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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반려동물] 4. 부처님 도량의 반려동물

사찰 공동체 당당한 일원…법당 지키고 포교 일익 담당하기도 

불연 깊은 수국사 사찰견 ‘쿤이’
주민‧템플스테이 참가자에 인기
눈 안보이는 신안사 ‘심안이’는 
사찰 구성원 배려로 건강 회복
유기견‧유기묘 인연도 각기 다양
생명 간 교감‧공존 훈훈함 전해

수국사 사찰 반려견 ‘쿤이’는 신도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의 마음까지 단박에 사로잡은 강력한 매력의 소유자다. 주지 호산 스님과 쿤이가 다정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나섰다.

동물들이 사찰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 스며들고 있다. 과거 사찰견이 목줄 맨 경비원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사찰 대중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로 인정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에 발맞춘 변화다. 다양한 사연을 품고 사찰과 인연을 맺은 동물들이 스님 혹은 신도들과 교감하는 가운데 부처님 품 속 반려동물로 살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국내 유일의 황금법당으로 알려진 서울 수국사(주지 호산 스님)다. 도심 한복판의 고즈넉한 자연에 금빛으로 장엄한 법당이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에 얼마 전부터 ‘쿤이’라는 이름의 명물이 또 하나 생겼다. 커다란 몸집에 하얀색 털을 휘날리며 남다른 존재감을 자랑하는 쿤이는 사찰 반려견이다. 수국사에 온지 20개월만에 신도들은 물론이고 지역민들의 마음까지 단박에 사로잡은 강력한 매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덕분에 요즘 수국사를 찾는 신도들은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손에 치즈를 숨기고 쿤이를 찾느라 분주하다. 한번 간식을 준 신도는 꼭 기억을 하고 반기기 때문에 쿤이를 향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는 후문이다. 

대형견 중에서도 큰 편인 쿤이가 위압감 없이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요인은 남다른 성품이다. 쿤이는 영천 은해사 출신이다. 엄마는 은해사 선방을 지키던 차우차우, 아빠는 백구로 추정된다. 엄마 뱃속부터 목탁소리를 듣고 태어난 불연 덕분인지 강아지 시절부터 이유 없이 짖지 않고 불구를 포함한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등 의젓한 면이 있었다. 이제연 수국사 사무장은 “좁은 곳에 가두거나 짧은 목줄로 본능을 억제하는 일을 최소화 한 주지 스님의 방침 덕분에 순한 성품이 그대로 지켜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간 위주로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 본연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찰 구성원으로 스며들었다는 것. 잘 시간이 되면 발을 닦고 주지스님 처소 밖 다실에 들어와 잠을 청하는데, 이 역시 훈련이 아닌 쿤이 스스로의 선택이다. 

쿤이의 하루는 매일 오전 8시경 시작된다. 햇볕 좋은 곳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더워지면 종무소 바닥이나 그늘에 누워 오침을 즐긴다. 나비 등을 좇아 풀밭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종무원들과 신도들에게 놀아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내내 놀기만 하는 것 같지만 경내를 돌며 순찰도 하고 스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손님 맞이에 배웅까지 본연의 역할도 늠름하게 해낸다.

“개인적으로 사찰에서 개를 기르는 것에 대해 썩 달가워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쿤이를 데려오고 나니 사찰 분위기부터 확 달라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죠. 우선 신도들이 너무 좋아하고 지역 분들도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많이 와요. 경내가 넓고 트여있어 항상 신경이 쓰였는데 이젠 밤에도 쿤이가 있어 든든하죠. 사찰 공동체의 일원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주지 호산 스님이 쿤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애정이 담뿍 묻어났다. 스님은 “특히 사찰 문화가 낯선 비불자들에게 쿤이의 존재는 친근함을 주는 매개”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쿤이는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젊은 사람들과 반려견을 키우는 지역 주민들에게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수국사의 마스코트’라는 말까지 나온다. 

스님은 “불자가 아닌 분들이 쿤이를 보기 위해 수국사에 왔다가 경내를 둘러보고 법당을 참배하기도 한다”며 “어떤 면에서는 쿤이가 포교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진담 섞인 농담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금산 신안사 주지 맥산 스님은 두 눈을 실명한 고양이에게 ‘심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충남 금산군 신안사(주지 맥산 스님)에 살고 있는 고양이 ‘심안이’도 남다른 인연으로 사찰에 스며든 반려묘다. 경내에 ‘신안사 마스코트 심안이’라는 소개 팻말이 있을 정도로 신안사 대중들의 사랑과 배려를 듬뿍 받고 있다. 팻말에는 “사람과 동등하게 소중한 생명체인 심안이가 행복한 마음으로 잘 살아가기를, 부처님의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이 담겼다. 

