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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동체대비 정신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행복해집니다”

혜암 스님 수행처 지리산 영원사
큰스님 도와 불사했던 일 떠올라
선대스님 수행처 순례하는 것은
가르침 올곧게 실천하겠다는 의지

모두가 본래 마음에서 살아가면
소통·화합이 이뤄져 지혜 나오고
날마다 좋은 날이 계속 되지만
그게 안 되면 괴로움에만 빠져
큰스님들 가르침 실천하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삶 살아야

원각 스님은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한다면 결국 서로를 괴롭히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라며 “진정한 행복은 동체대비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원각 스님은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한다면 결국 서로를 괴롭히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라며 “진정한 행복은 동체대비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오늘은 혜암 큰스님의 수행처를 답사하는 날로, 지리산 영원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영원사는 신라 영원 조사께서 창건 후 면면히 수행의 가풍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곳은 109명의 조실스님에 대한 기록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도량이었습니다. 영원사에는 훌륭한 강사스님들도 많이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순 반란사건과 한국전쟁 때 완전히 불에 타 없어진 이후 석주 스님께서 상무주암에 계시다가 내려오셔서 복원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길도 없었던지라 모두 스님들께서 직접 길을 내시고 지게로 짐을 옮기면서 복원을 하셨습니다.

혜암 큰스님께서는 해인사 다음으로 이 산중에 가장 오래 사셨습니다. 영원사에만 계셨던 것이 아니라 산중의 청매 스님 토굴터로 알려진 도솔암에서 구들을 놓고 움막을 치고 사셨습니다. 도솔암 불사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허가가 나지 않아 스님들께서 청와대까지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허가가 나고 잘 복원돼서 작은 암자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큰스님과 여러 스님들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영원사 뒤쪽으로 가면 상무주암이 있습니다. 상무주암은 고려시대 보조국사께서 2년 동안 정진하신 도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조국사께서는 그곳에서 대혜 선사 어록을 읽으시다가 마음이 열려 깨달으셨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혜암 큰스님께서는 상무주암에서 여러 철을 나셨습니다. 그곳에 계시면서 문수암을 지으셨습니다. 

문수암을 불사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문수암 불사는 1967년으로 해인총림이 막 개설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큰스님께서는 해인총림의 유나 소임을 맡아 해인사에 사셨는데 당시 제가 스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해제 후 상무주암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저에게는 해인사 선원에 남아 정진하라고 하셔서 해인사에서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름 해제가 가까워지자 스님께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편지에는 해제하고 바로 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해제 다음날 바로 짐을 챙겨서 상무주암으로 가니까 큰스님께서 문수암 터를 닦고 계셨습니다. 거기에서 옛 기와장도 나오고 맷돌도 나왔습니다. 옛 절터가 맞았습니다. 그때 스님과 절을 짓는데 매일 상무주암에서 밥을 지어서 지게로 날랐습니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상무주암에서 문수암까지는 산길이 1km 정도 됩니다. 

문수암을 불사하면서 자재가 부족하거나 일꾼이 부족하면 일을 다 마친 뒤 손전등을 들고 마을로 내려가서 공사자재를 챙겨놓고 일할 사람까지 확보한 뒤 다시 새벽같이 올라와서 일을 하곤 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가끔 불사 자금 때문에 밖에 다녀오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사시다보니 스님께서 토굴을 짓는다고 하면 주변의 스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늘 어렵지만 결코 어렵게 느끼지 않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늘 불사하는 데에는 어려움 없도록,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스님께서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시면 종종 하시는 법문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 일이 잘 되고 또 안 되고 하는 것이 결정된다. 산꼭대기에서도 살 수 있고 바닷속에서도 살 수 있다. 신심으로 살면 못 살 것이 없다. 나의 행동을 제대로 하고 내가 맡은 바 잘하는 것이 남을 도와주는 것이다. 각자 자기 하는 일을 잘해야 하고 또 인연 따라 남을 도와주는 것이 공부의 길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고행을 하고 두타행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그해 겨울, 불사를 마친 이후 문수암에서 한 철을 사셨습니다. 그 뒤로는 상무주암에 계시면서 문수암에는 가끔 법문을 하러 가셨습니다. 저는 다시 결제 이틀을 앞두고 해인사 선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한번은 197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통도사 극락암을 가서 경봉 큰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상무주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경봉 큰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상무주암에 아주 정진 잘하는 스님이 계시니까, 그 스님을 찾아가서 인사도 드리고 법문도 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큰스님 상좌인 줄 모르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혜암 스님의 상좌라고 말씀을 드리니 환하게 웃으셨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 시기에 통도사 극락암 명정 스님께 부탁드려 경봉 큰스님의 글씨를 받았습니다. 상무주암, 문수암의 현판이었습니다. 현재 상무주암과 문수암에는 경봉 큰스님의 글씨로 각을 한 현판이 달려 있습니다.

