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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달라이라마의 전법 ①

기자명 김정빈

아소카대왕 이후 가장 위대한 전법의 장 펼쳐

티베트밀교 시조는 파드마삼바바
시조 전통 그대로 고수한 홍모파
홍모파 첫 달라이라마 게뒨 둡파
14대 달라이라마 인도 망명한 뒤
영성 설하며 세계인의 존경 받아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달라이라마(Dalai Lama) 14세는 불교 역사상 불멸 후 이백여 년 후의 아소카대왕(?~BC 238) 이래로 가장 위대한 전법자이다. 

불교의 교세 확장은 부처님께서 직접 행하신 45년간의 전법, 아소카 대왕에 의한 인도 전역으로의 확장 및 스리랑카로의 전파, 대승불교의 흥륭, 대승불교의 북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산 등 단계를 거치면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여러 불교인들에 의해 유럽과 미국 등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불교가 확산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전법자는 달라이라마이다.

가장 먼저 부처님 당시의 전법은 인도 북동부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그랬던 것이 아소카 대왕의 전법에 의해 인도 전역 및 스리랑카로 전해졌으며 스리랑카로 전파된 불법이 현재의 태국,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등 남방불교로 이어져 오고 있다. 불멸 후 100년 경에 승단이 상좌부와 대중부라는 두 파로 나뉜 이래로 불교는 스무 개나 되는 부파로 나뉘어 전개되었는데 이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것이 대승불교이다. 700여년간 지속된 이 새로운 관점의 불교는 민중들의 큰 환영을 받았고 그에 힘입어 불교는 그때까지 인도를 이끌어오던 브라만교와 어깨를 겨룰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는 약점도 있었다. 대승불교가 탄생한 배경은 부파불교가 지나치게 세밀한 교설을 제시하다 보니 대중과 유리되어 버린 불교 내부의 문제와 함께 외적인 문제, 즉 불교 밖에서 인도인들이 전통적으로 믿어온 브라만교와의 경쟁 문제가 있었다.

대승불교는 브라만교적인 특성을 교설 안에 녹여 수용했다. 브라만교가 변신하여 성립한 것이 오늘날 힌두교인데 힌두교가 주장하는 학설과 대승불교의 기본 학설들은 얼핏 보아서는 잘 분별이 안 될 정도로 유사한 데가 많다. 이는 브라만교와 대립하여 성립한 불교가 경쟁자를 닮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불교와 힌두교의 차별성이 약화되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인도인들은 불교와 힌두교가 거의 같은 것일 바에는 전통종교인 힌두교를 신봉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에 더하여 기원 후 8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침공해 들어와 불교 사원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승려들을 살해함으로써 불교는 인도에서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구법승들에 의해 대승불교는 중국으로 유입되었고 그 불교가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한편 거리 면에서 중국보다 더 인도에 가까운 지역에서 살고 있던 티베트인들은 인도의 원전 불교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하여 티베트 불교는 대승불교를 더 풍부하게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상좌불교 내지 근본불교 교설도 중시하는 경향을 띠었고 중국에서는 불교가 유교, 도교 등 다른 종교와 경합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티베트에서는 유일한 종교로 자리 잡았다.

아소카 대왕은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전법단을 보냈다고 하지만 그 성과는 미미했다. 그리하여 불교는 동양에서만 신행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마르코폴로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의 중국 체류를 기술한 ‘견문록’에서 불교를 다룸으로써 불교는 서양에서 보다 더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긴 해도 그것이 본격적인 불교의 소개에는 이르지 못했다.

불교가 서양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 서양인들이 세계의 여러 나라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부터다. 현대화 된 무력을 이용하여 영국은 인도를 차지하였고 그로부터 힌두교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 문화가 영어권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불교는 힌두교의 종속변수로서 서양인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그 당시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점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으며 이런 문제점은 20세기 초까지도 충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끈질기게 불교의 본질을 묻는 학자 내지 탐구자들이 있었으며 인류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분으로서의 부처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선(禪)을 중심으로 불교를 서양에 전파한 일본인들이 등장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던 차에 1959년 중국에 의해 국권을 잃은 티베트의 국가 지도자이자 종교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해왔다. 달라이라마는 종교적으로는 깊은 영성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정치적으로는 비폭력 무저항을 기반으로 한 독립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불교가 지혜, 관용, 자비의 종교라는 것을 확신하게 하였다. 달라이라마가 누구인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티베트 불교의 역사를 개괄해볼 필요가 있다. 티베트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송첸감포(?~649) 왕 시절이다. 이후 794년 쌈애 사원에서 인도의 중관학파를 대표하는 카마라실라가 중국의 돈오설을 대표하는 마하연과의 교리 토론에서 승리함으로써 공(空)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교설이 티베트 불교의 정통으로 자리 잡았다.

840년에 랑다르마에 의해 폐불 사건이 일어났고, 그때부터 티베트 불교는 밀교의 파드마삼바바를 시조로 하는 구파와, 린첸 상포를 시조로 하는 신파로 분리되었다. 14세기 말에 이르러 구파는 계율을 중시하는 새로운 덕행파를 성립하였는데 이들은 황모파(黃毛派)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며, 파드마삼바바의 전통을 그대로 고수하는 파는 홍모파(紅帽派)로 불리었다.

티베트 불교에만 있는 달라이라마 전통은 티베트 중부에 있는 타쉬륀포 사원의 창립자로서 그는 살아 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으로 존경받았던 홍모파(게룩파)의 수장 게뒨 둡파(1391~1475년)로부터 시작되었다. 

달라이라마라는 말은 티베트어가 아닌 몽골어이다. 제3대 달라이라마였던 쇠남 걈초가 몽골 족장인 알탄 칸으로부터 이 존칭을 받았는데, 그는 이를 두 스승에게도 추서하였다. 처음에는 단지 종교 수장이었던 달라이라마의 지위는 제5대 롭쌍 갸초 때부터 정치적인 면으로까지 확장되었다. 1642년에 그가 티베트의 최고 통치권을 획득하면서부터 달라이라마는 정치적으로는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이고 종교적으로는 티베트 불교의 대표자가 되었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89 / 2019년 5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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