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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당선작] 포교사단장상 - 김수현

기자명 법보

‘죽음’에 대한 고민, 사찰순례서 만난 인연들에게서 답 찾아

할아버지 떠난 후 ‘죽음’ 의문
마음 가라앉히려 日 사찰순례

나라 흥복사 오층탑 앞서 만난
매일 돌 줍고 돌탑 쌓는 할머니
임제종 대덕사에서 농담을 하며
웃는 얼굴이 부처님 닮은 노승
‘죽음’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고
‘어디서 왔고 가는지’ 고민 해결

억지로 좋은 인연 못 구하더라도
마음으로 기원하면 눈앞에 있어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손톱에 구름이 떴네. 누가 너한테 큰 선물을 주려나보다.”

손톱에 갈대 모양으로 흰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선생님은 불그스름한 손톱 밑 살 위로 비치는 흰 구름은 어디서 쓸려왔는지 몰라도 약간의 보랏빛이 돈다며 손가락에 뜬 구름은 꼭 아미타불께서 내영하실 때 타시는 자색(紫色)구름 같다고 하셨다. 나의 샤미센(비파 모양의 삼현악기) 선생님이시다. 

선생님과의 샤미센 수업이 끝나면 으레 구품사(九品寺)로 산보를 나갔다. 종문 가까이에는 죄의 무게를 달아보는 할머니와 염라대왕이 계시고, 그곳을 지나 손을 씻는 우물 뒤편의 안쪽 당에는 지장보살이 아기를 안고 어르고 있었다. 쓸쓸한 삼도천 강가 앞, 한 태아가 산 부모님께 수고를 끼쳐드린 것에 대한 공양으로 제 몸 크기만 한 돌을 주워 옮겨 탑을 쌓고 있다. 지장보살님 아래로 쪼르륵 서 있는 동자들 목에 걸쳐진 빨간 턱받이, 생전의 아기가 입었던 옷자락을 바느질하여 만든 턱받이를 보면 자연히 가슴이 아릿해온다.

이런 저런 생각에 턱받이를 맨 동자들 앞에서 멍하게 서 있으니 선생님은 아기 앞에서 동태 눈깔을 하고 있으면 아기들이 도망간다고 등을 때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것은 무엇이어서 세상을 괴롭게 보이도록 하는 걸까.

부처님 인연으로 코마자와대학에서 부처님 공부를 하고, 선생님을 만났다. 1년은 금세 흘러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달의 사막’이라는 노래로 안녕하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간 지 한 달이 채 못 되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일본에 적응하고 공부하느라 고생할 것을 염려한 부모님께서는 할아버지께서 폐암으로 위중하다는 사실을 귀국 후에야 알려 주셨다. 말기라서 손 쓸 도리가 없었고, 맑았던 정신은 하루가 다르게 흐려지셨다. 허공에 손을 허우적대는 모습에 죽음이 이렇게 한순간에 오는 것이구나 하고 허망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시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투약으로 인해 오므렸다 펴기도 힘든 손가락으로 얼굴을 한참 쓸면서 ‘왔나’ 하고 눈물을 닦으시는데 할아버지께서 눈물을 보인 건 처음이라서, 그리고 내게 눈물을 보이시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왈칵 눈물이 났다.

설날, 말끔히 한복을 차려입고 절을 올렸다. 아픈 사람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말끔한 차림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다시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손을 마주잡은 채 나를 바라보시는데, 그 눈동자에 나를 찬찬히 담아 저 십만억토를 지나 서쪽에까지 그 모습을 데려가시려는 듯 했다. 내게 깃든 눈부처는 그날 이후로 점점 세상을 보는 눈이 흐려지시더니 끝내 서방정토에 눈이 맑게 뜨이셨다. 

한 학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정각원에서 좌선을 해도 들뜬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학기가 마무리되는 대로 그 해 여름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한 달간의 사찰순례를 시작하였다. 나는 ‘달의 사막’에 나오는 그 낙타처럼 그저 입을 다물고 걸었다. 

나라(奈良)의 흥복사(興福寺)에서 오층탑을 배견했을 때 일이다. 탑을 마주하고 작은 바구니를 끌며 탑에 다가서는 할머니가 계셨다. 포대기에 감겨진 바구니엔 돌들이 꽤 들어 있었는데 할머니는 한 걸음 걸을 때 돌을 줍고, 한 걸음 내딛을 때 주운 돌을 탑 쌓듯 쌓고, 다시 한 번 걸음을 뗄 때 바구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 던지고 또 한 걸음 걸어 돌을 주웠다. 돌을 줍고, 쌓고, 꺼내 던지고, 다시 줍기를 반복하며 점점 오층탑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탑에 가까워지자 할머니는 합장배례 하더니 돌을 던지기 시작한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가시는 것이다. 다시 돌을 던지기 시작
한 원점으로 걸어 돌아가시더니 돌을 던지며 오층탑에 다가가기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주름 진 호두처럼 단단한 몸을 하고 있었다. 

