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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음식과 인간 그리고 생태계

기자명 고용석

음식섭취, 인간과 생태계 접속방식

생태계와 분리된 음식 문화
식품 산업 마케팅에 의존해
고기, 산업화의 대표적 음식

여왕벌은 벌통 안에 있는 다른 벌들보다 상체도 하체도 훨씬 크다. 벌통 속 다른 벌들의 평균수명은 45일 정도이지만 여왕벌은 4년 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다른 벌들이 짧은 여생을 지루하고 반복적인 노동으로 보내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만약 양봉업자가 로열젤리를 원한다면 얻고 싶을 때마다 벌통에서 여왕벌을 끄집어낸다. 그러면 벌통 안에 있는 일벌들이 새로운 여왕벌을 만들어낸다. 어떻게 ‘만들어낸다’는 말인가. 간단하다. 로열젤리라는 특별한 식품을 만들어내면 된다. 이 특별한 식품이 여왕벌을 다른 벌들과 구별해주는 유일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벌 유충은 벌통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좁은 벌집 속에서 8일을 지낸다. 이때까지 모든 유충은 완전히 똑같다. 모든 벌이 똑같은 식사를 한다. 이틀은 로열젤리, 나머지 엿새는 꿀로 구성된 단일 식단이다. 8일이 지나면 장차 일꾼이 될 벌들은 벌집에서 나온다. 그런데 벌통 한구석에 있는 몇몇 유충은 8일 내내 특별식을 맛본다. 즉 다른 유충들에게는 이틀 동안만 공급하던 로열젤리를 이 유충들에게는 8일 동안 공급한다. 이렇게 해서 훗날 여왕벌이 될 벌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1500일 동안의 긴 여생동안 여왕벌은 줄곧 로열젤리만 먹는다. 무얼 먹느냐에 따라 여왕이 되기도 하고 평민이 되기도 한다. 로열젤리라는 영양소가 평범한 유충의 잠들어 있는 유전자를 깨워 훗날 여왕벌로 변모시킨다.

이것은 유전자의 발현과 식품의 질, 풍요로운 환경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다. 먼저 먹이를 가공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벌들은 주변 생태계로부터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요소를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요소와 합성하여 영양소 즉 로열젤리를 만든다. 로열젤리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영양분이 일종의 스위치인 수용체에 작용하여 유전자를 활성화한다. 

만약 생태계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식품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유전자와 영양소의 관계는 끊어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건강을 알려면 들판 즉 생태계를 봐라’는 옛 말이 있다.

오늘날 들판에서 식탁까지 음식사슬의 산업화는 집중과 분리의 경향을 띤다. 화학비료를 남용 토양의 질도 나빠지고 동물들도 집중 사육하다보니 곡물사료에 의존하며 배설물과 병원체 항생제도 집중될 수밖에 없다. 생태계와 농장의 다양성에서 오는 균형과 견제력이 사라져 전례 없는 과잉생산 능력을 갖게 되나 소농은 없어지고 소비자는 질이 떨어진 음식을 먹게 된다. 

생태계와의 분리로 음식문화는 사라지고 식품산업의 마케팅에 의존하여 무얼 먹을지를 결정하는 상황이다. 특히 고기는 대표적 산업화된 음식이자 일종의 상징이다. 산업화가 될수록 육류소비가 증가하고 그럴수록 인간의 욕망과 동물의 고통도 커지고 비례하여 인류건강과 환경파괴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농경산업의 70%가 육류생산과 관련되어 초원을 경작지로, 삼림지대를 재배지로 바꾸는 등 토지용도를 무차별적으로 바꾸는 행위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 800만종의 멸종률을 지난 1000만년에 비해 평균 수백 배까지 높이며 생물다양성과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오늘날 식품과 보건, 복지와 환경 그리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만성질환과 비만도 일종의 전염병으로 보고 공공보건을 혁신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는 이러한 특성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최우선 초점을 두어야 한다. 사람들도 수반되는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옛날 사람들은 음식을 신성한 것으로 섭식을 신성한 행위로 여겼다. 음식을 섭취하면서 거대한 생태계와 접속한다는 믿음을 반영한다. 이는 옛날 사람의 직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구와 음식,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 할 때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491 / 2019년 6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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