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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풍정(端午風情)과 샴푸

기자명 심원 스님

올해는 현충일 다음날이 음력 5월5일 단오였다. 사계절 절기가 중시되던 농경사회를 벗어난 지 오래라 지금은 단오를 특별한 날로 생각하는 이들이 드물지만 한때는 민족의 4대 명절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중요한 날이었다. 단오는 일명 중오절(重午節)이라고도 하는데, 중오는 오(五)의 수가 겹치는 5월5일을 뜻한다. 전통적인 음양사상에 따르면 홀수[奇數]는 ‘양의 수’이고, 짝수[隅數]는 ‘음의 수’인데 ‘양의 수’를 길수(吉數)라고 생각했다. 특히 같은 홀수의 달과 날이 겹치는 단오는 1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여러 가지 풍속과 행사가 행해졌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단오풍속을 묘사한 한 폭의 그림이 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국보 135호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이다.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어디선가 한번 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심계유목도(深溪流沐圖)라고도 불리는 이 그림은 단오날 놀이를 나온 한 무리의 여인네들이 계곡에서 목욕을 하며, 한켠에서는 그네를 매고 즐기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목욕을 마친 한 여인은 치렁치렁 긴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추측컨대 이 여인은 틀림없이 창포물로 머리를 감았을 것이다. 예부터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더욱 검어지고,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실제 창포는 벌레의 접근을 막아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고 하니 옛사람의 지혜가 돋보인다. 그때 여인들이 애용하던 창포를 지금은 샴푸(Shampoo)가 대신한다.

샴푸의 어원은 ‘champi’로 ‘씻다’ ‘매만지다’ ‘주무르다’라는 뜻을 가진 힌디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샴푸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930년대 초 일본에서 발명됐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양털 세척제를 제조 판매하는 중소기업인이었던 다케우치 고도는,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이 돌같이 딱딱한 비누로 머리를 감는 것을 보고 ‘물비누를 만들어 보자’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몇 차례 실험을 거쳐 그녀는 액체로 된 양털 세척제에서 인체에 해로운 독성을 제거하고 향료를 첨가해 최초의 모발전용 세척액을 발명했다. 그리고 그 발명품에 ‘샴푸’라는 상품명을 붙였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 샴푸의 기원이 된 것이라고 한다. 1934년도 조선일보에 ‘아름다운 머리카락의 비결! 화왕샴푸’라는 일본어 광고가 실린 것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1967년, 락희화학(LG화학의 전신)이 계면활성제를 사용한 ‘크림샴푸’를 처음 개발해 시판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은 비누로 머리감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당연히 샴푸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샴푸 산업이 번창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대형마트 샴푸코너에 가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샴푸가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구매자들은 요구가 상당히 까다로와 졌다. 천연성분 여부를 구매 결정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친환경 샴푸의 시장 점유율 수치도 눈에 띠게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인해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을 거부하는 ‘노케미(No-chemi)족’이 증가한 것도 천연성분 샴푸 선택에 일조했을 것이라 한다. 다른 한편, 환경론자들에 의해 샴푸가 수질오염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세간의 눈총을 받는 처지가 되고 있다. 각광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샴푸이지만 이제 새로운 변신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회적으로 ‘친환경 샴푸’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추세다. 월정사를 비롯한 사찰에서는 체험프로그램 중 하나로, 수원시나 청양군 같은 지자체는 주민 생활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제주 하귀일 초등학교를 위시한 학교에서는 학부모와 함께하는 학사일정으로,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친환경 샴푸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오래된 인류의 숙제인 ‘자연과의 공존’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참 반가운 소식이다. 단오에 머리감던 창포물이 새로운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보아도 혜원의 그림 속 여인의 머릿결은 흑단처럼 검고 곱다.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도 충분히 아름다운 머릿결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친환경 천연샴푸의 홍보대사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492호 / 2019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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