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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당선작]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상 - 장순영

기자명 법보

3년간 딸 방문 앞에서 절하며 지장기도로 되찾은 가족

가정 지키려 온갖 궂은일 하며
자식들도 못 챙기고 돈만 모아
남편 고향에 전원주택을 짓고
행복 꿈꿨을 땐 딸이 마음 닫아

죄책감에 관계회복 시도했지만
딸은 은둔자 되어 술·담배까지
돈도 사기당해 삶의 의욕 상실

죽으려 간 곳서 불교 인연 맺고
참회기도·절 수행하며 신행활동
백일기도 회향 전 딸 마음 열려
더 열심히 기도·봉사할 것 다짐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엄마 자장면 시켜서 함께 드실래요?’

딸아이 방문이 열리면서 한 말 한마디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딸아이를 보며 되물었다. “뭐라고 뭘 시켜 먹자고?” 다시금 들려오는 딸아이의 소리, ‘자장면 시켜먹자고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알았어. 시켜먹자.” 

딸아이 마음이 변할까 생활정보지에서 중국음식점을 찾으며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를 수 백 번 읊었다. 딸 나이 40이 넘어 처음으로 한 ‘같이 밥먹자’는 말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다.

가족이란 한집에 머물며 함께 밥을 먹고 외출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겠지만, 우리 가족은 한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그 의미가 무색하리만치 각자 생각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을 꿈 꿨다. 하지만 계속되는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생활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천성적으로 성품이 여린 남편은 가족을 위해 묵묵히 노력했고, 나 역시 포장마차를 비롯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집에 오면 아이들이 학교에 잘 다녀왔는지, 숙제가 무엇인지 챙기지도 못한 채 잠들어 버리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다른 집 아이들보다 사랑과 관심을 못 준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중 1988년 1월 어느 날 이었다. 양말도 없는 맨발에 얇은 옷을 입고 아빠와 가게를 찾은 딸 모습에 당황한 나는 급하게 집으로 데려와 양말과 옷가지를 챙겨 입히며 남편에게 핀잔을 주고 딸아이를 구박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가게에 나타난 허름한 딸아이 모습이 알량한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생각에 짜증을 부렸던 것 같다. 

그렇게 고생하며 노력한 끝에 남편 고향에 땅을 장만하여 꿈에 그리던 전원주택을 지었다. 하지만 함께 행복을 꿈꿔야 할 가족과의 대화 시간이나 식사 시간이 줄어들었음을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특히 딸아이는 말수가 적어지고 가족을 기피하면서 혼자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딸과 대화한 기억이 없고 함께 식사한 것도 까마득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딸 방에서 담배 냄새가 나고 입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날이 잦아졌다. ‘병원 수술실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피 비린내 때문에 담배와 술을 가까이 한다’고 했다. 평생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간호사를 시켰는데,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 

몇 푼의 돈은 벌었지만 정작 가장 큰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했으나, 그럴수록 부딪히는 횟수와 충격은 점점 더해갔다. 딸은 직장을 그만둔 채 그야말로 은둔자 생활에 완전 적응하고 있었고, 방안은 난장판이었다. 더 큰 문제는 건강이었다. 무절제한 식생활에 체중이 불어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언제 이렇게 되었지?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먹고 살기위해 바쁘게 살아온 시간들이 이런 비극을 만들었구나 생각하니 내 자신이 비참했다. 그러던 중 설상가상으로 한 푼 더 벌어보겠다고 노점상을 하고 택시를 하며 번 돈을 선배 꼬임에 빠져 온천 지구에 투자했다가 날리는 사기를 당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부부가 함께 주요소에 취직해 겉으론 웃으며 일을 했지만, 불과 5개월 만에 3억이라는 돈을 날린 데다 변한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억장이 무너졌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급기야 뒷산에 올라 죽기 좋은 곳을 찾아보는데 자그마한 절이 나타났다. 지나가려는데 풀을 뽑고 계시던 노보살님께서 이리 와 보라고 손짓을 했다. 보살님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죽으려고 찾은 곳이 여기였었다. 당신도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데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인사나 드리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법당에 들어갔다. 한참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며 지난 시간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지나갔다. 어려서는 부유하게 자랐고, 결혼해서는 힘들게 살아왔고, 열심히 모은 모든 재산은 욕심 때문에 모두 날렸고, 딸아이는 은둔 생활을 하고. 결국 모두가 내 선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홀로 세상을 등지려 하다니, 내가 참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부처님 전에서 한참을 울고 나니 무언가 새로운 희망이 어렴풋 보이는 듯했다. 

