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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하세가와 도하쿠의 ‘남전참묘도(南泉斬猫圖)’

기자명 김영욱

본분을 잊은 논쟁은 화두가 아니다

한 손에 고양이 다른 손엔 장검
나한 보는 듯 호방한 기운 전달
남전참묘는 ‘전도몽상’ 끊은 것

하세가와 도하쿠 作, ‘남전참묘도’ 부분, 4폭 장벽화(障壁畵) 중 한 폭, 종이에 먹, 일본 난젠지(南禪寺) 텐쥬안(天授庵) 소장.
하세가와 도하쿠 作, ‘남전참묘도’ 부분, 4폭 장벽화(障壁畵) 중 한 폭, 종이에 먹, 일본 난젠지(南禪寺) 텐쥬안(天授庵) 소장.

觀心見性徒自勞(관심견성도자로)
似蟲撲紙驢年去(사충박지려년거)
爲報含元殿上人(위보함원전상인)
莫問長安在何處(막문장안재하처)

‘마음 보고 본성 깨달음은 다만 스스로 고생만 할 뿐, 종이에 부딪히는 벌레는 나귀의 해에야 나가겠네 그려. 이르노니 함원전 위의 사람이여, 장안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지 말게나.’ 권필(權韠, 1545~1612)의 ‘제하여 천인상인에게 주고, 아울러 동악의 학곡에 부치다(題贈天印上人, 兼柬東嶽鶴谷)’.

사찰 바람에 물든 풍경 소리는 어디로 갔던가. 엄숙한 좌선당 뜰의 한바탕 소란이 산사를 흔든다.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 선사가 나가보니 동쪽과 서쪽 좌선당의 선객들이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었다. 독경(讀經)과 참선(參禪)으로 자신만의 화두를 깨우쳐야 할 선객들이 본분을 잊고 고양이 한 마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를 본 남전이 고양이를 잡아들고 말했다. 

“누구든 한 마디를 말할 수 있다면 베지 않겠다.” 

어느 사람도 말을 꺼내지 못하자 남전은 그 자리에서 고양이를 베어버렸다.

하세가와 도하쿠(長谷川等伯, 1539~1610)는 마치 우리에게 대답을 해보라는 듯 두 눈을 부릅뜬 남전 선사가 한 손에는 고양이를, 다른 손에는 장검을 들고 있는 모습을 화면에 그려놓았다. 화가 특유의 강한 필선으로 그려진 남전은 마치 불법을 수호하는 나한 혹은 무가의 검객처럼 호방한 기풍을 드러내며 두 눈의 형형한 안광을 내뿜는다. 그의 손에 잡힌 고양이는 두려움에 발톱 세운 앞다리를 허공에 쭉 내뻗고 있다. 이 극적인 장면은 보는 이에게 ‘벽암록’과 ‘무문관’에 실린 ‘남전참묘’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비의 시작은 단순했다. 고양이는 절집 곡식을 갉아먹던 쥐를 쫓았던지, 아니면 그저 볕이 좋아 뜰에 들어왔던 것일 수 있다. 작은 영물의 등장에 참선하던 선객도, 불경 외던 승려도 하나둘 시선을 보냈다. 시선은 수다로, 수다는 곧 논쟁으로 이어졌다. 고양이는 여기에 왜 왔을까? 고양이 주인은 누구인가? 동쪽 당의 고양이인가? 서쪽 당의 고양이인가? 산사에 발을 들인 저 고양이도 불성이 있는가? 없는가?

망념에 집착한 논쟁은 화두가 아니다. 한낱 말 겨룸에 불과하다. 남전 선사의 눈에 비친 좌선당 선객들은 몸만 축내는 어리석은 참선자이자, 불경 읽는 옛 고승의 눈에 비친 작은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참선과 독경으로 화두를 깨우치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작은 영물에 빠져 헛된 시비를 가리고 있으니, 그대로 두면 영원히 오지 않는 나귀의 해에야 깨우칠 듯했다. 남전의 ‘참묘’는 그들의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끊어버린 것이다.

장안에 있는 함원전에 올라가서 장안이 어디 있는지 아직도 찾고 있는가. 전도몽상에서 벗어나 장안을 마음대로 한가롭게 노닐고 싶다면, 남전의 참묘처럼 지혜의 안목으로 헛된 마음의 경계를 힘껏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85 / 2019년 4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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