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8. 보살의 성별

기자명 이제열

“관세음보살님은 여성인가요?”

‘관음·지장’은 부처님이 이룬
깨달음 경지의 다양한 표출
보살, 남녀로 이해해선 안돼
중생교화 방편이 보살 형상

지방의 큰 사찰을 찾았을 때다. 종단에서 포교사 자격을 부여받고 불교활동을 한다는 분이 절에 온 사람들에게 불교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 포교사는 절 경내를 이리저리 안내하며 교리를 곁들여 전각·탑·불상·탱화 등 성물들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그분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더러는 질문도 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절에 사람들이야 오건말건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불교계 정서를 감안하면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포교사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정체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분은 관음전과 지장전에 이르러 관세음보살은 여자이고 지장보살은 남자라고 설명했다. 마치 보살들이 사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보살들에게도 남녀라는 성별이 있는 것처럼 들렸다. 보살들을 일종의 영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불교에서 보살은 성불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구도자를 의미한다. 보살은 육바라밀(혹은 십바라밀)을 실천덕목으로 하여 도를 닦고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된다. 그런데 이 같은 보살은 대승에서 부처가 되기 위한 구도자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대승에서는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도 보살이다. 중생이 부처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만 보살이 아니고 부처의 경지에서 중생계를 향해 내려오는 사람도 보살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도 대승에서는 보살로 호칭할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을 세 종류로 나눈다. 첫째는 지전보살(地前菩薩)이다. 발심은 했지만 십지 가운데에 첫 단계인 초지에도 들지 못한 보살이다. 둘째는 지상보살(地上菩薩)이다. 수행을 하여 진리를 체득하고 초지에서 십지 사이에 머무르는 보살이다. 셋째는 권현보살(權現菩薩)이다. 보살의 십지를 통달하고 부처가 된 다음 부처의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들을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은 아직 성불하지 못한 지전보살이나 지상보살이 아닌 권현보살에 해당한다. 이러한 권현보살들은 역사에 존재했던 실재 인물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 경지를 중생들에게 펼쳐 보이기 위한 방편적인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대승경전에 나오는 모든 보살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룬 깨달음의 경지가 다양하게 표출된 것이다. 때문에 권현보살인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에게 애초 남녀의 성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세음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에 내재하는 자비를,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에 내재하는 구제의 원리를 각각 인격화시킨 것이다. 깨달음은 성별을 초월하므로 권현보살들을 남녀로 표현한 일은 적절치 않다. 권현보살들은 인격도 아니고 영적 존재도 아닌 깨달음 그 자체다. 불상이나 탱화에 남녀로 표현했다고 해서, 어머니와 같은 여성으로 그려졌다고 해서 보살을 남녀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살피고 넘어가야할 내용은 보살들을 남성이나 여성으로 그린다고 해서 안 된다거나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내재하는 크나큰 사랑과 능력은 남녀가 아니지만 그것들을 중생들에게 전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어머니와 같은 여성의 모습을 띠게도 하고, 용맹스러운 남성의 모습을 띠게도 한다. 무형의 보살들을 유형의 보살들로 나타내야만 중생교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법당에 갖가지 형상의 보살들을 모셔 놓지 않았다면 중생들은 발심하기도 어렵고 마음을 조복 받고 서원을 발하기도 어렵다. 결국 무형의 깨달음에서 유형의 방편이 나오고, 유형의 방편을 통해 다시 무형의 깨달음에 들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보살들의 형상이라 하겠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90호 / 2019년 5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