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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비노바 바베와 ‘나와 너’

기자명 고용석

모든 존재의 내면에는 선한 의지 있다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
만물 끌어안고자 의지 있어
“다른 존재의 눈으로 보라”

1920년대에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근원어 즉 맺는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의 본질적 차이에 관한 개념을 발표한다. ‘나와 그것’은 ‘나와 너’와 달리 상대를 물건으로 여기는 관계이다. 상대를 비인격적으로 바라보면서 소비 착취당하는 상대의 고통을 감지하지 못한다. 모든 영적 전통과 문화는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에서 출발한다.

‘네가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베풀라’를 윤리적 근간으로 한다. 옛사람들은 콩을 심을 때 세 알을 심곤 했다. 하늘의 새가 한 알, 땅의 벌레와 사람이 한 알씩을 먹도록 배려한 것이다. 오합혜(五合鞋)와 까치밥, 고수레 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상대의 범위가 동식물 무생물까지 자연스레 확대됨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문명의 산업화는 지구와 생명체를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상품화한다. 모든 동물과 자연에 생생한 생명감을 박탈한 데카르트 철학의 영향에다 이 과정을 적법한 것으로 여기는 법률체계도 한 몫 한다. 미국헌법의 기초는 유럽왕정의 통제로부터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재산권(후에 행복추구권으로 바뀜)이라는 새로운 개인인권의 확보가 주목적이었다. 이것이 다국적 기업체까지 확장되고 이들의 활동을 국민의 안녕과 동일시하며 보호받아야 한다고 여기게 된다. 심지어 이들의 생태계 약탈을 지원하고 보조금까지 지원한다.

다른 한편으론 소비지상주의가 글로벌 문화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자리한다. 소비가 개인행복과 사회적 지위, 국가정체성의 척도로 간주되고 선진국 부유층을 문화적 모델로 삼아 저마다 과시적 소비경쟁에 혈안이다. 제한된 자원에 무한성장의 추구는 지구를 집어삼키고 인간도 쓰다 폐기할 수 있는 존재로 전락했다. 인간존엄과 잠재력을 억압하는 죽음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이다. 어쩌면 상대를 도구로 여기는 ‘나와 그것’의 불안한 자아가 초래하는 예정된 결과일지 모른다. 이 ‘나와 그것’의 심층부에 음식선택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처럼 생명체들이 심하고 무자비하게 조직적으로 수정되고 길러지는 과정에서 대량학대가 자행된 적은 역사상 없고 대량사육으로 인해 지구상의 자원소모 및 환경오염과 파괴가 이처럼 막대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루 수십억의 동물들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고 매초 1200평의 열대우림이 사라지며 10억 명은 배고파 굶어죽고 16억 명은 배불러 아파죽는 등 그 파괴적 영향은 인간사회부터 심해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전반에 걸쳐있다. 그것도 현대사회의 상징인 합리성의 이름으로 제도적으로 자행된다. 한 곳의 부정의는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 

간디 이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토지헌납운동을 이끈 비노바 바베는 인간의 자아는 만물을 끌어안고 세계에 스며들길 안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담벼락을 쳐 자아를 골방에 가두고 죄수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18년 동안 지주나 자본가에게서 500만 에이커의 땅을 자발적으로 헌납 받아 빈민과 농민들에 함께 나눠주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 비결은 모든 존재에 내면 깊숙한 곳에는 거부할 수 없는 선함이 있으며 의지만 있다면 자신의 담벼락 즉 이기심을 극복하고 그들의 삶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또한 이기심의 높은 담벼락처럼 완강한 그들 속에서 마음 깊숙한 곳의 선량함을 향한 작은 문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작은 문을 찾지 못한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기심의 담벼락을 허물고 상대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 사랑과 영혼의 혁명가였다. 

부처님은 말한다 ‘모든 존재는 폭력에 떤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사랑한다. 다른 존재 안에서 그대를 보라. 어떻게 해할 수 있겠는가’ ‘나와 너’는 영원한 너를 들여다보는 틈이고 영원한 너 안에서 완성된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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