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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싯닷타의 깨달음과 존 케이지 

기자명 김준희

‘선’의 사유가 만들어 낸 우연한 음악의 선율

자신만의 작곡 연구한 존 케이지
‘완벽한 침묵은 없다’는 깨달음이
대표작 ‘4분33초’ 탄생의 시발점
백남준 예술세계에도 영향 끼쳐

기원전 100~80년 숭가왕조시대 조성된 바르후트탑의 부조. 부처님께 경배하는 천신들의 모습으로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리수로 부처님을 대신 표현하고 있다.

중도에 입각한 선정 수행을 통해 싯닷타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 출가를 결심하고 수행한지 6년만인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깨달은 자 ‘붓다’가 된 것이다. 붓다는 중도를 ‘고행이나 쾌락, 그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은 가장 적절한 상태 또는 탁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중도를 통한 붓다의 깨달음은 극단적인 것을 떠나 해탈과 깨달음을 성취하는 가장 적절하고 훌륭한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번뇌의 완전한 소멸과 그것에 대한 명확한 통찰력으로 인생에 있어서의 궁극적인 숙제를 해결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우연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 아방가르드적 음악들을 남 긴, 20세기 후반 끊임없이 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했던 현대작곡가이다. 아무 음도 연주되지 않는 음악으로 유명한 ‘4분 33초’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존 케이지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 이외에도 건축, 미술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작곡가 쇤베르크에게 화성이론 및 작곡법을 배웠는데, 전통적인 작곡방법이 자신에게 잘 맞지 않음을 느끼고, 자신만의 특별한 작곡법을 연구했다.

항상 정해진 소리에 의해 음악이 표현되는 것을 진부하다고 느꼈던 그는 ‘소음’과 ‘만들어진 소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피아노 현에 볼트, 장난감, 고무, 나모토막 등등을 놓고 연주 하거나 피아노 뚜껑을 닫아 놓고 주먹이나 다른 것을 이용하여 소리를 내어 연주하는 작품들을 구상하게 되었다. 훗날 장치된 피아노(prepared piano)를 위한 작품도 발표하게 된다. 

그는 또한 침묵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게 되는데, 그 무렵 컬럼비아 대학에서 2년 동안 스즈키 다이세츠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새로운 것, 비어있는 것 등에 대한 연구가 ‘선’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존 케이지는 스즈키 다이세츠의 강의를 들으며 언제나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소리’에 대한 연구와 끊임없는 시도를 해왔다. 선에 대한 공부가 없었더라면 그의 음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졌을 수도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맞는 종교는 ‘선불교’뿐이다”라고 했고, 후에 자신이 맡은 예술 강의에서 선불교에 대한 부분도 자주 언급했다. 그 무렵 작곡된 그의 피아노 작품 ‘In a Landscape(1948)’는 상당히 명상적이고 동양적인 느낌까지 담고 있다. 그의 작품 중 같은 해에 작곡된 ‘Dream’과 이 곡만이 이런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에 전시되어있는 TV붓다.

1952년, 존 케이지의 대표작인 ‘4분 33초’가 탄생하게 된다. 그가 한 대학의 무향실(무음실)에 들어갔을 때, 완벽한 흡음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정 반대로, 두 가지 종류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자율신경계에서 나는 소리와, 혈액이 흐르는 소리였다. 순간 그는 평소에 생각하던 ‘침묵’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 즉 ‘완전하고 영원한 침묵’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침묵 속에서 우연히, 비의도적인 상태에서 발생하는 소리 역시 음악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을 작품에 담아내기로 했다. ‘4분 33초’는 273초, 즉 절대온도 K(-273)를 뜻한다고 정의했다. 악보에는 오선과 음표대신 세 개의 각 악장 첫 부분에 침묵을 뜻하는 Tacet이라는 표시 외에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는 지시가 있으며, 각 악장을 1분 33초, 2분 40초, 1분 20초간 연주해야 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 곡이 초연 되었을 때, 평가가 극과 극을 달렸다. 온갖 혹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4분 33초’는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이날 피아니스트는 어떤 음도 소리 내지 않았지만, 이 연주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발생한 모든 소리는 이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청중의 기침소리, 연주자가 넘기는 책장소리, 연주회장에 날아다니던 날파리의 소리(만일 있었다면)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아서 저게 뭘까 궁금해 하며 옆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귓속말 할 때 스치던 코트의 소리 등등,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모든 의도되지 않은 소리들이 음악이 되는 것이었다. ‘4분 33초’의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를 위한 연주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상을 주기도 한다.

어떤 평론가는 이 곡이 연주된 후, “저것이 진정한 선이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런 무작위적이고 전위적인 작품을 만든 존 케이지를 흠모했던 사람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29~1997)이었다. 존 케이지의 작품세계에 반한 백남준은 1958년에 그를 만났고 “1957년은 나에게 BC(Before Cage) 1년이다. 또한 기원후는 1993년(존 케이지가 타계한 이듬해)”이라고 할 만큼 존 케이지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존 케이지가 ‘장치된 피아노’를 고안해 낸 것처럼, 백남준은 건반을 연주하면 연결된 선을 통해 라디오가 켜지고, 헤어드라이기가 작동하는 ‘총체피아노’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또 피아노 위에 여러 개의 브라운관이 배치되어 있어 널리 알려진 ‘TV피아노’도 그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또한 1974년에는 TV를 시청하는 붓다의 모습을 다시 TV를 통하여 송출하는 ‘TV붓다’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쾰른미술관에서 진행된 퍼포먼스에서는 백남준이 직접 법의를 걸치고 TV 앞에 앉기도 했다. 현재 용인시 백남준 아트센터에 전시되어있는 이 작품은 관객이 붓다가 바라보는 TV화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면 관객이 화면 속에 등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연성과 열려있음을 생각했던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연상시킨다.

스즈키 다이세츠를 만난 존 케이지. 1962년.

익숙한 악기의 소리에서 벗어난, 소리와 소음에 대한 연구가, 역으로 ‘침묵’에 대한 물음으로 바뀌고, 오랫동안 집착해왔던 침묵, 근본적인 소리에 관한 의문이 선불교를 만나게 되어, ‘완전한 침묵은 없다'는 아주 중요한 깨달음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관념을 뛰어넘어 진정한 비어있음과, 비의도적, 무작위적 모든 소리에 대한 영감으로 이어져, 서양 현대음악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기게 되었으며, 또 다른 전위적인 예술장르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싯닷타는 끝없는 탐구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만남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사라진다는 것, 즉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여 발생하게 된다는 연기에 대해 설명했다. 이것은 깨달음이 현실과 동떨어진 초월적 경지도 아니며,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노력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붓다의 모습과 존 케이지의 계속된 음에 대한 탐구를 통한 음악적 깨달음은 그 방향이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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