심안이의 원래 이름은 ‘일목(一目)’이다. 날 때부터 한쪽 눈의 안구가 없는데다 미숙아로 태어나 생사의 기로에 놓인 새끼고양이 일목이를, 어미고양이가 신안사 총무 미소보살의 집 앞에 두고 간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동물병원에 입원해 20여일간 치료를 받은 후 겨우 살아났지만 나머지 한 쪽 눈을 잃었다. 지난해 1월경 사연을 들은 주지 맥산 스님은 일목이를 절에서 키우기로 하고 ‘심안(心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줬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의미다. 요즘 건강을 회복한 심안이는 신도들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신안사에서 새로운 삶을 찾은 생명은 심안이 뿐 아니다. 칠구, 보리, 남순, 하루란 이름의 4마리 개도 유기견 출신이다. 개장수에게 팔려가거나 안락사의 위기에서 구출돼 사찰에 들어왔다. 이 역시 생명의 소중함, 인연의 지중함을 고려한 주지 맥산 스님의 배려 덕분이다. 

신안사 총무 미소보살은 “칠구와 보리 등 개들도 눈이 안 보이는 심안이가 가끔 개 집에 들어가 있으면 제 공간을 양보하기도 하고 보살펴 주는 등 잘 지내고 있다”며 “부처님 공간에서 동물들도 하나의 생명이자 공동체 일원으로 서로 배려하며 사는 삶이기에 더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전했다. 

지치고 굶주린 채 거리를 떠도는 유기묘나 유기견을 사찰이 보듬는 일은 다반사다. 장흥 보림사(주지 일선 스님)의 ‘반야’도 그렇다. 털이 빠지고 남루한 행색으로 찾아온 유기견을 주지 일선 스님이 받아들여 정성으로 돌보면서 신도들의 귀염둥이로 거듭났다. 스님은 “축생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고 반야라는 불명을 지어줬다”며 “이제 더 이상 병들고 굶주린 외로운 나그네가 아니라 당당하게 불성을 회복해 도량의 주인이 됐다”고 소개했다. 보림사에는 ‘바라’와 ‘밀다’라는 이름을 가진 개 두 마리도 있으니, 세 마리 개를 한 번에 부르면 “반야 바라 밀다”다. 부처님 도량에 반야바라밀다가 상주하는 셈이다.

법당을 지키는 사찰견은 스님들과 신도들의 사랑을 받으며 사찰공동체 일원이 됐다. 

유기견을 돌보다 아예 유기견 보호소를 차린 스님도 있다. 경남 사천 견공선원의 청솔 스님은 2013년 무렵 한 유기견 단체로부터 개를 맡아 키워달라는 부탁을 받고 돌보다가, 점차 유기견을 직접 구조하는 등 적극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많을 때는 100마리를 웃돌다보니 법당 불사를 위해 마련한 터는 어느새 개들의 안식처가 됐다. 스님은 한 마리, 한 마리 인연이 닿을 때마다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으로 돌본다. 입양을 보낼 때도 믿을만한 곳인지 사전에 점검하고 입양 이후의 소식도 확인하는 등 철저하다. “어떤 생명도 버림받아서는 안된다”는 스님의 확고한 자비 원력이 있기에 가능한 행보다. 

인간에게 정을 붙이는 개와 달리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어느 날 문득 찾아와 경내를 돌아다니다가 공양주 보살이나 신도들이 챙겨주는 음식이나 사료를 먹으며 사찰 고양이로 살아가는 사례가 많다. 사찰에서 고양이를 키운다기보다, 사찰에 터를 잡은 고양이와 공존하는 것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급증한 덕에 ‘사찰 냥이’를 만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도량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하니 부처님 공간에서 공양밥 먹는 만큼 나름의 역할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7년전 다리 다친 고양이를 치료하며 인연을 맺었다는 서울 지역의 한 스님은 “다양한 사연으로 사찰과 인연 맺은 동물들이 대중과 서로 교감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부처님이 설하신 생명 존중, 평등과 자비 사상을 보여줄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반려동물을 대하는 문화가 많이 달라진 만큼 사찰 반려동물도 포교 등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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