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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수보살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모든 이들이 보리심을 타고 정각의 길 오르길”

‘아름다운 행복 가득한 님’ 문수
자비와 뗄 수 없는 지혜의 상징
동행·동업·동사 등 보리심 발원
수행 일깨우고 빈민구제로 화현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은 타자의 아픔과 함께하는 공생의 보리심을 추구한다. 사진은 막고굴 159굴의 문수보살상.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은 타자의 아픔과 함께하는 공생의 보리심을 추구한다. 사진은 막고굴 159굴의 문수보살상.

계율에 대한 상에 얽매어 스스로 고결하다는 생각, 우월적 입장에 선 차별적 시각,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추한 타자를 경계하는 아상이 강한 사람들을 번득이는 지혜로 꼬집고 일깨우는 보살이 문수보살이다. 또한 문수보살은 거지나 장애인으로 등장하여 그런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자신의 삶으로 껴안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보리심을 깨운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그 본래 이름이 ‘만주슈리(Manju sri)’다. ‘묘한 아름다운 행복으로 가득한 님’이라 하여 묘길상(妙吉祥)으로도 불린다. 문수나 만주실리는 그 음역이다. 지혜는 자비와 더불어 불교를 움직이는 양대 축이다. 특히 지혜란 직면하기 두려운 괴로움, 그 삶의 상처를 고정적 시각을 떠난 관계적 통찰로 관조하고 알아차려 치유하며, 나와 타자가 한 몸으로 어우러지는 빈 공간에 눈을 떠 자신을 비운다는 점에서 자비와 떨어질 수 없는 해탈의 덕목이다. 불교의 이러한 지혜를 반야의 지혜라 한다.

보리심 역시 지혜를 구하는 마음이다. 지혜로 나를 끝없이 비워 타자와 공생,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소통한다. 비록 미끄러지기도 하지만 공동체적 삶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내 몸 안에서 타자의 숨결을 껴안고 느끼며 깨우쳐 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보리심이란 단순한 마음의 깨달음이 아닌 몸으로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적 삶으로서 지혜의 드러남이다. 

문수보살의 발원은 동행(同行), 동업(同業), 동사(同事) 등을 공유하는 공동체적 보리심과 연관이 깊다. 문수보살의 십대원이 그렇다. 그 십대원은 ‘대승유가금강성해만주실리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教王經)’에 소개되어 있다. 내용이 긴 십대원 하나하나를 나름대로 간추려 소개해 보련다.

