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범천의 권청과 ‘멘델스존의 서곡’
9. 범천의 권청과 ‘멘델스존의 서곡’
  • 김준희
  • 승인 2019.04.30 10:44
  • 호수 148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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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깊은 바다와 같은 붓다 설법 연상되는 선율

멘델스존 서곡, 바다의 풍경 담겨
괴테 시에 영감받아 작곡한 걸작  
뛰어난 음악적 묘사·이해로 주목
‘19세기 모짜르트’ 등 극찬 받아
서곡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자필악보(1828).

모든 번뇌를 물리친 깨달음의 경지, 즉 열반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연 열반의 경지를 이해할 수 있는 자가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붓다는 혹시 이 깨달음의 상태를 사람들에게 말한다 하더라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험담을 하거나 다른 구업을 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붓다는 조용한 입멸을 결심했다.

그때 범천(브라흐만)이 나타났다. 범천은 붓다의 결심을 눈치 채고 간절히 부탁한다. “깨달은 이가 나오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붓다께서 가르침을 주시지 않으면 사람들은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붓다는 처음에는 대중에게 설법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번뇌에 물든 이들은 어렵게 얻은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고,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범천은 다시 한 번 간곡하게 아뢰었다. “번뇌에 적게 물든 이들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서곡(Overture)은 오페라나 연극의 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단악장의 짧은 관현악 곡을 말한다. 오페라의 주요 선율을 포함하고 있어 청중들은 서곡을 감상하면서 극의 내용이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오페라나 극과는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형태의 ‘연주회용 서곡’이 많이 작곡되었고, 서곡은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 악장짜리 기악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연주회용 서곡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Op.27은 괴테의 시 두 편에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고요한 바다’는 1787년 괴테가 카프리 연안에서 바람이 불지 않아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 위험했던 경험을, ‘즐거운 항해’는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해 배가 움직이고 드디어 육지가 보이는 안도감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서곡이 작곡되었던 1828년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괴테의 시를 즐기고 있어, 청중들은 멘델스존의 작품을 매우 잘 이해했다고 한다. 낭만주의 시대는 이렇듯 미술, 음악, 문학 간의 장르가 이전의 시기보다 훨씬 더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많은 곡들이 문학작품의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고, 회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여행을 하며 남긴 그림과 메모(1829년).

이 곡은 두 개의 시의 내용과 같이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시 ‘고요한 바다’의 시작은 저음의 매우 고요한, 그러나 무언가 터질 것만 같은 현악의 선율 위로 두 대의 플루트와 바순이 주저하듯 등장하며 곧 첼로를 중심으로 불안정한 느낌의 선율이 펼쳐진다. 죽음과 같은 고요한 바다를 보며 근심 가득한 사공의 불안한 심경을 토로한 것 같은 느낌이다.

‘물속에 깊은 고요가 깃들고/ 바다는 잠잠하다/ 사공은 근심스럽게/ 고요한 수면을 둘러본다/ 어느 곳에서도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죽음 같은 고요가 무섭게 밀려온다/ 끝없이 넓은 바다에/ 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고요한 바다)’

망설이는 듯한 플루트 음형과 호른의 교차되어 울리는 선율은 마치 바람이 처음 불어오는 것 같다. 곧이어 모든 악기들이 번갈아 등장하여 돛이 풀리면서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확신에 찬 D장조의 당찬 선율이 터지듯 울린다. 현악기의 유니즌으로 반복되는 리드미컬한 패시지들은 출항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안개가 걷히고/ 하늘은 밝고/ 바람의 신이/ 근심의 끈을 푼다/ 바람이 산들거리고/ 사공이 움직인다/ 빨리, 빨리/ 물결이 갈라지고/ 나는 이미 육지를 본다! ’(즐거운 항해)

