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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범산 김법린·위당 정인보의 각별한 인연

기자명 이병두

“우리말 쇠퇴는 민족의 멸망 의미한다”

상해 임시정부서 활동한 김법린
1928년 ‘조선어사전’ 편찬 동참
사전편찬 함께했던 스승 정인보
정부수립 후 감찰위원으로 인연

1948년 감찰위원장 위당 정인보와 감찰위원 범산 김법린.
1948년 감찰위원장 위당 정인보와 감찰위원 범산 김법린.

“내 나이 열두 살 때(1910년) 조국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통곡하는 어른들의 그 몸부림을 보았다. 그 분들의 서러워하던 그 모습이 내 인생의 가는 길을 지배하는 자극이 되었던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평생 동안 조국독립의 염원이 유일의 신념처럼 몸에 배었을 것이다.” 1963년에 나온 ‘내 인생 편력의 회랑에서’라는 글에 실린 범산 김법린(이하 ‘범산’)의 회고다. 범산은 1919년 3‧1운동 거사 당시 만해 스님의 지도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출가사찰인 부산 범어사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그 뒤 프랑스로 유학을 가 파리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결의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해 활약한 사연을 이 연재 18회(법보신문 1392호, 2017년 5월24일자)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범산의 겨레와 나라 사랑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1928년 귀국 이후 조선어사전 편찬회에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여 프랑스어와 불교 용어 심의와 자문을 맡았다. 범산은 이렇게 사전 편찬 등 우리말과 글을 살려내는 일에 진력하다가 결국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최근 제작‧개봉되었던 영화 ‘말모이’에서도 이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이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 줄 짐작하게 하지만,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낸다고 한들 실제 그 일을 겪은 선각자들의 고통을 어찌 다 담아낼 수 있겠는가.

“조선 사람이 조선말을 모르면 조선인으로서의 자각을 잃게 되고, 조선 민족의 존재를 망각하기에 이른다. 조선말의 발달은 조선민족의 발전에 지대한 관계를 가진다. 조선말의 쇠퇴는 조선민족의 멸망을 의미한다. 그대들은 조선말을 연구하여 조선의 발달을 도모해야만 한다.” 

효당 스님이 세운 사천 다솔사불교강원에서 1934년 범산이 학인들에게 한 강연 내용 중 한 대목이다.

이 사진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감찰위원장(현 감사원장) 위당 정인보와 감찰위원 범산이 함께 찍은 것이다. 두 사람은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당시 신문에는 ‘우리말사전편찬회’ 창립이라고 씀) 창립 당시 발기인과 위원으로 나란히 이름을 올린 오랜 인연이 있었으며, 위당은 범산의 스승인 만해와도 돈독한 우정을 간직하였다.

위당은 “인도에는 간디가 있고 조선에는 만해가 있다”며 “조선의 청년들은 만해를 우러러 본받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만해가 입적하자 “풍란화 매운 향내/ 당신에야 견줄손가./ 이 날에 님 계시면/ ‘별’도 아니 더 빛날까./ 불토가 이외 없으니/ 혼아 돌아오소서.”라는 조시로 애절한 심경을 담아내어서 범산은 위당을 각별하게 여겼다. 이 사진에는 숱한 인연을 함께 간직해온 ‘동지’이며 ‘스승과 제자’인 두 선각자의 깊은 정이 담겨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87 / 2019년 5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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