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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승만부인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부처님 앞에서 자비 사자후 토한 한 여인의 마음

‘아름다운 꽃 머리 왕비’의 승만
부처님 공덕 쓴 편지 읽고 찬탄
생명살림 어긋나면 단호한 조복
보시·애어·이행·동사 에 ‘주목’

승만경연구회 주최로 진행된 승만보살 10대원 수계법회 모습. 법보신문 자료사진
승만경연구회 주최로 진행된 승만보살 10대원 수계법회 모습. 법보신문 자료사진

부처님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며 자비심과 의로움, 참여를 통해 사회적 약자, 갇힌 자, 버림받은 생명을 이롭게 하고 성숙시키겠다고 발원하는 한 여성이 있다. 그는 생명의 큰 바다를 간직한 여인으로 모든 존재들의 불성을 깨워 정법을 널리 펼치리라고 힘주어 말한다. 

승만부인은 슈리말라 데비(Śrīmālā devi)를 음역한 말로 ‘아름다운 꽃 머리 왕비’라는 뜻이다. 부인의 아버지는 중인도 사위국의 프라세나지트(Prasee najit) 왕이며, 어머니는 말리카(Malika)다. 이 왕과 왕비는 아유타국의 왕에게 시집간 딸에게 부처님의 다함없는 공덕을 편지로 써서 보낸다. 딸, 승만부인은 그 편지를 보고 부처님을 찬탄 공경한 나머지 장차 보광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고 원을 세운다. 그것은 “① 계를 범하는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 “② 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 “③ 화내는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 “④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 “⑤ 아까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의 5가지와 다음의 5가지 원을 일컫는데, 이를 승만부인 십대원이라 한다. 

“⑥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재물을 축척하지 않고, 받은 모든 재물을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생명들을 성숙케 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⑦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섭법(四攝法)을 행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생명을 위하기 때문에 애착함이 없는 마음과 물들지 않는 마음, 족함이 없는 마음, 걸림이 없는 마음으로 온 생명을 하염없이 품어 안겠습니다.”  
“⑧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고독한 생명, 갇혀 있는 생명, 질병에 걸린 생명, 여러 가지 재앙과 고난에 빠진 생명, 괴롭고 고통스러운 생명을 본다면 끝내 잠깐이라도 그냥 두지 않고 반드시 편안하게 하고, 의로움[義]으로 이롭게 하여 여러 가지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한 뒤에 떠나겠습니다.” 
“⑨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만일 뭇 생명들을 붙잡아 기르거나 여러 가지 나쁜 행위를 보면 끝까지 내버려 두지 않겠으며, 제가 힘을 얻을 때에 여러 곳에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 조복할 자는 조복하고, 섭수할 자는 섭수하겠습니다.”
“⑩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정법을 받아 지녀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제7원을 보자. 사섭법(四攝法)이란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를 말한다. 나누어 베풀고, 사랑스럽게 말하며, 이로운 행동을 하고, 삶의 현장에서 같이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베풀 때는 나와 내 소유물에 대한 이기적 애착이 없어야 하고, 사랑스럽게 말할 때는 번뇌에 물들지 않고 마음이 청정해야 하며, 이로운 행위를 할 때는 족함을 떠나 끝없어야 한다. 그리고 같이 일 할 때는 사람들과 걸림 없이 어우러져야 하리라. 이러한 마음으로 온 생명과 하염없이 품어 안는다. 이를 섭수(攝受)라 한다.

제8원과 9원은 우리사회의 사회적 약자나 억압받는 생명에 관한 관심,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과 참여의지를 담고 있다. 사회적 약자라 함은 가난한 사람, 없음으로 인하여 차별받는 사람, 기존의 고정된 시각에서 버림받은 외롭고 힘든 사람, 나아가 그러한 차별적 시각에서 철저하게 차단된 갇혀 있는 생명들이라 할 수 있겠다.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 힘없고 헐벗은 아이들, 우리에 갇힌 채 잔혹하고 비윤리적으로 사육되는 닭이나 돼지 등의 생명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불교의 중요한 가치는 차이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다문화 노동자나 성소수자, 장애인들은 못나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는 여래의 장소다. 모든 생명은 여래장(如來藏), 즉 여래의 태아이기에 생명의 숨결을 지니고 있고 존귀한 존재다. 승만부인은 이 청정한 생명의 바다인 여래장에 눈떠 모든 버림받는 생명을 구원하고자 발원한다. 그래서 생명을 억압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중에서 힘과 지혜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다스려 그 악독한 마음을 항복받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은 큰마음으로 품어 안는다. 그것이 조복(折伏)과 섭수(攝受)다, 이러한 조복과 섭수가 이루어지려면 의로움(義)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 의로움으로 생명들을 살린다. 그리고 생명살림의 길에서 어긋나는 사람은 단호하게 조복시킨다. 그러기에 생명살림의 길에 들어서려면 생명과 삶에 대한 바른 진리를 간직하고, 널리 전하며, 보호해야 한다. 이를 승만부인은 정법을 섭수하고 호지(護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정법이란 모든 생명은 여래장을 품고 살아간다는 대승의 가르침이다. 여래장, 그것은 우리 자신의 청정한 모습이요 이기심과 차별 등 번뇌에서 자유로운 모습이기도 하다.

태아는 생명의 바다에서 자라난다. 이 생명의 바다에 간혹 때가 낄 수 있다. 그 바다에 오염된 부유물이 떠다니기도 한다. 이 오염물질은 생명을 반하는 반생명의 물질이기도 하다. 자유를 억압하는 탄압과 박해의 독재 정치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색안경을 낀 전체주의적 무지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자비와 사랑이 없다.

승만부인은 여래장의 생명성에 눈을 뜬 일국의 왕비로서 왕을 도와 사람들에게 온 생명을 성숙시키는 생명 살림의 길로 가라고 일깨운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의 이름은 덕만(德鬘)이고, 28대 진덕여왕의 이름은 승만이다. 그들은 여왕으로서 승만부인의 길을 가고자 했을 것이다. 선덕여왕은 신라 땅에 많은 절을 짓고 불교의 가르침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했다. 고대국가시절 여성이라는 제약을 벗어나 위엄을 갖춘 왕으로서 세상을 통치하며 사자처럼 결기를 드러내고자 했다. 황룡사 9층탑을 세워 자주성을 드러내고 외세가 감히 넘보지 못하게 했던 것은 여왕의 주체적 결단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인류사적으로 자신을 비우며, 갇힌 자, 희망을 상실한 자, 고독한 자 등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한 고귀한 행동에서 승만부인의 원행을 발견한다. 진리는 방관적 침묵에서 벗어나 의로운 마음으로 참여하면서 열린다.

여성의 섬세함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성의 제약과 편견에서 벗어나, 폭력으로 생명을 말살하고 누르는 압제의 물결에 항거하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생명의 눈을 띄우고 무지와 어둠을 몰아내는 참여의 바람 속에서 승만부인의 발원은 활활 타오를 것이다. 이인자 승만경연구회장을 비롯한 여성불자들이 승만부인 10대원 실천에 매진해 온 것도 그렇게 타오르는 불길 중 하나였으리라.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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