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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수다나의 의도

기자명 김정빈

“의도 갖지 않았다면 선업도 악업도 될 수 없다”

부잣집의 딸 수다나 가출해서
사냥꾼과 결혼 칠형제 낳아  
사냥만하던 남편과 아들 모두
그녀로 인해 부처님께 귀의

수다나가 사냥도구 챙겼으나
악행의도 없기에 악업 안돼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한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경전에 그녀의 이름이 전해져 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지어 수다나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녀는 라자가하에 사는 한 부자의 딸이었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그녀의 부모는 그녀로 하여금 함부로 외출을 할 수 없도록 높은 집을 지어 그 꼭대기층에 머물도록 했다. 

어느날 저녁, 수다나는 창가에서 밖을 내려다보다가 사냥한 사슴들을 팔려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한 청년을 보았는데, 그의 이름은 꾹꾸따밋따였다. 수다나는 꾹꾸따밋따에 대한 사랑의 염을 느꼈다. 그녀는 하녀를 시켜 청년이 언제 성에서 나오는지를 알아보게 했다. 밖으로 나간 하녀는 곧 돌아와 그가 내일 아침에 성문을 나올 예정이라고 알려주었다.

수다나는 이미 큰 결심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값진 보석과 옷들을 챙겼다. 그러고는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와 성문에서 사냥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꾹꾸따밋따가 나오자 그녀는 그의 마차를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꾹꾸따밋따가 말했다.

“나를 따라오지 마시오, 아가씨.”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은 혼인을 하셨나요?”
“하지 않았소.”
“그러면 사랑하거나 마음에 둔 아가씨가 있나요?”
“없소.”
“그렇다면 말하겠어요. 나는 당신이 좋아요. 당신은 어떠신가요? 행운이 넝쿨째 굴러들어오고 있어요. 넝쿨을 붙잡으세요.”

사냥꾼 꾹꾸따밋따는 수레를 멈추고 수다나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부모 몰래 밖으로 나오느라 하녀의 옷을 입고 위장을 하고 있었음에도 수다나의 외모는 고왔고, 태도 또한 기품이 있었다. 꾹꾸따밋따는 굴러들어온 대단한 행운을 자신의 마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수다나의 부모는 딸이 없어진 뒤에 사방으로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래서 딸이 죽었다고 단정하고 장례를 치렀다. 한편, 수다나는 꾹꾸따밋따와 살면서 아들 일곱을 낳았는데, 아들들도 모두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께서 세상을 살피시다가 꾹꾸따밋따와 그 아들들이 깨달음을 성취할 인연이 무르익은 것을 아셨다. 그래서 가사와 발우를 들고 꾹꾸따밋따가 짐승을 잡기 위해 그물을 쳐놓은 곳으로 가셨다. 부처님께서는 그물 안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겨 놓고는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 아래에 앉아 계셨는데 그날따라 그물 안에 짐승이 한 마리도 걸리지 않았다.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꾹꾸따밋따는 짐승이 안 잡힌 것이 부처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분노를 일으켜 부처님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그의 팔을 마비시켜버렸고, 그 때문에 그는 그 자세로 조각상처럼 서 있어야만 했다. 

이번에는 아들들이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으러 현장에 왔다. 그들은 조각상이 되어 있는 아버지를 보고는 그것이 부처님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활을 들어 부처님을 겨누었고, 부처님은 그들 또한 그 자세로 꼼짝하지 못하도록 만드셨다.

그리고 그때 수다나가 현장에 도착했다. 수다다는 남편과 아들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그리고 아들들아! 그분을 쏘면 안 돼요! 그분은 나의 아버지예요!”

이 말을 들은 꾹꾸따밋따는 그동안 부처님에 대해 일으켰던 미운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장인에 대한 친밀한 마음이 일어났고, 사정은 일곱 아들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아신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몸을 자유롭게 풀어주셨고, 일곱 남자들은 부처님께 절을 올리며 용서를 빌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셨다. 그러자 그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수다원과를 성취했다. 하지만 수다나는 예외였다. 그녀는 그때 이미 수다원을 성취한 성자였던 것이다. 그녀가 부처님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나중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수다나는 남편과 아들들이 살생을 하도록 도왔는데, 이로써 볼 때 그녀는 수다원일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수다나가 남편과 아들들이 살생을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활과 화살을 챙겨주었다며, 이렇듯 악행을 할 의도가 없는 경우 그 일 때문에 나쁜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그것이 악업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논리적 허술함을 발견한다. 수다나는 처음부터 꾹꾸따밋따가 사냥꾼임을 알았고, 그와 수십 년을 함께 살았다. 또, 활과 화살이 무언가를 쏘아 해치는 도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경전은 그 도구들을 남편과 아들들에게 챙겨준 수다나가 그들의 살생을 도울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허술한 진술이다.

이런 허술함은 ‘법구경(담마파다)’의 게송에 불교 경전 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짜 맞추어 ‘법구경 이야기(담마파다 앗타캇타)’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기도 하고, 고대인들이 현대인들에 비해 논리적인 정합성에 덜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 점을 감안하면,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인과를 설하심에 있어서 ‘의도’를 중시하셨다는 점일 것이다. 의도 없이 행한 일은 악업도 선업도 되지 않으며, 의도를 갖고 행한 행위가 선업이나 악업이 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이른바 ‘결과주의’가 아닌 ‘동기주의’이다.

그렇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과주의도 감안되어야 한다. 내가 운전이 미숙하여 남을 상해했을 경우, 나는 그에게 상해를 입히려는 의도가 없었긴 해도 나는 그 상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부처님께서는 그 책임이 면책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업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실 뿐이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 이 게송에 나오는 ‘자정기의’는 불교의 핵심이다. 나의 의도를 맑히는 것, 그것은 곧 인과를 맑히는 것이요, 행복을 밝히는 것이다. 한순간, 한순간 나의 의도를 살피자. 그 의도를 맑히고 밝히자. 그럼으로써 더 행복해지는 불제자가 되자.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87 / 2019년 5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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