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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하시죠!’가 정답이다

기자명 이병두

지난 5월12일 부처님오신날, 경북 영천 은해사 봉축 법요식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법요식 내내 합장을 하지 않았고, 아기 부처님 관불의식을 권하자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고 여러 언론 매체에서 크게 다루었다. 심지어 일부 기독교 매체에서도 ‘이웃 종교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예의 없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황교안씨가 검사‧장관‧국무총리로 재직할 때에도 공직자의 종교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았던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신학대학에서 정식으로 신학 공부를 한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점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과 종교가 인간관계와 화합을 해치고 평화를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비판 받아야 마땅한 일이고 그가 믿고 따르는 예수의 가르침에도 어긋날 것이다.

그런데 2019년 5월에 황교안씨 한 사람만 이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전 정권에서 교육부장관을 지낸 황우여씨가 자한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대표로 있을 때에도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해 합장을 하지 않았다. 재임 중 종교편향적인 행동을 숱하게 한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김영삼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합장을 거부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웃 종교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열린 신앙인이 되지 못하여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두 황씨(황교안‧황우여)와 같은 인사들에게 비판을 이어가는 것도 어찌 보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신앙인일 뿐 아니라 정치 야망을 가진 그들이 이런 언행을 일삼을 때에는 ‘이렇게 하면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다’며 나름대로 계산을 했을 테니까 그들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하고 그런 일에 신경 쓰느라 괜히 우리 에너지 낭비하고 분노할 필요는 없고 다음 선거에서 그의 그런 계산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황씨와 같은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이 왜 계속 이어질까에 대해서는 불교인들이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정부 고위직에 있는 인사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평소 행동이 어떻든지 상관하지 않고 절 집안의 민원을 잘 해결해주고, 국가와 지방 정부 예산 많이 받게 해주면 ‘훌륭한 인물’이라면서 고맙다고 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어떻게든 그들과 관계를 맺어 도움을 받으려고 하였고, 그래서 그들이 ‘스님들과 불교는 힘없는 집단’이라면서 우리를 우습게 여기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

실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미군정과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거쳐 오는 동안, 한국 불교가 때로는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또 때로는 종권을 잡기 위해 정치권력에 기대며 굴종해온 것이 솔직한 진단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 그 습관을 다 떨어버리고 당당하고 의연해질 때가 되었다.

중국 남송대(南宋代)의 선승 보제(普濟) 스님이 편집한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끽다거(喫茶去)라는 화두가 나오게 된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어느 날 조주종심(趙州從諗) 선사를 처음 찾아온 이에게 ‘이곳이 와 본 적이 있소?’하고 물으니 그가 ‘와 본 일이 있습니다’라 답했고, 조주 스님은 ‘차 한 잔 하시지요’라고 말했다. 같은 질문을 다른 스님에게 하자 ‘와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조주는 이번에도 ‘차 한 잔 하시지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원주스님이 ‘스님은 어째서 와 보았다고 해도 차나 마시라고 하고, 와 보지 않았다고 해도 차나 마시라고 하십니까?’라고 궁금해 하자 조주 스님이 ‘원주’를 불렀다. 이에 원주가 ‘예’라고 대답하자 ‘자네도 차 한 잔 하게’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사찰에 찾아오거나 법요식 등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다. 오는 손님은 평상심으로 친절하게 맞아주되, 그들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며 생색을 내려고 하면 웃으면서 “차 한 잔 하시지요!”라는 한 마디만 해주자.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90호 / 2019년 5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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