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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절 만(卍)-하

기자명 현진 스님

중세 이전부터 유럽 전역서 평화 상징으로 사용

나사 조일 때 우만 방향인 것은
힘이 나에서 밖으로 향한 이치
탑돌이 때 우측으로 도는 것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의미

만(卍)과 유사한 나치상징의 이름은 하켄크로이츠인데, 독일어로 ‘갈고리’를 뜻하는 하켄과 ‘십자가’를 의미하는 크로이츠의 합성어이다. 하켄크로이츠의 등장은 철학이 발달한 독일이기에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생긴 일이라 여기기도 하지만, 기실은 유럽 전역에 걸쳐 중세 이전부터 만(卍)에 해당하는 문양의 사용은 널리 전개되고 있었다.

고대 게르만족의 룬 문자에서 하켄크로이츠가 유래되었고, 그리스어의 감마디온과 라틴어의 크룩스감마타도 만(卐)과 유사하며, 유럽 주요 민족의 왕실문양과 근대에는 몇몇 기업의 마크에도 주로 평화와 길상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었었다. 비록 나치가 두드러지게 사용한 까닭에 이젠 금기시되는 표식으로 굳어져버렸지만, 그전까진 넓은 지역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인도에는 비록 아리안족이 본래부터 지녔던 것은 아니지만 인도대륙에 정착하며 드라비디안족의 영향으로 갖기 시작한 정(淨)・부정(不淨)의 개념이 있다. 간략히 말하면 무엇이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정(淨)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부정(不淨)하다는 생각을 말한다. 정・부정의 개념은 인도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심지어 이역만리에 있던 신라의 이차돈 순교 때 쏟은 흰 피도 이 개념에 의해서만 해석이 가능할 정도이다. 약설하자면, 몸속에 있어야 될 피가 바깥으로 분출된 경우 가장 부정한 것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데, 반면에 소의 젖은 비록 유사한 형태라도 가장 신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성인의 훌륭한 행위에 수반된 피는 우유로 묘사되어 장엄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이차돈의 순교 정도에 그치지만 티벳은 역사의 적지 않은 설화에 등장하는 현상이다.

식사엔 오른손만 사용한다거나, 그런 오른손이 해우소의 뒷일을 담당하는 왼손과 어렵사리 맞닿게 하는 것이 합장이라는 것 등이 모두 정・부정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훌륭한 분을 공경하는 몸짓으로 절을 하듯이 고대 인도인들은 그 분의 주위를 도는 행위를 통해 존경을 표현할 때도 도는 방향이 시계방향이 되는데, 이는 신체의 깨끗한 부위인 오른쪽을 그 분에게 계속 보이며 돌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시계방향이 곧 우만(卍)인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적인 일치일까?

불교에서는 그렇게 성인의 주위를 돌며 경배 드리는 것을 ‘우요삼잡’이라 일컫는데, 중국의 거의 모든 전각의 불보살상 뒤편으로 길이 나있는 것이 그 이유에서이다. 우리네 절은 말 그대로 절로 경배의 형태가 바뀐 까닭에 뒤편을 막아놓았지만 제법 오래된 큰법당에 불상 뒤편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둔 것은 사월초파일 때 쓰다 남은 연등을 쌓아두기 위해서만은 분명 아니다.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일 때 우만의 방향이요 풀 때는 좌만의 방향이다. 우만은 힘의 방향이 나로부터 바깥으로 전달되고 좌만은 그 반대라는 이야기인데, 부처님께 공경을 드릴 때는 우만의 방향을 따르는 이유다. 그래서 탑돌이 할 때도 밤이 새도록 우만으로 탑을 돌며 부처님께 공경을 올리다가 새벽녘 회향 때는 주지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몇 차례 좌만으로 돌아서 마무리하는 이유는, 밤새도록 공경을 드렸으니 마지막엔 부처님으로부터 복덕을 받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 우만과 좌만은 조금은 자연의 과학적인 현상도 깃들어있는 셈인데, 그 조금의 과학적인 현상도 오른손잡이가 아닌 왼손잡이거나 남향으로 서서 태양을 보고 휘도는 은하계를 반대방향에서 본 경우 등, 첫 단추가 뒤바뀐 경우라면 꼭히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무엇이든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인도에선 좌만(卐)에서 우만(卍)으로 이미 초기에 정착되었다. 좌만은 북향으로 서있는 사람이 관찰할 수 있는 태양의 운행방향이라면, 우만은 약간은 비과학적이지만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눈을 돌렸을 때 천체의 운행방향 정도로 볼 수 있다. 좁게는 태양의 운행과 넓게는 우주의 운행이 삶의 원동력으로 인식되기에 성인의 심장 표면인 가슴에 만(卍)을 새기게 된 것이리라.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487 / 2019년 5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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