와 관세음보살이라는 불교적 요소의 결합으로 불교영화의 주제를 부각시켰다. 의상대사가 수행했던 의상대의 일출 장면을 인서트로 시작해 마지막 시퀀스는 홍련암에서 꿈을 통한 깨우침을 얻는 장면으로 완결된다. 낙산사라는 장소성과 관음보살의 자비로움은 조신의 꿈을 통해 용해되어 중생의 깨달음으로 수렴된다. 신상옥의 ‘꿈’은 원작에 충실하면서 불교영화의 본령에서 벗어나지 않는 균형을 잘 잡은 수작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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