혜암 큰스님께서 상무주암에 계실 때에는 여러 대중이 함께 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중을 그냥 두질 않으셨습니다. 낮부터 운력을 시키셨는데 상무주암에서 문수암을 오가는 길, 영원까지 오가는 길을 반질반질하게 내고 돌이 있으면 다 치우게 하셨습니다. 도솔암에 사실 때도 주위의 풀을 다 정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스님 사시는 도량 주위는 항상 깨끗하고 맑은 곳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큰스님께서는 “스님들이 잘못 살면 귀신이 얕본다”고 하시면서 수행도 흐트러지지 않으셨습니다. 

큰스님께서 일구신 또 한 곳의 도량 도솔암은 청매(靑梅) 스님의 토굴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청매 스님의 게송 가운데 ‘십무익송(十無益頌), 열 가지 이익이 없는 것에 대한 게송이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그중 열 번째 게송 ‘일생괴각 처중무익(一生乖角 處衆無益)’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일생 동안 개각 노릇을 하면서 대중과 화합을 하지 않으면, 대중이 살아도 이익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스님께서는 늘 “세상 일이 부질없고 허망하니 오직 공부하라”고 법문하셨고, “참선을 해서 도를 깨달아 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것이 스님의 주된 법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스님께서 공부에 대한 법문만 하신 것이 아니라 생활 법문도 많이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주로 “가족이 평화스럽게 잘 살려면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고 화합하고 단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야 가족이 평화스럽게 잘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우리가 세상을 즐겁게 잘 살려면 자기 직장에 충실해야 하고 자신이 맡은 일을 잘 해야 하며 화합하고 단결하면서 남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법문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할 때 이치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고도 당부하셨습니다. 특히 스님께서는 이치에 맞게 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절에 들어갔을 때도 “무슨 일이든지 이치에 맞고 경우에 맞도록 하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중국의 임제 스님도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법문을 하니까 주인공이고, 여러분이 신도이니까 객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곳에 따라서 주인공이라는 것은 시비와 장단에서 벗어나 나의 본래 마음바탕, 그 마음바탕에서 행할 때 주인공인 것입니다. 나의 본래 마음 바탕에서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고 화합하고 단결하면 우리 불교의 근본 사상인 동체대비(同體大悲)가 실천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본래 마음 바탕에서 생활할 때 소통이 되고 화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협조하고, 화합하고, 단결하고,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편안해집니다. 운문(雲門) 스님께서 법문하시기를 “보름 이전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 보름 이후에 대해서는 한번 일러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답을 하지 않으니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고 하셨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좋은날”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본래 마음바탕, 모든 것에서 벗어난 그 자리에서 살 것 같으면 지혜가 나오고 소통이 되고 화합이 됩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이해하고, 협조하고, 화합하고, 단결하고, 무슨 일이든 이치에 맞게, 경우에 맞게 하는 것은 나의 본래 마음 바탕에서 지혜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날마다 좋은 날이 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직책이 높아져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근본 바탕에서 살지 않으면 아무리 지위가 높더라도, 아무리 부자가 되더라도 그 자리에 가서 또다시 괴로움이 생기고 또 복잡해집니다. 그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로 살 때, 주인공의 삶을 살 때,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집니다.  

큰스님의 수행처를 답사하는 것은 부처님 법을 깨닫고, 또 큰스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나의 마음바탕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우쳐서 그 바탕에서 생활할 때 자유스럽고 활발해집니다. 여기 오신 모든 분께서는 주인공의 삶을 살아주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본심의 바탕에서 살면 안심이 되고 편안합니다. 그렇게 되면 소통이 됩니다. 소통 없이 나의 욕심, 나의 고집만 채우려고 하면 지금 세상 사람들의 모습, 너는 죽고 나는 살자, 이런 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살려면 동체대비로 살아야 합니다. 동체대비의 정신으로 살 때 잘 사는 세상,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아주 큰 인연입니다. 오늘 영원사 좋은 도량에 모인 인연과 기운으로 구경에는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내용은 5월1일 경남 함양 지리산 영원사에서 봉행된 혜암선사문화진흥회(이사장 성법 스님) ‘혜암 대종사 탄신 100주년 기념 수행처 참배 네 번째 순례법회’에서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이 설한 법문입니다.

 

[1492호 / 2019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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