괴테의 시는 ‘이미 나는 육지를 본다!(Schon seh'ich das Land!)’는 구절로 끝나지만, 멘델스존은 마치 즐거운 항해를 마친 배가 항구까지 안전하게 들어가는 모습까지 그리듯, 팡파레 코다 뒤에 고요한 끝맺음을 덧붙였다. 앞의 시에서 공포와 불안의 고요함과는 다른 안정적인 고요함이다. A.B.마르크스는 이 곡을 가리켜 표제음악의 발전 경로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인정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멘델스존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바다로의 여행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였다. 시에 대한 이해와 뛰어난 음악적 묘사력으로 이런 훌륭한 음악적 상관물을 창조해낸 것이다. 영국에서의  활동을 뒤로하고 떠난 스코틀랜드 지역의 크루즈 여행 중 헤브리디스 군도를 항해하며 받은 영감으로 작곡된 ‘핑갈의 동굴 서곡’ Op.26은 또 다른 바다의 풍경을 담고 있다. 회화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멘델스존은 여행 중 스코틀랜드의 풍경을 그린 스케치를 일기 형식으로 남겼다. 그의 그림과 함께 이 곡을 감상하면, 멘델스존이 얼마나 뛰어난 예술가였는지 알게 된다. 이 곡은 특히 웅장하면서도 특이한 동굴과 주변 바닷가의 모습이 마치 그림으로 그려내듯 음악의 언어로 묘사되어 있다.

붓다에게 설법을 청하는 범천과 인드라신. 간다라(1~2세기), 독일베를린인도미술관. 사진제공=유근자

멘델스존은 우아하고 고상한 선율로 가득한 수준 높은 작품들을 남겼다. 슈만은 “과거의 계승자, 미래의 예지자”라는 평가와 함께 멘델스존을 “19세기의 모차르트”라고 극찬했다. 괴테 역시 멘델스존의 연주를 듣고 감탄한 것은 물론,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눈 후에는 어린 멘델스존의 교양과 지적 수준에 놀라워했다. 또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멘델스존은 고전주의 안에서 편안함을 펼쳤던 낭만주의자”라고 했다. 유복한 은행가의 가문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다양한 교육을 받았던 멘델스존의 작품 곳곳에는 안정감과 평온함 그리고 세련된 정갈함이 묻어난다. 그는 음악을 비롯해 문학, 수학, 역사, 지리, 언어는 물론이고 회화와 체육까지 고루 배울 수 있었고, 그만큼 여러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펼쳤던 그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물이었다.    

멘델스존이 그의 서곡에서 남긴 넓고 큰 바다의 풍경을 붓다의 설법으로 느껴 보면 어떨까. 붓다는 고민 끝에 아직 번뇌에 적게 물든, 지혜로운 자들에게 설법하기를 결심하고 “불사(不死)의 문이 열렸으니, 낡은 믿음을 버리고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말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바다의 풍경을 붓다의 설법에 대한 깊은 결심으로, 확신에 찬 선율들로 시작해 안정감 있게 조용히 끝맺는 ‘즐거운 항해’는 붓다의 설법에 비유해 본다. 또한 웅장한 핑갈의 동굴의 모습을 묘사한 절묘함을 붓다의 새로운 진리를 알리는 고귀한 선율로 생각해 보자.

범천의 권청은 붓다의 깨달음과 그 진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후대의 역사가들이 문학적으로 구성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음악회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는 ‘서곡’과 붓다의 첫 설법에의 결심을 함께 생각해보자. 올해 탄생 210주년을 맞이하는, 그 시대의 엄친아 멘델스존의 문학적 서사와 회화적 묘사를 담은 두 서곡을 들으며, 문학적 요소가 가미된 이 범천의 권청의 일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487 / 2019년 5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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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철 2019-05-02 03:14:35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마포도사 2019-04-30 12:19:18
‘핑갈의 동굴 서곡’ Op.26은 오랫동안 즐겨들어 왔습니다만 (주로 여름에)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Op.27는 잊고 있었습니다. 새로이 들어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