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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광설

기자명 현진 스님

부처님가르침, 시공간에 걸쳐 부족함 없다는 의미

쓸데없이 길게 늘어놓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지만
부처님 32상 가운데 하나로
혀 모양 의탁해 표현한 것

‘장광설을 늘어놓다’란 것은 쓸데없이 번잡하고 길게 늘어놓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른 것이다. 이 가운데 ‘장광설’은 한문으로도 ‘길고(長) 넓은(廣) 혀(舌)’로 되어 있으니 흔히 쓰이는 그러한 의미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부처님의 훌륭한 외모를 묘사한 32가지 가운데 하나로서 그 내용도 원래는 긍정적이란 것을 아는 불자님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장광설의 본래 의미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간[長]과 공간[廣]에 걸쳐 부족함 없이 훌륭하단 것으로서, 신체 가운데 혀[舌]의 모양에 의탁해 나타낸 것이다.

부처님의 육신에 갖추어져 있는 거룩한 용모나 형상 가운데 특히 두드러지게 드러난 32가지를 ‘32상(相)’이라 하고, 미세하거나 은밀한 80가지를 ‘80종호(種好)’라고 일컫는다. 이 두 부류를 함께 이를 때 ‘상호(相好)’라 하는데, 32상은 부처님과 보살은 물론 속세의 전륜성왕 또한 지니고 있지만 80종호는 오직 불보살만 갖추고 있다.

32상 가운데 ‘발바닥의 바퀴살’은 불상이 조성되기 이전 혹은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 때부터 성인의 형상을 대신하여 바퀴살이나 만(卍)자나 그런 표식들이 들어가 있는 발자국 자체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에 기원한다. ‘머리털의 우곱슬’에는 ‘부처님께서 고행을 멈추신 뒤 개울에 물을 드시러 머리를 담그고 계시는 동안 수많은 고둥이 붙은 것이다’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이 또한 성인의 지위에 오르면 발생하는 털의 우곱슬 현상으로, 로만의 영향을 받은 초기 간다라양식이 자연스런 머릿결인 것과는 달리 인도의 전통사상이 적용된 마투라와 굽타양식에서 나타난다. ‘정수리 융기’는 우리의 민간설화에도 있듯이 신체 가운데 신령(神靈)이 드나드는 소중한 정수리를 보호하기 위해 살점이 두툼하게 올라온 것인데, 태국에선 지혜의 불길이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표현해놓기도 한다. ‘미간의 하얀 터럭’은 브라만교에서 깨달음을 얻으면 열린다는 지혜의 상징인 제3의 눈이 불교에서 눈의 형상이 아닌 터럭으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32상 가운데 하나인 ‘손발에 물갈퀴가 있는 것이 큰 거위와 같다’라고 한 것은 사뭇 논란의 여지를 일으키곤 한다. 어차피 다른 몇몇 상호들도 설명한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다소 무리인 것이 있지만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그물 같은 막이 있다니, 그저 조금 지나친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말아야 하는가?

‘몰라~ 내가 불교에 대해선 잘 모르니 딱히 뭐라 단정하지 못하겠다만, 아마도 거위의 발 같이 물갈퀴가 있다는 것은 손바닥에 손금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표현이 잘못 옮겨진 것일 수도 있을 게야. 수행이 된 성인은 어수선한 손금이 가로세로 단정히 정리된다는 말이 있거든.’ 예전에 연세가 지긋한 브라만 노학자로부터 조심스런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사실, 부처님의 32상 등은 불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서 수행을 통해 성인의 지위에 오르면 신체에 나타난다는 몇몇 징후들이 불교에 와서 정리되고 설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인 외형의 묘사라기보다는 은유를 통해 의도하는 바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인도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니, 성인이 되면 눈동자가 정사각형으로 변한다는 중국의 표현도 같은 유형일 것이다.

만약 손발의 물갈퀴는 물론이요, 손이 무릎까지 내려온다거나 귓불이 아래로 어깨에 닿는다거나 심지어 장광설을 설명하며 혀를 뻗치면 혀끝이 이마에 닿는 등의 설명을 그대로 가져와 부처님을 그려놓는다면 그저 기이한 외계인의 모습이 될 것은 당연하다. 은유는 은유일 뿐이니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뒤로 드리워진 가르침을 쫓아가야 하는 것은 어쩌면 언급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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