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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자기 성찰로 길어 올린 시조 231편

  • 불서
  • 입력 2019.06.17 13:36
  • 호수 1493
  • 댓글 0

‘산사에서 길을 묻다’ / 이서연 지음 / 알토란 북스

‘산사에서 길을 묻다’
‘산사에서 길을 묻다’

“연꽃의 꽃술자리 하늘이 마련하니/ 약사불 영험이야 비는 사람 몫이어라/ 번뇌가 어지러운 날 바람소리 만나보자/ 여여한 심장자리 어느 부처 상주할까/ 사리탑 세 번 돌면 그 체온 느껴질 터/ 허무가 쏟아지는 날 청량산에 올라보자”

청량산 청량사에서 바람이 소리를 만나는 자리를 지켜본 시인은 정처 없이 길을 떠나 이 절 저 절로 발걸음을 들였다. 부처님 앞에 엎드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간절하게 묻고 또 물었다. 결코 편안할 수 없는 이 시대를 살면서 시인은 절을 찾아 잠시라도 위로받았고, 절하고 싶은 간절함을 담아 희망을 키웠다.

또한 그렇게 찾아간 산사에서 ‘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지’를 물었다. 계절과 관계없이 수년간 발길 닿는 산사마다 엎드렸던 시인은 불구덩이에 빠진 어린 아이처럼 소리 없이 목 놓아 울었고, 가슴으로 눈물 쏟으면서 자기안의 언어를 건져 올렸다.

‘산사에서 길을 묻다’에는 시인 이서연이 그렇게 산사 187곳을 찾아 길어 올린 231편의 시조가 담겼다. 고난의 시점에 산사를 찾아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할지 끊임없이 성찰했고, 전국의 산사를 찾으며 일상을 수행정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짧은 시조로 곳곳 산사가 내어준 가르침을 담아냈다.  

시인은 삼천 배를 마친 보문사 마애불 앞에서 “안다고 말한 것도 아는 것 아니었고/ 모른다 답한 것도 모른 것 아니어서/ 다시금 물으러 왔나이다/ 지금 나는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가 필요한 거 아니듯이/ 어디로 가는가도 중요한 거 아니어서/ 또다시 찾으러 왔나이다/ 나 가는 길 어디인가”라고 물으며 나를 찾아 떠난 후, 토함산 석굴암에서 “네 꿈에 속지 마라/ 그 존재가 허허롭다/ 네 삶에 미련 말라/ 그 자체가 꿈 아닌가/ 목숨에/ 목숨 걸지 마라/ 그 지혜가 닦음이다”란 법문을 들으며 깨달음의 문에 들어서더니, 이내 통도사 무풍한송길에서 “잠시만 말을 쉬자/ 묵언(默言)이 금언(金言) 되리/ 조금만 눈을 감자/ 속을 채울 절호이리/ 바람에 춤을 추는 걸/ 그 인연에 맡겨두자”며 집착을 내려놓고 무명과 탐욕에서 벗어난다.

마치 목동이 소를 찾아 떠났다가 소를 찾아 그 소를 타고 돌아오는 십우도의 장면처럼, 시인의 노래는 고난을 맞아 찾은 산사에서 삶의 길을 찾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작품이 작가와 한 몸, 한 영혼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성찰을 표출하는데 집중해온 시인의 시조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까지 만날 수 있다. 1만3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93호 / 2019년 6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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