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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불교 생명 실천윤리 마련 시급”

  • 사회
  • 입력 2019.04.11 19:39
  • 수정 2019.04.12 10:08
  • 호수 1485
  • 댓글 0

헌재, 4월11일 헌법불합치 선고
"교리적 입장 명확…대안 제시해야"

태아 영가 천도 기도도량 전경.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대립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던 ‘낙태죄’ 규정에 대해 법원이 위헌 선고를 내렸다. 낙태죄 폐지에 명확한 반대 입장을 견지해 온 가톨릭·개신교계와 달리, 그동안 뚜렷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던 불교계에도 “이제 더 이상 공식적인 논의를 미뤄선 안된다”는 여론이 많다. ‘생명이 최우선의 가치’라는 원칙적인 선언을 넘어선 보다 실천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4월11일 낙태에 대한 포괄적 금지 및 처벌을 명시한 현행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는 사실상 위헌 결정이지만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2020년까지 법 개정을 전제로 현행법의 효력을 한시적으로 유지토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불교계 내부적으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생명존중’이며, 이에 따른 경전 속 가르침 역시 명확하기 때문이다.

대승불교 불전인 ‘유가사지론’과 ‘포태경’ 등에 따르면 태아는 잉태된 순간부터 생명체로서 존엄성을 가진다. 상좌부 율장 역시 ‘태아도 식(識)을 가진 인간’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심지어 율장은 부처님이 낙태에 동조한 스님에 대해 고의적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로 판단해 바라이죄를 물었다고 나온다. 이처럼 불교에서 태아는 엄연한 생명이자 독립된 가치를 지닌 존재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명확한 교리에도 그동안 ‘낙태’에 대한 불교의 공식입장은 좀처럼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조계종 생명윤리위원회, 그리고 지난해 화쟁위원회 집담회에서 낙태 문제가 논의되기도 했지만 “태아 역시 생명으로 존중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이런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사실상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불교가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낙태죄 폐지가 생명경시 풍조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생명존중의 종교’인 불교계가 앞장서서 사회적 대안을 염두에 둔 실천적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는 “불살생계를 최우선으로 삼는 불교에서 낙태 자체에 대한 입장은 사실상 재고의 여지 없이 분명하다”며 “다만 시대적 변화에 따라 불가피한 임신 등이 증가하는 만큼, 선택의 기로에서 낙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여성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관련 교육과 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고민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이어 “생명을 중시하는 불교가 자기결정권의 관점에서 낙태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까지 포용하기 위해서는 원론적인 논의보다 성 인식 교육와 홍보, 일선 사찰 차원의 여성 지원 방안의 확대 등 실천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며 “특히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한 성 인식 교육이야말로 불교적 생명윤리의 현대적 실천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 스님도 “낙태를 위법과 합법의 기준으로 가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낙태의 기로에 서게 되는 상황 자체를 감소시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라고 지적했다. 일감 스님은 “이를 위해 태아의 생명과 태아를 잉태한 여성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고 그 가치를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며 “바로 이 지점에 우리 불교가 나아갈 방향과 역할이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불교가 낙태 등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통해 불교적 가르침을 사회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백년대계본부는 지난해 화쟁위원회 집담회에 이어 올해 역시 대화마당을 통한 생명윤리 등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한 공개토론 법석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이번 ‘낙태죄 위헌 소송(2017헌바127)’는 업무상 승낙 낙태 등으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에 의한 헌법소원으로,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낙태죄는 1953년 형법상 처음 규정된 이후 66년 만에 폐지를 앞두고 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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