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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지상의 ‘십우도 4 득우-두 모과’(2007)

기자명 문학산

엇갈린 두 모과의 운명이 전하는 깨달음 세계

이지상 독립영화 감독의 십우도 연작 중 하나
군더더기 없는 영화적 기법으로 깨달음 표현 
첫 장면에 나타난 자막이 영화 관통하는 화두
쓰레기통·자연으로 향한 두 모과의 다른 운명 

‘십우도4 득우-두 모과’는 두 모과를 군더더기 없는 영화적 기법으로 응시하며 깨달음의 세계를 드러낸 작품이다.

곽암 화상은 ‘십우도’ 서문에서 “그 이법을 얻으면 종지와 격식을 초월함이 마치 새가 나는 데 자취가 없는 것 같고 그 현상만을 얻으면 언구(言句)에 걸리고 미혹되는 것이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것과 같다”며 십우도의 의미를 명기해두었다. 

십우도는 대웅전의 벽에 그려진 열장의 그림이며 이 그림을 통해 뭇 중생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간명하게 시각적으로 전파한다. 이 그림은 소를 찾는 행위를 통해 불법의 종지를 깨우치게 하고 마음의 이치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안내한다. 십우도는 불교영화에서도 자주 소환되어 전면적으로 채택되거나 부분적으로 수용한다. 제주도 우도에서 촬영된 장선우의 ‘화엄경’(1993)과 봉정사 암자에서 작업한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은 십우도의 세계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테 웨이의 애니메이션 ‘피리부는 목동’(1963)은 현대적으로 십우도를 해석하여 작품을 완성한 수작이다. 

한국독립영화의 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이지상 감독은 문경으로 귀농을 결정한 다음부터 작품이 급변했다. 그는 사는 장소의 영향으로 자연을 닮아가고 스스로 자연인으로 동화되어 갔다. 그 즈음 귀농일기를 작성하여 발표하면서 동시에 작품 십우도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십우도 2 견적’은 귀농한 자신의 ‘시네 다이어리’ 방식의 영화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프레임에 채워놓았다. 일기를 중심으로 제작된 영화는 작가의 일상생활 속에 작품이 삼투되어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낸다. 일기 같은 영화가 작가의 내면 풍경을 향할 때 그 내면에서 직면한 깨달음의 모습은 ‘십우도 4 득우-두 모과’를 통해 보다 간명하고 직설적으로 포착된다. 아니 돈오점수의 대각의 모습을 담아낸 고승이 읊조린 선시와 같은 영화로 번져간다. ‘십우도 4 득우–두 모과’는 두 모과의 모습을 통해 깨달음을 군더더기 없는 미장센과 카메라 앵글 그리고 효과음을 최대한 제거하여 보여준다. 아니 보여준다는 표현은 다소 부적절하며 깨달음의 순간을 카메라의 눈으로, 혹은 모과의 이미지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표현에 가깝다. 석가  세존께서 영축산에서 조용히 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이셨을 때 가섭 존자가 빙그레 미소로 화답하듯이 카메라는 그렇게 두 모과를 가만히 보여줄 뿐이다.  
 

‘십우도4 득우-두 모과’ 영화의 한 장면.

이 영화는 두 개의 책이 들어있다. 하나는 곽암 화상의 ‘십우도’ 득우의 게송이 들어있고, 다른 하나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자막으로 제시한 모과에 대한 화두이다. 곽암 화상의 ‘십우도’와 이지상의 영화는 서로 마주보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십우도가 측면에 벽처럼 서있고 모과가 후면에 정물화처럼 서있는 한편의 선화(禪畵)를 떠올리게 한다. 이지상 감독은 장면의 프레임 우측에 항아리를 크게 잡고 그 옆을 지나 먼 후경으로 모과가 담긴 배낭을 지고 산에서 내려가는 인물을 작고 길게 보여준다. 서울에서 썩은 모과가 쓰레기차에 실려 사라지는 장면을 좌측에 피사체를 걸고 후경에 쓰레기통을 수거해가는 풍경을 길게 잡음과 함께 바라보고 있다. 십우도와 두 모과의 이야기는 한 작품 속에 나란히 들어가서 서로 의미적으로 대화하기도 하고 서로 데면데면한 대상처럼 떨어져서 각자 자신의 독자적 이미지로 자리하기도 하면서 한편의 영화에 미학적 생성물로 귀속된다.

‘십우도 4 득우–두 모과’에서 첫 장면의 자막은 이 작품의 화두이자 깨달음의 실체를 진솔하게 제시한다. 자막의 글은 한 나무에서 자란 두 모과가 서로 다른 운명을 지니게 된 사실에 대한 설명과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다. 두 모과는 한 나무에서 자랐지만 모과 하나는 서울로 보내지고 다른 하나는 시골에 남게 된다. 서울로 간 모과는 삼일 째 되는 날부터 썩기 시작해 결국 열흘이 지나자 썩어서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된다. 반면 시골에 남게 된 모과는 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심지어 두 달이 지나도 그대로 노란색을 유지한다. 결국 그 모과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두 모과의 서로 다른 운명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영화적 질문을 던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는 두 모과의 서로 다른 일생에 대한 질문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두 모과의 서로 다른 운명에 대한 질문지를 영화가 작성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한 피사체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또 다른 질문 같은 답을 제시한다. 
 

십우도 중 득우.

첫 장면에서 설명을 담은 자막이 끝나면 감독은 나무에서 모과를 딴다. 그는 그 모과를 정성스럽게 닦아서 배낭에 넣어서 서울로 향한다. 서울로 가는 행위도 첩첩 산중의 시골 길의 장면과 소음이 가득한 서울의 지하철역 플랫폼 그리고 붉은 보자기에 싼 모과를 꺼내는 장면으로 간소하게 표현한다. 한 신을 한 컷으로 촬영하면서도 인물의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동적 인물을 정적으로 만들어 흡사 인간과 모과가 동일한 피사체 같다는 인상을 준다. 서울의 모과는 몇 컷을 통해 곧장 썩어서 쓰레기차에 버려진 과정을 보여준다.  다음 컷은 인서트로 구름 속을 지나가는 둥근 달을 보여주다가 달과 조형적으로 닮은 모과의 진열장면으로 전환된다. 시골의 모과는 촛불과 위패와 같은 나무들과 빈 접시와 함께 나란히 진열되어 신에게 봉헌되는 제수품같다. 밤의
장면으로 모과가 페이드 아웃되고 낮의 장면에서 모과를 들고 나간다. 그리고 모과는 삼층 돌탑 옆에 땅을 파고 묻히면서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두 모과는 쓰레기통과 자연으로 귀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허공에 검은 천이 걸려있고 그 검은 천의 뒷면은 붉은 색이다. 검은 천은 다시 붉은 색으로 돌아간다. 붉은 색은 등장한 두 인물이 입은 옷의 색과 동일하다, 여기서 모과와 인간은 색을 통해 하나가 된다. 모과의 삶, 모과의 운명은 인간의 운명과 닮았다는 깨달음이 달처럼 떠오른다. ‘십우도 4 득우-두 모과’는 모과로 인한 깨달음을 군더더기 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이미지는 어쩔 수 없이 거북이가 지나가는 자국을 남겨준다. 자국을 지우는 것은 온전히 눈 밝은 관객의 몫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488 / 2019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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