무엇을 기도하시는 걸까. 멀리서 보면 달팽이집마냥 웅크린 모습으로 미동도 없어 보이는데, 그 등에 어떤 포대기를 업고 있는 걸까. 그 포대기엔 돌덩이가 가득 들어 있다. 포대기가 꾸물꾸물 돌탑을 쌓는 모습은 꼭 삼도천 앞에서 돌탑을 쌓는 아기가 생각나서 이 사연 있어 보이는 이를 구해줄 지장보살이 나타나줬으면 하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이런 사람은 지장보살께서 찾아오셔도 아무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아미타불께서 데리러 오시는 날에도 여전히 그날처럼 돌을 줍고 돌탑을 쌓고 있으리라. 그녀는 흥복사의 오층탑 앞 외에 돌아다니지 않았다. 한결같이 돌을 줍고 돌탑을 쌓았다. 마음이 돌아다니지 않으면 자연히 수처작주 하게 된다는 것을 몸에 익힌 사람이지 않았을까.

관 속에 할아버지의 몸을 뉘기 전, 딱딱하게 굳은 몸의 살결을 본 이후부터일까? 죽음에 대한 생각이 더욱 깊어져 그 괴로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란 고민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임제종 대덕사 소속 대선원(大仙院)으로 발을 옮겼다. 정원의 봉래산에서 흐르는 폭포는 대해(大海)로 나가 두 개의 모래섬을 돌았다. 섬의 뿌리는 바다와 경계가 없고 만월처럼 원만하여 그 빛을 사방에 분산하되 여전히 봉긋한 형태를 유지했다. 모래섬 주위로는 헤아릴 수 없는 파도의 그림자와 물길의 흔적과 해를 거듭하며 주름진 돌과 돌의 부스러기와 햇볕에 탄 돌 가루 냄새와 바람에 실린 무궁화의 흙냄새가 났고 내 옆에는 한없이 ‘아름답다’는 말을 되뇌는 노승이 있었다.

그 아름답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한 이야기였는데, 그는 허리가 굽은 노승이었다. 노승이 옷깃을 여미며 물었다. ‘아가씨는 몇 살인가요? 아아 아직 어리구나. 아직 결혼 안 했지요? 나도 아직 안 했답니다. 음 그런데 나랑은 아무래도 무리 일까나?’ 하셨다. 농담이신지 첫눈에 반했다며 결혼을 넌지시 묻는 노승께 나는 어떤 답이 적당할지 몰라서 머리를 굴리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고민도 저 질문에 일시 정지되어서 눈앞의 스님 외에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노승이 활짝 웃고 계셨다. 불단 앞에 은은한 미소를 피우고 계시는 부처님이 이를 내고 웃으신다면 이런 표정일까. 나도 웃고 말았다. 부처님께 절을 하며 한참 고민인 것, 그 고민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부처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 은은한 미소를 보고 픽 웃음이 난 적이 있다. 부처님의 미소를 따라 그저 입매가 올라가는 것이다.

노승은 처음부터 대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 나를 죽음에 대한 슬픔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고민은 그것을 고민하는 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것이 없는데 가는 것이 있겠는가?’ 라는 질문을 뒤늦게 이해했다. 할아버지 죽음, 지장보살과 돌탑 쌓는 아이, 등신불, 오층탑 앞에서 돌 던지는 할머니는 나의 인식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나는 그 이미지에 붙들려 괴로워했다. 이것은 마음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물결에 불과한 것이었다.

호수에 벚꽃이 비추었다고 해서 물 위에 피어난 벚꽃을 딸 수 있을까? 손을 대면 소매가 젖고 벚꽃은 흩어진다. 모든 만남이 이렇다. 그러나 물을 찰랑이면 곧 울렁이며 흩어져버리는 벚꽃일지라도 그 아름다운 자태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삶의 기쁨이다. 또 호수에 벚꽃 나뭇가지가 드리워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벚꽃의 무상함을 알았을까. 

내가 부딪혔던 죽음에 대한 이미지들이나 선생님, 오층탑의 할머니, 대선인의 노승이 이 벚꽃과 같았다. 벚꽃은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봄이 되면 피듯이, 이들은 시절을 기다려야 나타나는 인연이었다. 

나는 사찰순례를 시작하기 전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정리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었다. 다만 이제는 이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기가 왔고, 좋은 인연이 나타나 나를 도와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나의 나이, 시절에 걸 맞는 고민과 그에 걸 맞는 인연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실제로 위와 같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나를 도와줄 인연을 간절히 구한다고 해서 반드시 구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만날 수 있었던 귀한 인연을 만날 기회조차 사라지고 믿음도 잃게 된다. 신란(新鸞)은 ‘만나게 되면 헤어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정해진 바이지요. 혹시 제가 생각나시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십시오. 저는 그 속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좋은 인연을 맞이하기를 기원하며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마음속으로 보내면 어느 샌가 모르게 좋은 인연이 눈앞에 와 있다. 마치 저도 모르게 손톱에 구름이 뜬 것처럼.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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