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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구

‘숫타니파타(말씀의 모음)’의 첫 장 사품(蛇品)에서 석존께서는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이,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이 세상(此岸)도 저 세상(彼岸)도 다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법정 스님 역)라고 설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의하면, 이 지구는 증오의 비용인 군비로 지난해에 2112조원, 하루에 5조 8000억원을 허공에 뿌렸다. 지난해 한국의 군비지출은 50조원이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는 최근 석존의 생생한 법어인 ‘숫타니파타’를 읽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 제자들은 이 법문을 부처님의 첫 말씀으로 내걸었을까. 화는 인간의 분별과 집착이 솟구치는 모습이다. 자연은 분별하지 않는다. 나무가, 꽃과 풀이 화내는 것을 보았는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타자가 자신에게 동화되지 않으면, 분노와 파괴의 화신으로 돌변한다. 지구는 분노의 설국열차가 서로 부딪히는 지옥이 되고 있다. 국가와 기업, 이념과 사상은 그 밑바탕에 에고의 폭탄을 장착하고 있다.

석존은 “엄청나게 많은 재물과 황금과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이 혼자서 맛있는 것을 먹는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라고 설한다. 오늘날 지구가 그렇다. 문명은 날로 번영하는 것 같지만, 승자의 독식으로 채워져 간다. 세계의 식량은 인류를 다 먹이고 남는데도 목숨을 건 쟁탈전은 쉬지를 않는다. 생각해보라. 왜 미국과 소련과 중국은 남미의 석유부국 베네수엘라에 눈독을 들이는가. 수천㎞ 떨어진 나라의 민심을 둘로 갈라놓고 으르렁거린다. 한반도는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충분한 고통을 받고 있다. 심지어 남북이 하나 되자고 목 놓아 외치는데도 외세는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용납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렇게 우리의 자유를 묶어 놓는가. 욕망이다. 석존의 설법은 자연의 지혜를 끊임없이 설파한다. 들판의 어린 소, 비 맞는 연꽃잎, 자유로운 바람, 아침의 단 이슬, 목이 푸른 공작새, 코끼리의 왕, 구름을 뚫고 빛나는 태양, 덜 익은 모과열매, 나뭇가지를 잡은 원숭이 등. 크게 눈 뜨고 보면, 모든 것은 지혜를 길어 올리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우리가 태어나 죽고, 죽고 태어나는 품안인 자연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로 인간에게 지혜를 던져주고 있다. 석존이 위대한 까닭은 그 일부를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를 구하는 지혜는 차고도 넘친다. 하여 나는 제안한다. 성불제중이 목표인 불자들은 우리 영혼의 집인 사찰을 전 세계에 개방하자. 자연이 주는 지혜가 인간의 탐욕으로 닫혀버리기 전에 모든 사찰에 ‘마음공부의 집’이라는 간판을 달자. 우리 내적 평화는 물론, 이 사회와 세계가 더 이상 분별과 집착의 질병에 오염되지 않도록 모든 지혜를 나누는 공공의 장으로 바꾸자. 

때는 왔다. 세계를 구하는 용(부처)들이 사는 지혜의 집에 모여 자유와 평등과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사회적 열반과 사회적 해탈의 카페가 되도록 하자. 석존은 설한다. “고행과 청정한 행과 감관의 억제와 자제, 이것으로 바라문이 된다. 이것이 으뜸가는 바라문이다”라고. 바라문은 성자를 말한다. 그리고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며, 행위에 의해 제관이 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고. 마침내 불법이 나설 차례다. 지혜를 나눈 형제자매들이 성자가 되어 갈등과 폭력으로 얼룩져가는 지구를 구하자.

석존께서 평생 그랬듯이 길거리 수행으로, 인류의 고통을 짊어진 보살로서 병든 지구를 구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정신의 분열과 고립으로 인류의 병맥은 깊어만 간다. 어쩌면 지구는 머지않아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변할 것이다. 각자(覺者)인 석존의 제자라는 자부심으로 우리 모두 마음병 의사가 되자. ‘마음공부의 집’에서 세상을 고치는 의왕(醫王)의 후예가 되어 불타를 등에 업고, 용맹한 무소의 뿔처럼 길거리로 나가자. 대자비심으로 눈물 흘리시는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생일상을 장엄하는 우리의 이 모습에 얼마나 기뻐하실까.

원영상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wonyosa@naver.com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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