불교를 모르던 나에게 부처님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가오셨으니, 불교를 알기도 전에 부처님 가피를 입은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와 남편에게 부처님 얘기를 하자 ‘이사람 미쳤구나. 부처님을 다 찾게’ 하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날부터 힘들 때마다 절을 찾아 108배를 하고 경전도 읽고 쓰며 한발 한발 부처님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 대원화 보살을 만났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배려하는 마음이 배어있고 무엇보다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컸다. 대원화 보살과 스님의 지도로 해인사 백련암에서 3000배도 해보고, 아비라기도와 스님들 법문 및 강의를 닥치는 대로 듣고 따라다녔다. 그러던 중 불교TV에서 스님 법문을 듣는 순간 전율이 흐르는 경험을 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와 무관하지 않고 나로 인해 결과가 맺어진다’는 연기법과 인연법에 대한 법문이었다. 딸아이가 문득 생각났다.

딸아이와 처음 만난 순간으로 기억이 올라갔고, 이어 추운 날씨에 맨발의 아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시절 등. 내가 무엇이 부족했고 어떤 상처를 주었기에 아이가 대화를 거부하고 방에만 있으려 할까? 업장소멸과 참회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나도 모르게 딸아이 방문 앞에 참회의 절을 했다. 내가 만족하기 위해 딸에게 고통을 주고, 그로인한 상처로 세상과 담을 쌓게 했다는 죄책감에 절을 했다. 가족에 대한 참회 속에 기도 목표가 정확해졌다. 딸아이 상처를 달래고 신랑을 불법에 귀의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니 기도에 힘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대원화 보살과 둘이서 시작한 1000배 모임인 예경회 회원도 20여명으로 늘었고, 다라니 철야기도도 안정됐다. 그리고 아산 수암사 혜정 스님께서 지장백일기도를 한다고 해서 입재를 했다. 업장소멸과 참회를 위해 스님은 절에서, 재가자는 가정에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지장경’을 1독 하고 일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어려웠지만, 남편이 동참하면서 게으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정과 직장에서 기도를 하며 백일기도 회향 날을 며칠 앞두고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남편과 함께 거실에서 TV시청을 하고 있는데, 철옹성 같던 딸아이 방문이 열리며 ‘엄마, 아빠, 내 방 도배나 페인트를 칠해야 할까 봐요’라는 말이 들렸다. 순간 우리 부부는 놀라 마주보며 “으으응 그래 그렇게 하자. 언제 할까”하며 딸 반응을 살폈다. 혹시나 딸 마음이 변할까 다음날 서둘러 방을 정리했다. 전에도 청소를 안 한건 아니었다. 딸이 없는 틈에 창문을 열고 대충 정리를 하면 자기 방을 말없이 들어왔다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부숴서 더 이상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방문을 열어주다니, 부처님께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딸 방은 시집도 안간 처녀의 방이라고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지저분하고 냄새가 배어 있었다.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3봉지를 채우고 나서야 정리가 되었다. 그날 쏟아진 눈물은 감사의 눈물이었다. 무려 3년 동안 딸아이 방문 앞에서 절을 하며 간절하게 서원했던 일들이 하나씩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으로는 “앞으로 더 잘 될 거야, 이젠 가족과 대화를 나누면서 여행도 가고 그러는 날이 올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겠다”는 나름대로의 또 다른 서원을 하며 청소를 마쳤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을 하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통장으로 5만원 입금을 했으니 엄마 다니시는 절에 등을 하나 달아 달라’고 했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각각이었는데, 아직도 하나가 되려는 준비를 못해 우왕좌왕 할 때가 많은데, 딸아이는 이미 하나 될 준비를 마쳤구나. 부모의 마음도 읽을 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감사했다. 

아침·저녁으로 한 상에서 밥을 먹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때론 미소를 띠는 가족들의 모습에 꿈인가 생시인가 다리를 살며시 꼬집어보기도 한다. 

요즘은 부처님께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나는 된다. 할 수 있다”는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또한 이 행복이 깨질까 두려운 마음에 “지난 시간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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