“① 사람들과 더불어 어우러져 생활하면서 그들이 보리심을 내도록 해, 나와 함께 한 인연으로 불도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② 나를 비방하거나 나에게 화를 내거나 형벌과 죽음을 주어도, 나와 함께한 인연으로 보리심 내기를 바랍니다.”
“③ 나(문수)의 몸을 애념하거나 나를 보고자 욕심내면, 아첨과 곡해가 성행하고 그릇된 견해로 전도되어 깨끗한 행이나 부정한 행을 낳고, 온갖 악과 불선(不善)을 낳더라도, 나와 함께 한 인연으로 보리심 내기를 바랍니다.”  
“④ 나를 속이고 강압하거나 삼보를 비방하거나, 사람들을 깔보고 시기하더라도 나와 함께 한 인연으로 보리심 내기를 바랍니다.”
“⑤ 나를 이용하든 나를 이용하지 않든, 나를 따르든 따르지 않든 나와 함께 한 인연으로 보리심 내기를 바랍니다.”
“⑥ 항상 생명을 죽여 사람 몸 받기 힘든 자, 재물에 욕심 많은 자라도 나와 함께 한 인연으로 보리심 내기를 바랍니다.”
“⑦ 계를 지키든 계를 파하든 수행을 하든 수행을 하지 않든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는다면, 함께 걷고 같이 일하며 나와 함께 하는 인연으로 보리심 내기를 바랍니다.”
“⑧ 온갖 죄를 많이 지어 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의 길을 걷더라도 그들의 형상에 맞게 변화하여 몸을 나투어 항상 그들과 같은 세상에 태어나서 교화할 것입니다. 혹은 맹인·청각장애인·언어장애인이나 가장 하천한 걸인이 되겠습니다. 모든 생명들과 함께, 같은 상황에 처하고 함께 인연을 맺으며, 함께 어우러지고 함께 행하며, 함께 일하면서 불도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니 나와 함께하는 인연으로 보리심 내기를 바랍니다.”
“⑨ 교만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재물을 유용하고 5계를 범하고 10악을 저지르는 등 온갖 악을 지어 악도에 떨어지더라도 그들이 모두 그곳에서 벗어나길 원하며, 나와 함께 하는 인연으로 보리심을 내어서 위없는 도[無上道] 구하기를 바랍니다.”
“⑩ 나의 큰 서원과 함께하면 이는 곧 나의 몸이어서 나와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자·비·희·사 4무량심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허공과 같아 널리 생명들을 제도하기에 쉼이 없을 것이니, 모든 이들이 보리심을 타고 정각(正覺)의 길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문수보살의 지혜와 십대원과 관련하여 문수신앙이 역사의 큰 페이지를 장식하며 번져 나간다. 하나는 수행자들의 자만을 일깨우는 방법으로, 다른 하나는 빈민구제 활동으로 문수보살은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예전부터 문수보살을 친견하려는 수행자가 많았다. 그러나 자신의 고상하고 깨끗한 역할에 고착되거나 계율의 엄숙주의에 빠져있는 수행자들은 여지없이 문수보살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는다. 중국의 명욱 스님은 얼굴이 추하고 행동거지가 변변하지 않는데다가 병에 걸려 냄새나는 동료 스님을 혼자 두고 떠난다. 그러자 그 동료 스님이 문수보살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대는 보살을 친견하고도 알아보지 못했노라”고 그 잘못을 나무란다. 

우리나라 근세의 해담(海潭) 스님은 괴팍한 성격에다 철저한 계행으로 이름났는데, 문수보살은 죽은 강아지를 망태기에 담은 채 온 몸에 피를 뚝뚝 흘리는 과객으로 나타나 이 스님에게 염정불이(染淨不二)를 일깨워 준 후, 죽은 강아지가 변한 청사자를 타고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자장 스님도 문수보살을 친견하려 했지만, 남루한 차림의 거지꼴을 한 거사가 자신을 찾아오자, 이를 무시하는 순간, 문수보살로부터 호된 경책이 나아든다. “돌아가자, 돌아가, 아상이 강한 사람이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는가.”

위에서 든 예는 문수보살의 제3원과 연결되는데, 그것은 수행자들의 문수 법신에 대한 자신의 애착과 그 환상을 가로지르는 지혜의 눈 뜸이라 할 수 있다.

문수 신앙은 대사회적 빈민 구호 활동에 큰 발자취를 남긴다. 그것이 문수회(文殊會)다. ‘문수사리반열반경’에서 “문수는 그 몸을 빈궁, 고독하여 고뇌에 찬 중생으로 바꾸어 행자[수행자] 앞에 이르게 되리라” 혹은 “자비심을 행하는 것이 문수사리를 친견하는 것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수보살의 제8원과 어우러진다. 이러한 문수회는 고려시대에 신돈과 나옹혜근 선사에 의해 성대하게 베풀어져, 빈궁한 자들을 돕는 의례로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문수신앙은 걸인, 나병환자 등을 위한 빈민구제 불사로 널리 행해졌다.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현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고통 받는 예수, 그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괴물, 냄새나는 배설물에서 신의 사랑과 신의 참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처럼 문수보살은 하천한 거지의 모습, 추한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써 바로 자신과 동일시할 수 없는 그 타자를 자신으로 껴안아야 문수의 진신을 친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끝없는 비움의 보리심, 타자의 아픔과 함께 하는 공생의 보리심이 아닐까?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487 / 2019년 5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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