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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낙산사도

기자명 손태호

금강산서 느낀 진경산수 진가 유감없이 표현

겸재 정선, 낙산사 창건 설화 담아
넘실대는 동해·떠오르는 붉은 해
선비들 이화대에 앉아 일출 맞이
산사 감싸안은 듯한 소나무 군락
한 화면에 사찰 전체 담은 수작

정선 作 ‘낙산사도’, 42.8×56.0cm, 지본담채, 간송미술관.
정선 作 ‘낙산사도’, 42.8×56.0cm, 지본담채, 간송미술관.

최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성당이 화재로 첨탑이 무너지고 건물 일부가 불탔다는 안타까운 사건이 뉴스로 타전되었습니다. 노트르담성당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상징 같은 곳으로 수많은 역사적 사건이 펼쳐진 기념비적인 곳입니다. 파리에 직접 가보신 분들은 더 잘 아시겠지만 성당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내부에 소장된 예술품의 문화재적 가치는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트르담성당의 첨탑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프랑스인들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라는 프랑스 대통령의 말을 남대문 화재 사건을 경험했던 한국인들은 다 이해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화재 시 매뉴얼대로 내부 문화재는 재빨리 피신시켜 화마를 피했고 소방관들의 영웅적인 진압으로 전소는 피했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입니다. 피해복구 성금도 하루 만에 약 7억 유로, 한국 돈으로 9000억원이 모금됐다니 아무쪼록 역사적 고증과 과학적 방법으로 하루빨리 원래 모습을 되찾길 바랍니다.

화재로 귀중한 문화재를 잃은 경험은 우리 불교문화재도 그 사례가 무척 많습니다. 그중 몽골의 침략과 방화로 손실된 통일신라 때 건축된 경주 황룡사지 9층목탑과 11세기 거란의 침입을 부처님 힘으로 극복하고자 제작한 초조대장경이 외세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것이 가장 뼈아픈 손실이라 할 것입니다. 

최근 사례로는 외세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2005년 양양지역 산불로 인해 낙산사의 주요 전각이 불타고 보물 제478호 낙산사 동종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봄 속초·강릉 산불의 뉴스가 나왔을 때 또다시 낙산사가 화마를 입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뉴스를 지켜보았으나 다행히 화마가 빗겨 지나갔습니다. 강릉 산불로 큰 피해를 입으신 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지만 그래도 귀중한 사찰과 성보가 화마를 피했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지만 새롭게 복원되어 당당히 서 있는 낙산사를 조선 산수화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낙산사도(洛山寺圖)’를 함께 감상해보고자 합니다. 이 그림은 정선이 금강산 일대를 여행하고 그린 해악진경 8폭의 병풍에 수록된 그림으로 진경산수의 진가가 유감없이 표현된 그림입니다.

양양 낙산사는 설악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동해안쪽으로 솟은 오봉산을 등에 지고 탁 터진 시원한 바다를 절 마당으로 삼고 있는 절입니다. 오봉산은 낙가산이라고도 하는데 낙산사는 바로 낙가산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창건 유래는 ‘삼국유사’권3의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 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의상 스님은 양주(지금의 양양) 강선역 남쪽 동해굴이 관세음보살께서 상주하시는 곳이란 이야기를 듣고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친히 뵙고자 하였습니다. 바위 위에 앉아서 이칠일 동안 정근하였으나 뵙지 못하자 실망한 나머지 바다에 투신하였습니다. 그러자 동해 용왕이 의상대사를 건져 올렸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께서 수정염주를 주며 산마루에 쌍 대나무가 나 있는 곳이 내 정상이니 그곳에 절을 지으라고 하여 말씀대로 쌍죽이 나 있는 곳을 찾아 절을 짓고 용왕이 준 옥으로 관세음보살상을 조성해 봉안한 곳이 바로 현재 낙산사입니다. 

의상대사의 지극한 신심과 관세음보살의 영험함이 잘 어우러진 이야기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풍광과 기이한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낙산사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방문하여 시를 남겨놓았습니다. 겸재 정선과 함께 금강산 여행을 했던 순암(順庵) 이병성(李秉成, 1675~1735)은 간성군수로 있으면서 ‘밤에 낙산사를 찾아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위태로운 사다릿길 백 굽이돌며 험산 오르니, 십리 길 절에서 흥이 밤에 오른다. 창해묘에 장차 달 지려 하면, 이화원 승려들 잠이 들겠지. 돌길 들어서자 운경소리 들리더니, 아침마다 오직 해 뜨기만 기다릴 테지.’ 순암 이병성 ‘야심낙산사(夜尋洛山寺)’.

정선은 이런 낙산사 창건 설화와 이병성의 시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 해가 뜨는 낙산사 풍경을 주제로 삼았는데 넘실대는 동해 바다 먼 곳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이화대(梨花臺)로 추정되는 바위에 선비들이 앉아 일출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화대는 의상대사가 앉아 기도했다는 바위로 지금은 볼 수 없는 곳입니다. 위대한 자연과 신성한 사찰에 비해 인간은 소박한 존재여서인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선비들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만큼 작게 그렸습니다. 역시 겸재 정선의 산수화에서 인물은 주인공이 아닌 것입니다. 

전체적인 구도는 웅장한 낙가산과 바다는 사선으로 배치됐는데 이는 정선이 진경산수화에서 자주 사용했던 사선구도입니다. 낙산사의 표현도 높은 봉우리로 표현한 낙가산이 낙산사를 품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짙푸른 소나무로 낙산사의 둘레를 빽빽이 표현하여 산이 마치 산사를 감싸 안듯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음중양(陰中陽)의 음양 대비 표현은 정선이 사찰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골 표현법입니다. 이는 주역에 통달한 겸재 정선이 산수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위태롭게 자리 잡은 홍련암 아래 관음굴로 이어지는 바위 표현은 둥글둥글 용기해 나가는데 이러한 표현법은 정선이 만년에 터득한 준법으로 합문준법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바위의 둥글거림이 넘실대는 파도와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바다로 울림이 이어집니다. 바다 물결도 붓을 세워 물결을 중첩시키는 파랑층첩식(波浪層疊式) 표현으로 정선이 바다 표현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법입니다. 전체적인 모습이 원래 낙산사의 모습과 딱 일치하지는 않고 부분적인 과장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한 화면에 표현했지만 이것이 겸재 정선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낙산사의 모습이며 똑같이 않지만 그 정수만은 놓치지 않는 진경산수화의 묘미입니다. 

낙산사가 오랜 세월동안 많은 고난 속에서도 남아주어 우리는 낙가산에 상주하시는 관세음보살님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었고, 의상대사님이 설파하신 화엄불국토와 호국불교가 오랫동안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낙산사가 불에 타 없어졌다면 어쩔 뻔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 아름다운 사찰들은 늘 그 자리에서 우리 현대인의 상처받은 마을을 어루만져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보문화재를 더욱 아끼고 잘 보존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오랜 세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전해져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귀하고 귀중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귀하고 귀하다고 생각하는 한 사라지지 않고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어갈 것입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490호 / 2019년 5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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